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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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를 회피하거나 미루는 분들의 경우 다음 몇 가지 이유를 댄다.

첫째, 자서전은 유명한 사람이 쓰는 것이다.
둘째, 자서전은 글쓰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셋째, 모든 인생은 헛되어서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넷째, 아직 자서전을 쓸 나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자서전 쓰기 운동 또는 강의를 해오면서 이 편견을 어떻게든 깨기 위해 애썼다. 즉, 자서전은 누구나 쓸 수 있고, 또 써야 한다. 그것은 인생의 숙제 같은 일이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보다 소중한 것은 없으니까. 게다가 글쓰기라는 일종의 ‘기술’ 따위 장애물 때문에 그 소중한 일을 못하거나 하지 않는 건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 성경을 읽고 그 가르침에 귀 기울여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창세기 출애굽기를 비롯해 많은 성경들이 ‘자서전’ 같은 글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서전을 씀으로써 인생을 정리하기도 하지만 이런 정리를 통해 더 나은 여생을 계획할 수도 있으니 자서전 쓰기의 나이를 가늠하는 일 또한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일이다.



왜 자서전 쓰기에 대해 이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느냐 하면 ‘버킷리스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인터넷에서 ‘버킷리스트’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사람들의 입에 널리 회자하는 이 단어의 의미는 금방 알 수 있다. 이런저런 장식물을 모두 떼고 본체만 이야기하자면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다. 그리고 자서전 쓰기는 어쩌면 모든 사람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에 속하거나 속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비밥바룰라>는 노인들 네 분의 버킷리스트 실행기를 다룬 영화이다.

개봉한 지 제법 오래되었으나 이 영화를 본 관객 수는 10만을 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신구 박인환 임현식 윤덕용 등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치고는 실망스러운 흥행기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웃 어르신들의 버킷리스트 실행 스토리에 관심 가질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아내에게 꼭 자신의 진심을 전해주고 싶거나, 언제 떠날지 모를 병을 진단받고 평생의 벗들과 함께 살아보고 싶거나, 젊은 시절 떠나 보낸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거나…, 영화 속 노인들의 버킷리스트는 이처럼 사소한 소망들이다. 어쩌면 모든 버킷리스트가 그렇지만 남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것이 정작 본인에게는 목숨만큼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의 가치는 어쩌면 타인의 ‘무관심’과 자기 자신의 ‘절대관심’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이른다. 우리는 정작 절대관심을 가지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 어떤 임무를 놓쳐버린 채 타인의 관심이 머무는 곳을 맴돌며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때로는 바쁘고 급한 사안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그 관심의 방향을 전환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끌려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하고 두려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래서 눈길 쏠리는 거기서 서성거리는 나를 타일러 나만의 절대관심에 집중하도록 스스로 계몽해야 하지 않을까.

영화 컬럼





세련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투박하고 밋밋한 화면 속에서 노인들은 여전히 자기 자신의 인생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움직임은 느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분투를 응원해주는 ‘곁’이 있어 외롭지 않다. 자칫 우리는 노인의 시간을 그저 이별의 시간쯤으로 이해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내려놓고, 포기하고, 다독이며, 떠남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 막연한 이해가 그들의 시간을 어둡고 우울하게 만드는 주범이 아닐까?



<해피해피 브레드>しあわせのパン, 일본, 2011년, 미시마 유키코 감독, 하라다 토모요 오오이즈미 요 주연 라는 영화에선 우리 인생이 가진 신비로움 하나, 즉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여전히 푸르른 잎은 돋고 거기서 새로운 꽃이 피어난다는 사실에 대해 잘 이야기해준다. 그 이야기를 잠깐 끌어오면 이렇다. 일본 홋카이도 섬의 아름다운 토야 호수를 끼고 자리한 언덕 마을에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남편이 굽는 따뜻한 빵과 아내가 내리는 향긋한 커피는 그 맛으로써 누군가를 치유할 만큼 특별하다. 이 카페의 2층엔 아담한 침실이 있어 멀리서 여행 온 사람들이 머물며 지낼 수 있다. 눈 내리는 어느 겨울 밤, 결혼한 지 50년이 된 사카모토 씨 부부가 방문한다. 부부는 이곳에서 그들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리라 생각하며 불안해하고 우울해 한다.

그러나 이곳에 도착한 첫 시간부터 사카모토 씨 부부는 카페 부부의 친절과 이웃의 배려를 받으며 오히려 몸과 마음을 치유 받고 돌아간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사카모토 씨는 이 카페로 편지 한 통을 보낸다. 사카모토 씨는 이른 봄에 아내를 떠나 보냈다는 소식과 카페에 머물면서 맛본 크고 작은 기적들에 대해 언급한다.

“지난겨울 카페에 갈 때는 아내의 살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그곳에서 같이 죽을 수 있으면 죽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인지 깨달았어요. 그 사람이 생전 먹지 않던 빵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계속 변하는구나!’ 하는 걸 비로소 처음 깨달았어요.”

사람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변한다는 깨달음.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놓쳐선 안 될 우리 인생의 신비이다. 헨리 나우웬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생의 사이클은 단 한 바퀴뿐이고, 길고 긴 인류 역사 가운데 지극히 작은 몫을 맡을지라도, 기품 있고 조심스럽게 그것을 감당하는 게 인간의 가장 큰 소명이다. 진흙탕을 뒹굴고 오르내리기를 되풀이하며 한 발 한 발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인생일지라도, 첫 번째 흙구덩이는 두 번째와 다르고 부침을 거듭하는 가운데도 진보가 있으며 죽음 또한 마지막 선물이 될 수 있다.” 헨리 나우웬, <나이 든다는 것>, 포이에마, 2014, 14쪽

인생의 어떤 시간이든, 심지어 죽음마저 선물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끝내 기품 있고 조심스럽게 맞으라는 충고인 셈이었다. 또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도록 허락하는 셈이었다. 그렇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새싹은 돋고 꽃은 핀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신비로움이 깃드는 방식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는 곧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비워둬야 할 여백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경은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지 않나 싶다. 나의 길은 하늘이 높은 것처럼 높고, 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달라서 깊다고.


제작

글 : 박명철 작가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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