우리 사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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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랑할까요 크리스천의 연애와 결혼 :: 건전하고 적극적인 성경적 성

우리는 성경은 영적이고 거룩한 책이라 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성에 대해 설교하는 목사님도 거의 없다. 그러나 성에 대해 노골적으로 묘사한 말씀이 있다. 바로 아가서이다. 아가서를 단순히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을 대변한다는 수준으로만 보는데 아가서는 그 이상의 책이다. 아가서만큼 노골적으로 남녀 간의 성관계를 이야기하는 책도 없다.
이제 솔직하게 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음지에서 숨기고 드러내지 않기에 발생하는 문제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가? 일상생활 중에 뜬금없이 올라오는 성욕 때문에 민망하고 수치스러운 때는 없는가?

나도 젊을 때 성욕이 올라올 때면 '예수 믿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구나' 하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성욕을 느끼는 우리의 욕망은 분명 잘못된 것이 아니다. 성욕이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인정하고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하나님은 즐거움을 위해 성을 마련하셨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잠5:18-19)등 성경은 아내와의 성관계를 장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리처드 포스터는 "돈 섹스 권력"에서 "기독교 역사상 참으로 비극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는 성과 영성이 나뉜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외설 서적이나 퇴폐 술집이 만연하는 까닭은 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강조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포르노나 단란주점, 원나잇스탠드 같은 것들은 성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이 아니라 생식기관이라는 좁은 한계로 제한하고 있으며 성을 사소한것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그는 말했다. 특히 우리 한국은 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부끄러워하는 문화가 있다. 오 천년 역사를 가지고 있고 다른 어느 때보다도 개방적인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성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하면 민망해한다. 그렇기에 성은 음지에서 몰래 배우거나 왜곡해서 배우는 경우가 많다. 성에 대한 많은 문제점이 성이 충만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성에 대한 부정적인 풍조는 카톨릭에서 유래되었다. 회심 전에 성 어거스틴은 창녀와도 살고 사생아도 낳는 등 문란한 생활을 했기에 회심 후에는 성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을 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영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본질적인 것으로 그 자체가 선하지만 육체는 욕망과 성욕을 지닌 것으로 그 자체가 악하다"고 말했다. 그는 성관계에서 얻는 강렬한 기쁨을 타락한 인간의 특징으로 여겼다. 죄 짓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결코 성적 충동을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며 성적 충동을 덜 느끼고 성관계에서 기쁨을 덜 얻는 사람일수록 성화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후 카톨릭에선 성을 죄악시하는 금욕주의가 팽배했다. 신부와 수녀는 금욕주의자로서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하나님께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중세 신학자 이브스는 부부가 성관계를 할 때도 날을 가려 해야 한다고 했다. 목요일은 예수님이 잡히신 날이기에, 금요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기억해야 하기에 성관계를 해서는 안되고, 토요일은 동정녀 마리아의 영광을 위해서,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관계를 해서는 안되고, 월요일은 고인이 된 조상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관계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렇듯 성을 부정적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본성을 억누르다 보니 음지에서 많은 성범죄가 일어났다. 신부와 수녀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녀원에 고아원이 세워지기도 했다.


개신교는 카톨릭보다는 성에 대해 좀 더 긍정적이었다. 마틴 루터는 성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는 수녀원에서 탈출한 카타리나라는 수녀와 결혼해 여섯 자녀를 낳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즐겼다. 그 밖에도 청교도와 유대인이 부부의 성을 적극적으로 즐겼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들은 성을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하여 장려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죄악시했다. 한국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문화와 성을 들어내기 꺼리는 교회 문화가 만나 성에 대해 더 폐쇄적이게 되었다. 한국 교회 초기에는 예배당 안에 커튼을 치고 남자와 여자 자리를 구분하는가 하면 남녀가 이야기도 못했다. 이러한 통념 속에서 살아왔기에 성은 계속 음지에만 머물게 되었고 갖가지 문제를 일으켜도 쉬쉬하고 넘어가기 바빴다.

교회는 지금까지 창세기에 나타난 에로티즘과 아가서에서 나오는 관능적 환희를 무시한 이단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성에 대한 욕구가 분명히 있음에도 이를 배척하거나 잘못 배우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성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성이 된다.



글 : 우리 사랑할까요 저자, 박수웅 /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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