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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티아고


하페 케르켈링은 지금 카미노를 걷고 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의 길.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또 걸은 길, 걷고자 하는 길, 수많은 질문을 가슴에 품고 오는 길, 걸으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길 혹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 없고 얻은 것이 없을 길.

그는 번 아웃 되었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코미디언이라는 꿈을 이루었고 그의 재능과 노력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으며 그 대가로 매일 매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사인을 해주고 (그의 기분이나 감정이나 체력이 어떻든 간에) 재미있고 즐거운 표정으로 함께 사진을 찍어준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꽉꽉 들어찬 스케줄은 그의 숨통을 조여오고 잠시의 휴식도 없이 달려온 시간들은 이제 거대하고 무거운 질량으로 그를 눌러 내리지만 그는 그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니, 귀를 기울일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게 그는 번 아웃 되었다. 마음의 건강도 몸의 기력도 바닥을 쳐버린 그 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소리를 들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카미노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는 카미노에 깊이 빠져들지 않고자 한다. 나이도 있고 체력이나 기타 조건을 생각해볼 때 다른 사람들처럼 비박을 하거나 텐트를 치거나 도미토리에 구겨져 들어가 누군지도 모르는, 지친 육신으로 곯아떨어져 있는 그들이 코고는 소리에 밤새 뒤척거리다 더욱 더 피곤해진 몰골로 일어나 다시금 길을 걷는 것은, 그가 원하고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는 단지 휴식이 필요했을 뿐이므로. 그래서 하페는 현명하게도 낮에는 열심히 걷고 저녁에는 좋은 식사를 여유 있게 하고 밤에는 호텔을 잡아서 편히 쉰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으로 왜 카미노에 갔느냐고 화를 내지 말기 바란다. 이렇게 자세하게 하페가 카미노를 어떻게 걷고 있는지 소개한 것은 그가 이 순례의 길을 가볍게 생각하고 설렁설렁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하페는 그렇게 자기자신에게 적당한 쉼과 적당한 여유를 주면서 내면을 회복해 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내면이 회복되어 가면서 하페 자신이 어릴 적부터 가꿔오고 키워 온 코미디언이라는 꿈과 코미디언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행복함을 주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과 다시 한 번 만나게 되는 계기를 이 곳, 카미노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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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티아고는 이렇게 ‘순례의 길’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눌려있지 않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순례의 길을 걷는다고 해서 짐짓 구도적인 표정을 짓지도 않고 마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고 억지로 심각하게 굴지도 않고 순례의 길에 산다고 친절하고 상냥하게 굴지도 않는다. 순례의 길에 위치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곳은 단지 삶의 터전이며 수많은 관광객들 혹은 순례 객들이 몰려오는 곳이며 그 곳에서 그들은 음식을 팔고 숙소를 제공하고 스탬프를 찍어주고 안내를 해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들의 표정과 마음은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하페는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페는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자신, 번아웃 되어서 지치고 지친 상태로 이곳을 찾았지만 그가 이 길에서 던진 질문은 허황되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시간이 그에게 쥐어준 삶의 답을 알고 있는 그답게 자신의 내면과 만나고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돌아볼 줄 아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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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많은 사람들이 답을 찾아 이 곳에 온다. 나는 질문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말이나 “ 긴 여행이 아니라 작은 여행을 이어서 간다”거나 “ 카미노는 사람의 힘을 모두 빼앗았다가 몇 배로 돌려준다”는 그의 말은 그의 본질과 삶의 경험치가 이미 그를 놓은 수준의 자기성찰에 올려놓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자신과 만나야 하는 때가 있다. 그 때는 번잡하고 분주한 시절에는 결코 찾아오지 않고 주어지지 않는다. 그 때는 고요하고 침잠된 시간, 그 때는 무언가 결여되고 갈증이 이는 시간이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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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수많은 순례 객들이 혹은 무언가 인생의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카미노를 찾고 걷는 것은 하나님과 만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스스로는 수많은 이유와 수많은 상처와 수많은 갈증과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으러 (또는 해답을 얻을 수 있는 힌트 내지는 힘을 얻기 위해) 카미노에 발을 들여놓는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시간과 마음과 행동일지도 모른다.


단 한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은 많은 질문을 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질문들은 때로 자기자신을 향해 무겁게 다가오기도 하고 타인을 향해 날카롭게 뻗어 나가기도 하며 하나님께로 솟구치기도 한다. 그리고 스스로 인정하건 부인하건 간에 인간의 이러한 질문들은 구도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어 한다. 그렇게 인간은 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 인정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존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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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간은 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 인정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존재가 아닌가.

<나의 산티아고>는 하페와 함께 우리 스스로 카미노를 걸으며 조금 더 객관적으로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우리 스스로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리고 그 용기는 지난 시간의 자기자신과 대면하고 하나님과 대면하는 때를 마련해 주면서 비로소 각자의 삶이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는 실마리를 쥐어준다.

당신이 지금 갖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



제작

글 : 신지혜 | 시네마토커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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