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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콜라


아직은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이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시절.
아직은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이 <오델로>의 무어인 (그보다 더 적역일 수 없는) 역할을 하지 못하던 시절.


한때 명성을 얻었으나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 조르주. 광대 분장을 하고 자신의 레퍼토리를 선보이지만 서커스 단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한다. 조르주가 최고였던 건 인정하지만 이제 그런 식의 연기는 먹히지 않는다고. 그런 조르주의 눈에 검은 피부를 가진 남자가 들어온다. 식인종 역할을 하며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남자, 대사도 없이 어흥 어흥 소리만 지르는 그 남자에게 관객들의 시선이 박히고 그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그리고 조르주는 검은 피부의 남자와 의기투합해서 콤비를 이룬다. 그들의 이름은 푸티트와 쇼콜라.



두 사람은 엄청난 기세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고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파리의 대형 서커스 극장에서 그들을 스카우트하기에 이른다. 푸티트가 짜는 이야기와 순발력 있고 재치 있는 쇼콜라의 연기는 최상의 호흡을 이루고 두 사람은 순식간에 인기와 돈을 그러모으게 된다. 푸티트는 아무리 인기가 올라가도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성실하게 일상을 유지하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이 노예의 신분으로 시작해서 인기절정에 오른 쇼콜라는 최고급 옷과 차를 사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나아가 도박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위태로워진다.

그런 쇼콜라에게 위기가 찾아오고야 마는데, 두 사람의 인기를 질투한 누군가가 쇼콜라가 신분증이 없는 불법체류자라고 경찰에 알린 것이다. 감옥에 들어간 쇼콜라는 아무 이유 없이 걷어차이고 매를 맞으며 끔찍한 고통 속에 놓이고 그 곳에서 자기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푸티트와 둘도 없는 콤비이고 푸티트와 떨어질 수 없는 쇼콜라이지만 왜 자신은 항상 멍청하고 얻어맞는 역을 해야 하는지, 검은 피부를 가진 자신은 왜 노예로 태어났는지, 사람들은 무대 위에 있는 자신에게는 박수를 보냈으면서 왜 감옥에 집어넣었는지.

영화 컬럼



전반부의 유쾌하고 가벼운 분위기와 후반부의 묵직하고 흔들리는 분위기는 검은 피부를 가지고 그 시대를 살았던 쇼콜라라는 한 인물을 통해 인간에 대해 묻고 있고 인권에 대해 묻고 있다. 검은 피부를 가지고 쇼콜라라 불리며 최초의 흑인 광대가 된 그.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이를 기르는 백인 간호사와 결혼한 그. 흑인 최초로 "오델로"의 무어인 역을 맡아 연극무대에 섰던 그.

이 정보만 가지고 보면 그는 개척자이며 용감한 투사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쇼콜라는 그저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인기를 누렸던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고 누군가와 우정을 나눴으며 자기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다.


쇼콜라가 흑인이라고 해서 노예로 태어나거나 업신여김을 받거나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 매를 맞거나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엄청난 인기를 얻고 돈을 번 쇼콜라라 해도, 최초의 흑인 광대이며 연극무대에 선 사람이라 해도 그가 무대 아래로 내려온 순간부터 그를 둘러싼 보호막은 얇디 얇아지고 보이지 않는 차별의 계단이 그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놓여진다.

도대체 쇼콜라가 검은 피부를 가졌다고 그를 차별하고 멸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문득 마음이 찔려온다. 우리는 어떠한가. 나와 다르다고 차별하고 나와 다르다고 무시하고 나와 다르다고 멸시하는 것이 나의 모습에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분명 축복이자 은혜이다.

하지만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지 않은가. 구원은 나의 선한 행위나 나의 어떤 기복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축복에 감격할 일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사랑에 감사하고 감동할 일이지 그것으로 스스로 교만해지고 나와 다른 누군가를 무시하고 차별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차별과 분쟁과 대치와 분열은 우리의 영혼을 잠식한다. 직접 나 자신이 당하는 것이 아니어도 우린 마음과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향한 부당한 처사, 억울한 일에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입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입은 상처와 아픔은 오래도록 크게 기억하지만 혹시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행했던 잘못은 아예 인지하지 못하거나 금세 잊어버리는 경향을 갖고 있으니 특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시시때때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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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쇼콜라를 보고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던 그 시대의 사람들이 지금이라고 없겠는가. 늘 백인 파트너에게 얻어맞고 웃음을 흘리는 쇼콜라의 모습이 당연하다고 여기던 그 시대의 사람들이 지금이라고 없겠는가.

검은 피부를 가진 쇼콜라 역시 인간이며 그 역시 감정을 갖고 있고 그 역시 재능을 타고 났으며 그에게도 인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 시대 사람들은 과연 생각했을까. 그리고 현재 이 시대의 ‘쇼콜라’을 바라보는 우리는 어떤 생각을, 어떤 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문득 돌아보게 된다.

세월이 흘러 쇼콜라는 병을 얻고 다시금 가난해져 서커스단의 온정으로 간신이 몸을 의탁해 살아간다. 하지만 많은 것을 잃은 그에겐 두 사람이 있었으니 쇼콜라의 아내와 푸티트이다. 어쩌면 이 두 사람 덕분에 쇼콜라는 자기자신의 삶이 실패한 것이 아니며 자기자신의 생을 비관해서는 안 됨을 깨달았을 것이다. 흑인이라고 해서 환영 받지 못했던 그와 진정 손을 잡아준 두 사람은 그렇게 그의 삶의 마지막을 함께 지켜내는데, 고달픈 시대를 재능 하나로 버티며 살아간 쇼콜라는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깊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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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지혜 | 시네마토커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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