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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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만나면 누구나 헤어짐이 있기에 숨 쉬는 동안은 모든 게 다 채비가 아닐까 합니다.”

영화 <채비>의 주연 고두심 씨가 어느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듯 이 영화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두고 병을 얻어 먼저 떠나야 하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심정과 이것저것 챙겨야 할 소소한 이별의 준비들을 그렸다.

세상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엄마뿐인 아들을 두고 떠나야 할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다. 당장 홀로 남아 끼니를 해결하고, 빨래도 하고, 돈벌이도 해야 하는데, 아들은 무엇 하나 온전히 해낼 수 없을 것 같다. 골똘히 생각할수록 답은 오리무중이다. 누나라고 있는 것이 제 앞가림하기도 벅찬 형편이다.

엄마 생각에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속고만 살 것 같은 아들은, 세상이 모두 자기편인 양 헤벌쭉 마냥 좋게만 바라본다. 아무도 내 아들을 위해 따듯하게 말해주고, 환영해줄 사람이 없는 세상인데 말이다. 엄마는 그래서 아들에게 세상을 믿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아무도 의지해선 안 된단다, 심지어 믿음이나 사랑이나 희망조차 가져서는 안 된단다, 어찌하든 독해져야 한다,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을 두려 한다. 엄마가 살아온 세상에선 밥이 생기지도 않을 그런 것들이 참 부질없었다. 모질고도 고통스러웠으며, 더욱이 남편 없이 두 아이를 키워야 했던 엄마는 독해야만 겨우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하물며 장애인에게야 말할 나위 없을 것이었다.



병세가 하루 달리 나빠지자 엄마는 급한 마음에 부자연스러운 길이라도 재촉하고 싶다. 아들이 멀리서 지켜보며 마음으로 사랑하는 아가씨를 찾아가선 “제발 우리 아들에게 모질게 말해서 다시는 아가씨를 생각하지도 못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목사님을 찾아가서도 “하나님 같은 건 없으니 믿을 건 오로지 네 자신뿐이라고 말해 달라” 부탁한다. 어떻게든 밥벌이는 해야 할 테니 적은 벌이라도 할 수 있는 일자리만큼은 찾아주려고 한다. 엄마가 살아온 세상을 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줘야 할 엄마의 착잡한 마음은 병세가 깊을수록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들은 엄마가 일러주고 물려주고자 하는 세상을 잘 익히지 못한다. 아니 세상은 아들에게 엄마가 알고 있는 세상의 민낯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아들이 훔쳐보며 사랑하는 아가씨도 그렇고, 목사님도 하나 같이 엄마가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한다. 어쩌면 엄마가 알고 있는 세상, 그래서 아들에게 어떻게든 알려주어서 잘 채비하게 해야 할 세상은 단지 엄마의 세상일 뿐 아가씨에게도, 목사님에게도, 구청의 공무원들에게도, 심지어 힘이 되어주지 않을 것 같은 누나에게조차 엄마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영화 <채비>를 보면서 나는 아들 ‘인규’의 변화에 주목하기보다 떠나는 엄마 ‘애순’의 변화에 주목하고 싶어졌다. 아들을 위해 분주하던 엄마의 채비는, 오히려 험준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만난 모든 부정적이고 차가운 인상들을 새로이 정돈하고 간직한 채 떠나야 할 ‘애순’ 자신을 위한 채비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내가 만난 슬픈 세상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일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그것은 어쩌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가지는 아픔일 게다. 나는 거기서 우리들의 민낯을 본다. 어떻든 그 슬픈 세상의 민낯을 내 아이들에게 알려주고자 안달하는 우리들의 모습 말이다. 아이들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대면서 끝내 다짐을 받아내려고 하지 않았던가.



다른 생각은 하지 말아. 영어만큼은 미국 사람들처럼 해야 하고, 돈이 되는 직업이 무엇보다 좋은 직업이야.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돈을 모아야 하고, 높은 데를 탐해야 한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착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부러우면 지는 것, 알지? 세상은 지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살아야 한다. 이기는 게 착한 것이다. 내 말을 들으렴. 누군가 너에게 들려주는 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안 된단다.’

인규의 엄마 애순의 채비는 결국 이런 우리들의 ‘채비’와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자신이 불신하는 그 세상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을까. 제발 세상이란 놈은 악하다고, 내 아들의 편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주기를 호소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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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떠난 뒤 남아서 믿음을 지켜나가야 할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말해준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그에게도 로마의 수감생활은 채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아비의 마음을 가진 것 같다고 고백하였듯이, 아비 바울의 마음은 온통 자신이 떠난 뒤에 살아남아 저 무지막지한 로마제국의 탄압으로부터 아들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으리라. 당장 눈앞에서 마주하며 그 채비를 다하지 못하는 마음이야 얼마나 안타깝고 조급했을까.

그의 채비 또한 자신이 살아온 세상의 민낯을 알려주는 일이고, 그 세상에 맞서는 길을 일러주는 일이었는데, 어이없게도(?) 그는 ‘정복’이 아닌 ‘사랑’이란 삶의 기술을 펼쳐놓고 있다. 전술 치고는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아무도 그런 전술로써 로마의 압제에 맞서리라 예상한 사람도 없었을 테고, 이 전술을 신뢰하기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만은 끝내 이기고 남는다. 그러니 사랑이다, 사랑이다, 오직 사랑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온통 이 사랑의 복음을 이야기하는 데 온통 쏟아 붓고 있는 이 늙고 병든 아비 또는 스승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짓밟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네가 짓밟힌다, 그렇게 강박스럽게 고집하는 애순의 시간과 얼마나 대조를 이루는가. 아니 애순과 결코 다르지 않은 우리 시대의 엄마아빠들의 슬픈 채비와도 얼마나 비교가 되는가.

딸과 함께 도쿄와 교토와 후쿠오카를 여행했다.
탄생 100년을 맞는 윤동주의 시간을 추억해보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윤동주 시인이 유학하던 릿쿄 대학을 거닐 때는 식민지의 청년이 이제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제 나라의 말과 글로써 시를 짓고,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고자 다짐하던, 슬프도록 아름다운 ‘동주의 시간’을 생각했다. 이제 중학생인 딸이 그 아름다움을 공감할지 알 수 없었다. 초겨울에 접어드는 이국의 캠퍼스를 걸으며 아빠가 흘린 눈물 한 방울의 의미를 딸은 언젠가 알게 되겠지. 동주의 삶을 수필에 담아 교과서에 실은 사람들, 동주의 시를 번역하고, 동주의 시비를 세우고, 동주가 태어난 북간도를 찾아가 동주의 묘를 찾아낸 사람들, 그렇게 이국의 슬픈 청년을 잊지 않고 기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이 동주의 삶을 그린 뮤지컬을 보며 훌쩍일 때 딸도 그 알 수 없는 눈물의 의미를 캐내느라 분주했다.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모두 그렇게 한 청년의 아픈 시간을 추억하며 우리의 구원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고서들을 파는 오래된 서점이 줄지어 있는 진보초(神保町)의 골목을 쏘다니다 밤에는 도쿄타워에 올라 2017년의 도쿄를 바라보며 딸과 사진을 찍었다.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고,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며, 남의 영토를 탐하는 나라. 그 슬픈 민낯을 가진 사람들 속을 거니는 동안 나는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이 다시는 동주의 슬픈 운명을 닮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러다가 또 생각했다. 딸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방식이, 우리는 지금 해야 할 채비란 것이, 어찌 보면 내 안에서부터 좋은 세상을 짓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어도 좋겠다고. 사도 바울 같은, 아니 예수의 세상살이를 닮은 그 채비의 방식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것이라고.

교토로 향하는 신칸센의 창 밖으로 멀리 후지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만년설이 드리워진 후지산의 풍경은 순간 <채비>에서 엄마를 먼저 떠나 보낸 뒤 아들 인규가 살아가던 씩씩한 세상과 닮아 있었다. 끝내 이기고 남아 있으리라, 가르친 사도 바울의 목소리가 또 하얀 눈처럼 서늘하게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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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명철 작가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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