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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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군의 장교 클라비우스는 그다지 많은 것을 신뢰하거나 믿지 않는다.
그가 믿고 아는 것은 전쟁터에서 배운 것들이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들이다. 그 날도 그는 막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로마의 영토가 확장되면서 주변의 다른 민족들을 흡수하게 되고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것. 클라비우스는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고 업적을 남기는 군인이다.

영화 컬럼

유대인의 왕 이라 불린 어떤 사내가 다른 두 죄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처형되고 명령을 받고 부관 루시우스와 함께 그 곳을 찾은 클라비우스는 예수라는 이름의 그에게서 다른 죄수들과는 무언가를 느낀다.

울부짖는 예수의 어머니와 또 다른 여인들, 십자가 위에 있는 예수를 바라보며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며 두려움에 떠는 병사, 이미 숨이 끊어진 듯 보이는 예수 ...
수많은 전장에서 죽음과 맞닥뜨렸고 죽음을 보아 온 그이지만 이 처형의 장소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어딘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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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몰려와 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갈지 모르므로 무덤을 막은 큰 돌을 더 강하게 봉하고 로마의 인장을 찍어달라고 조른다.

이런 저런 상황이 귀찮아진 빌라도는 클라비우스에게 이 일을 직접 처리하라고 이르고 명령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지만 아침이 밝자 큰 일이 벌어지고야 만다.

무덤을 지키라고 세워 두었던 보초 둘이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는지 무덤이 열리고 시체가 사라진 것이다.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은 그가 부활했다고 떠들고 다니며 그 와중에 막달라 마리아라는 창녀까지 만나게 된다. 보초들의 증언도 어딘가 신빙성이 떨어지고... 클라비우스는 부관과 함께 예수의 시체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고 수사를 벌이지만 그가 마주친 사실은 그를 경악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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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기독교인이라면 익히 아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아니,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기독교 교리의 근간이 되는 예수의 부활의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든 알고 있다. 그 사실을 들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 또는 진실로 믿는지 그렇지 않든 지의 차이만 있을 뿐. 이 영화 또한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부활의 이야기에 기반한다. 또 그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영화 속 몇 장면에서 보여진 것이다. 한마디로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고 재해석된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활>은 다른 부활 이야기 또는 부활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클라비우스는 일단 예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로마인이며 그는 군인이고 그는 명령 받은 대로 행하고 그는 전장에서 얻은 자신의 경험치만 믿는다. 따라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것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을 수밖에 없고 단지 전장에서 막 돌아와 피곤하고 쉬고 싶은 마음을 눌러가며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에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유대인들이 몰려와 이러쿵 저러쿵 하지만 그 이야기에도 관심이 있을 리 없고 예수의 무덤이 빈 것과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부활을 떠들고 다니는 것도 사실 그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런 그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상관의 명령일 뿐. 단, 명령에 따라 무덤에 갔을 때 날카로운 그의 눈에 비친 이상한 점 한 두 가지 정도는 아마 그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으리라. 밧줄이 터지듯 끊어진 것과 두 보초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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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골고다 사건을 시작으로 명령을 받은 클라비우스가 예수의 시체를 찾아 다니며 수사를 벌이는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시점은 이전의 부활 사건을 다룬 그 어떤 영화나 이야기보다 거리 두기를 분명히 하고 있으며 클라비우스 스스로가 목도한 사건에 대해 혼란과 혼돈을 내비치고 있다. 우리의 생각을 2천 년 전으로 돌려놓아 보자. 누군가가 죽어 무덤에 봉해졌는데 사흘 뒤 무덤이 활짝 열렸다.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와 특별히 상관없는 사람, 내가 직접 대면한 적 없는 사람, 그저 사람들의 소문 속에서 이러저러한 이적을 행했다는 사람,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사흘 뒤 부활했다는 이야기, 그 소문을 들었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나아가 소문의 ‘그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었다면 어떨까. 경외감이나 믿음 보다는 무섭고 놀라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두려움과 놀람은 혼란과 혼돈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소문이 머리 속에 남아 잘 못 본 것이라고 결론을 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당시 예수의 부활은 글자 그대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펴져나간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힘은, 그 파급력은 언뜻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의 규모이며 당시의 혼란은 아마도 심각한 정도였을 것이다. 클라비우스는 바로 그 시대, 로마군의 일인으로서 그 사건의 시대에 있었고 그 사건의 현장에 있었고 그 사건의 주인공과 맞닥뜨린다. 명령대로 냉정하고 냉철하게 수사를 벌이던 그가 마주쳤을 그 사건이 클라비우스에게 얼마나 큰 타격과 충격을 주었을지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부활>은 바로 그런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어떤 영화보다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잘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부활절을 맞아 개봉되는 <부활>.
클라비우스가 마주친 그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를 이제 우리가 만나볼 때다.

제작

글 : 신지혜 | 시네마토커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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