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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런던. 성실한 우유 배달부 어니스트는 날마다 가정부 에델과 마주쳤다. 매일의 인사가 두 청춘 남녀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고, 사랑으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다.

가난하지만 성실했던 두 사람은 집 한 칸을 렌트하여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침대 하나 덩그러니 놓인 공간에서 둘은 요즘말로 ‘작고 확실한 행복’을 가꾸어가기 시작했다. 안과 밖의 풍경을 나누기 위해 커튼을 드리웠고, 작은 옷장 하나를 들여놓았으며, 중고 소파를 얻어 커버를 씌웠다. 두 사람의 공간은 두 사람의 향기와 색깔을 입으며 따뜻하고 아늑한 ‘홈’으로 바뀌어갔다. 에델은 집 안팎을 쓸고 닦고 꽃을 심었으며, 어니스트는 하루같이 우유를 배달했다. 두 사람이 성실하게 살아가는 동안 문명은 더욱 발전하고 어느새 그들의 공간에도 전화와 텔레비전이 생기고 자동차가 문 앞의 풍경을 차지했다. 두 사람의 공간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차곡차곡 물건들이 채워지듯 사랑을 쌓아갔다.



늦었으나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났고, 뜻하지 않은 전쟁이 일어났으며, 전쟁 속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생이별을 견디었다.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가고, 엄마가 바라지 않았으나 화가가 되었고, 참한 여인을 만나 결혼하였다.



아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평범하여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음을, 그래서 두 사람이 살았던 시간을 기억함으로써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무럭무럭 살아내었음을 고백했다.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는 아들이 추억한 부모님의 이야기이다.



중국계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작가이자 사회학자 룽잉타이가 쓴 책 <눈으로 하는 작별>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 사피엔스21 펴냄, 2010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아버지의 파란만장했던 시간을 돌아보는 책이다. 룽잉타이는 ‘외성인外省人’ 가정에서 태어났다. 외성인이라는 말은 20세기 중반 중국 공산당에게 쫓겨 국민당과 함께 타이완으로 건너온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제 나이 오십이 넘을 무렵에 룽잉타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이 일이 자신이 연구해온 수많은 사회적 이슈들에 비교해서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깨닫는다.

나도 그러했지 싶다. 청년의 때는 사회적인 이슈들이 언제나 우선이었고, 가족의 이야기는 가정사라는 범주에 가두어 사소하게 처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룽잉타이의 고백처럼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대부분의 사회적인 이슈들이 사소한 곁가지에 지나지 않아졌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이 살아온 지난 한 세대를 이해하고, 감사하고, 위로하는 일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갈등하는 사회적인 많은 이슈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룽잉타이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뒤 컴퓨터 앞에 앉아 글로써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났다. 그 첫 문장은 이러했다.



안타깝게도 룽잉타이의 여행은 ‘모른다’로 시작하여 ‘모른다’로 끝난다. 일곱 살의 아버지가 어떻게 학교를 다녔는지, 학교에서 집까지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산길을 혼자 걸으면서 무섭지는 않았는지, 아직 어린 티도 벗어나지 못한 열여섯 살 아버지가 전쟁에 나가기 위해 당신의 어머니와 어떻게 이별하였는지, 포탄이 날아들고 총성이 멎지 않는 전쟁터에서 아버지는 왜 <장자>를 읽고 <당시唐詩>를 읊었는지, 또 아버지가 엄마와 함께 네 아이를 키워 내기까지 얼마나 아픔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지, 학비를 마련하느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웃에게 돈을 꾸러 다닐 때 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다잡아야만 했을지, 한 번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을지, 그 어느 것도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비로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어렴풋이 이해한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얼마 전에 만난, 벌써 칠순에 이른 장로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내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 장로님의 어머니는 가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한두 권으로도 모자랄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들인 장로님은 대수롭지 않게 듣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퇴직한 뒤 여유를 가지면서 비로소 인생이란 걸 요모조모 생각하다 보니 문득 어머니의 말씀이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대학노트 몇 권을 사서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어머니, 이 노트에 어머니께서 살아오신 이야기를 한번 적어보셔요. 그러면 제가 그걸 잘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어드릴게요.”

그때 어머니 연세는 아흔이 넘어서 무엇을 기록할 기력조차 없어 보였으나 어머니는 당신의 연세나 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반색하셨다.

“왜 이런 걸 이제 말하누. 그동안 써 온 걸 버린 게 얼마나 많은데…. 진작 말했으면 그런 걸 잘 모아두었을 거 아니냐.”

그날 후로 어머니는 집필에 몰두하였다. 쓰다가 기운이 떨어지면 몸져눕기도 했다. 어머니는 방에서 노트와 씨름할 뿐이었다. 저토록 속에 쌓인 이야기들이 많은 분이 어떻게 지금까지 참고 있었을까 그는 의아해 했다. 그는 어머니가 쓴 글을 타이핑하고 수정하여 컴퓨터에 저장했다. 글을 옮기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다시 질문하고 인터뷰를 했다. 때로는 어머니의 삶을 나름 해석하여 이야기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예전에 알지 못한 어머니의 삶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누구보다 자식들에게 떳떳하게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빛나던지, 당신의 열정과 인내 없이 오늘의 나는 없었으리라는 확신이 생겼고, 아들의 삶을 응원해온 어머니의 은혜가 새록새록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나누는 이야기들이 깊어졌고 예전처럼 겉돌지 않았다. 그런 변화가 그로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비했다.

어머니의 글쓰기는 2년을 넘겨 완성되었고 A4용지 150매나 되는 분량을 가지고 그는 직접 편집을 하여 그리 화려하지 않은 책 몇 권을 제본했다. 그 책을 어머니께 드리던 날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은 분의 표정으로 기뻐했다. 장로님은 “세상에서 내가 어머니께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 하나를 꼽으라면 어머니가 자서전을 쓸 수 있도록 권유하고 응원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나, 효도관광을 보내드린 것이나, 좋은 음식을 대접한 것을 말하지 않고 어머니의 자서전 쓰는 일을 도운 일이 가장 보람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

“한 생애를 성실하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세월과 어머니의 눈물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우리는 어이없게도 부모님의 삶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때로는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분들의 삶을,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알았을 때, 그 앎이 가져다 줄 신비한 경험도 함께 포기하고 산다.

성경에서 요셉의 이야기가 정점에 이를 때 아버지 야곱이 등장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집트에 도착한 야곱이, 이 나라의 2인자를 아들로 둔 아버지 야곱이, 바로 앞에 섰을 때 바로가 묻는다.

“그대의 나이가 얼마인가?”
그리고 야곱의 대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한 절 시 같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입니다.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비하면 내 나이가 얼마 못 되지만 (돌아보니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영화 컬럼


야곱의 삶을 읽으며 오히려 수완만 부리는 그 젊은 시절의 삶이 애틋하게 읽힌다. 어떻게 보면 야곱의 눈을 보면 하나님이 보일 것 같다. 간절하고 절박한 무엇, 하나님이 계셔야만 비로소 위로받을 수 있을 듯한,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우리 아버지들의 눈을 바라보면 좋겠다. 그분들의 눈물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하고, 또 위로하면 좋겠다.


제작

글 : 박명철 작가
사진제공 : 영화사 진진
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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