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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소녀는 꿈을 꾸지 않는다.
아니 꿈을 꿀 시간이 없다. 언제나 흐트러짐 없이 깔끔 단정하고 철두철미한 어머니가 짜놓은 스케줄대로 시계처럼 정확하게 하루하루를 소화하는 소녀에겐 꿈을 꿀 시간과 마음조차 허락되지 않은 것 같다. 소녀의 스케줄은 이미 한 주, 한 달을 넘어서 수 년 후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최고의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와 운동과 수면과 식사와 일상의 모든 시간이 한 치의 빈틈없이 차있는 소녀의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소녀는 낯선 할아버지와 일정에 없는 만남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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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1

그동네. 소녀와 엄마가 진학을 위해 이사한 그 동네는 조용하고 규칙적이고 서로간에 교류가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소녀의 옆집에는 그 동네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매일 무언가를 두드리고 우당탕거리는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으니 ... 다른 집과는 사뭇 다른 외관을 가진 기묘하게 생긴 집, 마당에는 경비행기가 있고 (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 안에는 각양각색의 색깔과 물건들이 이리저리 놓여있고 수북하게 책이 쌓여있는 집.

어린왕자2

우연히 그 집에 발을 들여 놓게 된 소녀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마음을 열어버린다. 할아버지 집에 있던 귀여운 사막여우 인형을 품에 안고 눈을 반짝거리며 듣는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경비행기를 몰고 가다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 만났던 작은 소년, ‘어린왕자’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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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디 작은 소행성에서 장미 한 송이를 키운다는 소년, 양이 사랑하는 장미를 먹어 버릴 까봐 유리로 장미를 덮어 놓은 소년, 해지는 것이 보기 좋아 수 십 번 장소를 옮겨가며 해지는 것을 보았다는 소년, 자신의 소행성을 떠나 다른 별에서 임금과 사기꾼과 학자 등등을 만났다는 소년, 그리고 지구에 도착해 사막여우를 만나 서로 길들여졌다는 소년...


그 소년의 이야기는 소녀의 마음에 뭉클함과 따스함을 지피기 시작했다. 어느새 소녀는 스케줄대로 움직이지 않고 엄마가 출근한 사이 할아버지 집에서 종일 보내며 제대로 된 ‘유년기’를 누리기 시작한다.
그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시간들이란!

소녀의 시간이 그렇게 파스텔 톤의 시간으로만 점철되었더라면 아마도 일순간의 꿈같이 끝나버렸을 테지만 소녀의 꿈의 시간은 한 뼘 더 성장하기 위해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그 위기의 시간 속에서 어른이 된 ‘어린왕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이미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온전히 잊어버린 채 아무 생각도 없이 꿈을 꾸지도 못하고 눈앞에 펼쳐진 일을 시간 내에 해치우느라 힘겨워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다. 조금 과장을 섞어 얘기한다면 생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읽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터이다. 혹시 책을 읽지 않았다 해도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정도는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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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가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 있는 힘껏 보폭을 벌려 목적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 달려만 가는 데서 오는 피로감, 지속적으로 타인과 자신을 견주어 보면서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으려 하는 쓸모 없는 경쟁심에서 비롯된 허무함 ...

어린왕자 또한 그만, 자기 별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사실이 슬프지 않다면, 이런 ... 당신의 마음은 지금 심각한 것이다) 만약 소녀가 할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소녀도 어린왕자와 똑같이 허겁지겁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서글픈 심정의 어른이 되어버렸겠지 ... 그 부분이 마음에 크게 와 닿는 건, 소녀의 모습이, 어린왕자의 모습이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거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왕자
인간은 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 오감으로 많은 것의 정보를 얻어 인간의 삶을 영위하지만 사실 인간은 오감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것들을 (어쩌면 훨씬 더) 많이 갖고 있지 않은가.

특히 옛날에 비해 육체를 쓰는 일보다 머리를, 정신을, 감정을 쓰는 일이 많은 현대인들은 몇 가지 육체적 감각에만 자신을 집중시켜 더 이상 마음으로 영혼으로 감지하고 예감하는 것에는 심각하게 둔해진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 무감각해지고 무관심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영혼에 점점 관심이 없어지고 좁아지고 얕아진 오감에만 집중하다 보니 상상으로 그려내고 꿈을 꾸어 얻어내고 영혼의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꿈을 꾸며 환상을 보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어른이 된 어린왕자인 우리는 이미 그런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것들인 것을, <어린왕자>는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인간은 사실 얼마나 제한적인 존재인가. 그 존재가 육체라는 한계를 넘어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결국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잃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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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어린왕자를 슬퍼하듯, 소녀가 빽빽하게 짜인 스케줄대로 자라서 역시 어른이 된 어린왕자 같은 어른이 되었다면 그 또한 슬픈 일일 텐데, 생각해보니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은 어른이 된 어린왕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육체뿐 아니라 영혼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것들,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 언제나 되새겨야 하는 것들을 붙잡아야 할 것이다. <어린 왕자>는 그래서 현대인을 향한 아름다운 동화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는 딸랑거리는 작은 종과도 같은 작품이다.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 그것은 곧 하나님께로 반듯하게 향해 있는 마음이 아닐까.


제작

글 : 신지혜 | 시네마토커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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