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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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상처를 가지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살아가는 네 사람.

‘빌’은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일상에서 휘청거린다.
빌의 동료 ‘카린’은 불임으로 결혼 생활에 실패한 뒤 독신으로 살아간다.
빌의 열일곱 살짜리 아들 ‘웨스’는 엄마를 잃은 슬픔에다 아빠까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웨스를 돌볼 여력이 없게 되자 졸지에 엄마와 아빠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듯한 절망감으로 아파한다.

웨스의 학교 친구 ‘레이시’는 이혼을 앞둔 부모의 불화로 괴로워한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그 아픔을 자신의 몸에 칼집을 새기며 자해한다.

!

마음의 통증은 관계에까지 이어져 그 뿌리를 멍들게 하는 것일까. 네 사람은 저마다 홀로 자신의 동굴에 처박혀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제 The Bachelors 처럼 그들은 ‘독신자’로 살아간다. 누군가의 접근을 차단한 채 나 홀로 식사를 하고, 거리를 걷고, 생각을 한다. 주변에 사람들이 오가지만 그들의 행동거지를 주목할 마음이 없다. 더 외로워지고, 더 깊은 동굴로 빠져든다. 영화는 이런 네 사람, 곧 상처를 지닌 네 독신자가 만나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줌으로써 비로소 상처를 치유해간다는, 좀 흔한 스토리 구조이다.

맞다. 하지만 만남이라든지 상호작용이라는 말은 그저 형식이거나 겉치레에 불과하다. 정작 그들을 동굴에서 이끌어낸 힘의 본질을 알고자 한다면 만남의 내용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대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낸 만남과 상호작용의 알맹이는 무엇일까?



고통은 백해무익하여 존재하면 안 되는 어떤 것으로 몰아버린다. 그들은 고통으로부터 어떤 소리를 듣고자 귀기울이거나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는다. 때내어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만인 어떤 것이다. 정말 그럴까? 빌과 카린과 웨스와 레이시는 그 고통이란 것과 동거한다. 몸속으로 체화하여 고통이 세포로 성장하기까지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고통의 끝자락에서 그들은 탄식한다. 캄캄한 밤, 천공처럼 뚫린 하늘을 바라보며 꺼이꺼이 운다. 레이시는 제 몸을 칼로 베어서 마음의 고통을 덜고자 한 걸까? 몸은 음식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입 밖으로 밀어낸다. 엉망이다. 고통은 몸과 어우러질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고통은 암 덩어리이다. 아내를 떠나보낸 빌은, 아내가 자신의 이런 붕괴를 바라보며 얼마나 아파할지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걸 어쩔 수가 없다. 정말이지 어쩔 도리가 없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통은 거부할 수도, 없는 척도 못해

그래서 네 사람은 함께 먹고 자고 걷는다. 몸이 무너지는 걸 알면서도 그걸 내려놓지 못한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먹어도 먹는 게 아니다. 고통은, 그러고 보면 마음의 작용이면서 몸의 작용이다. 몸을 파괴함으로써 통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 고통이 뭔지 제대로 바라보고 이겨나갈 방법을 찾는다면 내일 우린 조금 더 행복해져 있겠지.



웨스가 시작한 크로스컨트리는 12킬로미터의 야외 구간을 달리는 경기이다. 여느 육상경기와 달리 크로스컨트리는 기록을 중시하지 않는다. 달리는 구간마다 그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기록으로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교장선생님의 말처럼 “크로스컨트리는 고통을 어떻게 극복 하는가를 배우는 스포츠”인지 모른다. 물론 고통의 극치를 경험함으로써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12킬로미터 결승선 지점에서 환희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해피 어게인’의 시작 같은…. 누군가 “슬픔은 행복과 함께 온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였던가? 한희철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다.

어설픈 해갈 구하기보다는 정직한 목마름 견디게 하소서.

IMF사태가 터졌을 때 우리는 집안의 금을 내놓으며 그 탈출구 찾기에 단합했다. 그렇게 하여 누군가는 “가장 빨리 IMF를 탈출했다”고도 말했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뒤늦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너무 빨리' 짐을 벗었다.IMF의 규제를 받으며 우리는 더 많이,더 깊이,우리를 단련하고 바꾸어야 했다.고통이 없으면 성장도 없다.

그 말이 옳았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다. 부정과 부패는 그 이후 더 극성을 부렸다.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을을 대하는 갑의 교만도 악랄 해졌으며, 건전한 생산을 기반으로 산업이 재편되지도 않았다. 술집은 늘어나고 퇴폐는 더했다. 어설픈 해갈에 온 국민이 단합한 셈이었다. 그저 고통을 벗어나려고만 했는지 모른다. 고통이 주려는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영화가 마쳤을 때 한참 동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눈물이 흘렀다. 다시 가슴이 웅웅 아파왔다.

영화 컬럼




예수님이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 하고 차려주신 성만찬이 떠올랐다. 세례를 받은 뒤 성만찬을 받을 때면 나는 가능한 한 엄숙하고 거룩한 태도로 임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 순간’이 왔다. 떡을 받아들 때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촉감이었다. 그것은 찢어진 살 덩어리였다. 손가락에 힘을 더 주기라도 하면 금방 피가 주르르 흐를 것 같았다. 아, 그것이 “이것은 내 몸이다” 하고 내어주시며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나를 기념하라” 하신 그것이었다. 슬픔을 기억하는 일, 고통을 기억하는 일, 뚝뚝 피가 흐르던 주님의 몸을 기억하는 일, 억울한 죽음에 대한 기억, 지켜주지 못한 아픔과 눈물, 그 잔인하던 시각의 기억….

4년이 흘렀고, 4월이 오고, 다시 꽃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누구에게나 꽃은 아름답지만, 누구에겐 꽃이 피는 일이 슬픔이기도 하다. 꽃이 피면 누군가는,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도 붙들어 흔들며 질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충분히 고통스러웠는지,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났는데 우리는
그 시간을 진지하게 아파하고 슬퍼했는지,
어떤 몸부림을 치며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
지켜주지 못한 우리 아이들을 그리워했는지….


제작

글 : 박명철 작가
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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