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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무뚝뚝한 에버렛(에단 호크)이 사는 집은 가로 세로 4미터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이다.
노총각의 시간도 한참을 흘렀으나 여전히 혼자서 살아가며 생선과 장작을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을 걸 두려워하여 사람을 멀리해 온 외톨이, 타인에게 정을 주는 법도 모른 채 스스로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에버렛이 가정부를 구하기로 했다. 누군가 집안을 청소해주고 식탁을 차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정부로 일하겠다며 찾아온 여인을 보면서 에버렛은 실망했다. 눈치도 없어 보이는 데다 다리가 불편하여 움직임까지 느렸다. 그러나 이 여인이 바로 에버렛의 좁고도 외로운 공간을 천국처럼 바꾸어줄 ‘에버렛의 사랑’ 모드(샐리 호킨스)이다.

자신이 살아온 생활방식을 결코 양보하지 않은 채 가정부로서 모드를 길들이고자 하던 에버렛은 자신의 경계 안쪽으로 훅 들어오는 모드에게 화가 난 나머지 손찌검까지 한다. 어쩌면 에버렛의 저항은 여기까지였지 싶다. 그 뒤로의 시간은 모드의 경계 안으로 스며들어가는 에버렛의 자발적 여정이 이어질 뿐이다.
모드와 함께한 에버렛의 세월은 작은 그들의 공간을 꽃과 새들의 그림으로 충만하게 채우듯 사랑과 관심과 온기로 충만했다. 모드는 에버렛의 기쁨이었다.

실화 속 인물인 모드는 여덟 살 때부터 성장이 느려졌고,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집 안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녀가 본 바깥세상이란 좁은 창문 밖이 전부였다. 누군가를 사랑하여 낳은 아기는 엄마조차 몰래 누군가에게 팔려갔다.

엄마인 모드는 그 아이가 죽은 줄 알고 살아간다. 오빠라는 못된 가족 때문이었다. 게다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오빠는 재산을 빼돌리고는 모드를 고모 집에 맡겨버렸다. 버려진 존재였다. 모드의 외로움을 달래준 것이 붓과 물감이었다. 창밖 세상은 붓과 물감의 힘에 의해 모드에게로 들어왔다. 아니 창밖 세계로 모드를 데려다준 것인지 모른다.

더 이상 갇힌 채 살 수 없다고 생각한 모드는 이제 ‘내 길’을 가고자 다짐한다. 가정부의 삶일지라도 스스로 선택하여 그 길 위에 서고 싶다.

 누가 보더라도 홀로 독립할 수 없는 가녀리고 무력한 여인이던 모드에게 에버렛의 출연은 튼튼한 언덕 같았다. 비바람을 막아주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힘센 보호자인 셈이었다. 에버렛을 남편으로 맞은 모드의 시간은 놀라웠다. 그녀의 그림이 온 세상에 알려졌고, 그녀를 향한 세상의 눈길은 애정으로 따뜻했다. 그것은 에버렛이란 사람이 가져다 준 행복이기도 했다. 에버렛은 모드의 희망이었다.

에이슬링 월쉬 감독은 “예술가와 생선 장수, 사회에서 소외됐던 어울리지 않는 이 한 쌍이 만나 일생에 걸쳐 서로의 삶을 바꿔가며 사랑을 하는 여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감독의 의도처럼 영화는 에버렛과 모드가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시간들을 그려낸다. 모드가 처음 찾아간 에버렛의 집은 차가운 공기가 냉랭하게 흐른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많은 세월을 물들인 뒤, 이 작은 공간은 모드의 그림과 그곳에 존재하는 두 사람의 표정만으로도 따뜻하고 발랄하다.

영화 컬럼






누군가가 누군가의 인생 속으로 들어온다는 건 얼마나 신비하고 놀라운 일 인가. 아니 얼마나 위대하기에 그들은 서로의 인생 속에 스며들어 기쁨과 사랑과 감사의 꽃을 피워냈을까? 누구라서 사람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장애인 목회를 해 오신 어느 목사님은 은퇴를 앞두고 이렇게 고백했다.

영화 컬럼



“나의 구원은 장애인으로부터 왔습니다.”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다리를 만들어주고자 애쓰는 한 젊은 목사님도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참 복이 많다. 좋은 목사님을 만나서’라고 말해요. 하지만 그분에게 저는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복이 많지요. 나야말로 이 아이들 덕분에 하나님을 더 깊이 배워가는 걸요’라고 말합니다.”




제작

글 : 박명철 작가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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