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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스와 요르고스 그리고 당나귀


팔라디키 섬. 이름도 생소한 이 곳은 그리스의 한 작은 섬이다. 그리스의 갈라파고스를 캐치 프레이즈로 내걸고 섬을 보존하고자 섬 마을 사람들은 독일의 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았다.

자, 이 곳, 팔라디키을 조금 더 설명해 드려야겠다.
일단, 팔라디키는 앞서 말씀 드린대로 그리스의 한 작은 섬이다.
그리스는 어떤 곳이었던가. 인류의 문명의 발상지, 민주주의가 꽃 핀 곳, 신화와 영웅의 나라, 헬레니즘의 본산지 ... 찬란했던 문화와 문명을 누리던 자들의 후예인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리라. 하지만 21세기의 그리스는 옛 영화의 흔적을 끌어안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워낙 아름다운 경관과 유적이 많다 보니 전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몇몇 유명한 장소에 해당되는 이야기이지 않겠는가. 팔라디키 정도의 작은 섬은 그래서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팔라디키에는 다행히 장점이 몇 가지 있다. 아름다운 푸른 색의 하늘, 평온하고 역시 아름다운 바다, 누구라도 탐낼 만큼 멋진 해변과 느릿느릿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이 그것이다. 누군가의 여가를 보내기에 혹은 여생을 보내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지 않은가. 아, 게다가 섬의 두 마을 중간에는 다행히도 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병원이 있다. 비록 손을 떨고 나이가 많긴 하지만 외과의사도 한 명 있고 미소를 만면에 띠고 반갑게 사람들을 맞아주는 간호사도 한 명 있다. 이 정도면 어디가 아프거나 비상시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마음 한 켠에 안심이 되지 않는가. 마을 사람들은 생각했다. 우리의 이런 장점을 살려서 잘 지내보자고. 그래서 그들은 은행융자를 받아 ‘그리스의 갈라파고스’를 꿈꾸게 되었다.



비상이 걸렸다.
실사를 나오면 마을의 실태를 고스란히 들키게 되지 않겠는가. 비록 이 섬이 멋진 하늘과 바다와 해변과 병원을 갖고 있고 다혈질이며 느긋하고 느릿한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은행이 제시하는 조건, 발전소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곳의 전기는 바다 속 해저선을 통해 공급받는 것으로 이것으로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걱정을 거두고 어떻게든 ‘발전소’를 만들어 독일 은행 직원을 감쪽같이 속여 넘겨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돌려보내기로 결심하는 사이 그가 도착한다. 마을 남자들이 가짜 발전소를 만드는 동안 시간을 끌기 위해 이 핑계 저 핑계로 교묘하게 남자를 속이는 동안 남자는 서서히 이 섬의 일부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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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딘 것이 아니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일분일초 숨도 못 쉬게 독촉하는 독일의 상사와는 달리 천천히 술잔을 기울이며 별 것 아닌 것에서 큰소리로 웃음을 나누는 마을 사람들, 눈만 마주치면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까지 눈치채고 나니 이 독일남자의 마음은 그만 따스하게 물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독일남자와는 달리 마을 남자들 특히 파노스는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적당히 속여서 얼른 독일로 쫓아버리려던 이 남자에게 파노스와 그들도 조금씩 마음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독일남자의 이름을 그리스식으로 ‘요르고스’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그만 이 독일남자를 아끼게 되었다. 그러니 요르고스를 속여야 하는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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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그런 이미지의 남자가 그려지지 않는지. 그리고 규격에 맞춰진, 시간에 엄격한, 임무에 충실한 회사원의 이미지를 더해보라. 그것이 바로 ‘요르고스’의 모습일테니.

그런데 가만 보니 요르고스의 경직되고 엄격한 모습에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언제나 무언가에 바쁘게 쫓기듯 사는 우리는 느긋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팔라디키 섬의 사람들일 리 없다. 우리 역시 파노스이기 보다는 요르고스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삶의 속도를 늦추는 데 관심이 많아졌다.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푸드 ...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데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요가, 필라테스 등으로 몸의 긴장을 이완하려 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습관을 들이고 스트레스를 없애고 .. 등등으로 마음의 경직을 풀고자 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힐링 또는 치유라는 말과 통한다.

생각해보니 진정한 의미의 치유는 우리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함께 주셨던 형상, 그것은 형태로서의 형상이기도 하지만 성품을 전해 받았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 속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치유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 그것을 부여 받은 인간본연의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다.

죄성과 타락 이전의 인간의 성품, 그것은 곧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으로 귀결되는 여러 가지 덕목일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덕목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힐링, 치유는 인간의 근본적인 본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진정한 의미의 치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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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지혜 | 시네마토커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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