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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벨 - 당신의 마음에 울리는 소리


리처드. 매일 스포츠 뉴스를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지역명사이며 승부욕이 엄청난 스포츠 기자이다.

그의 거침없는 진행은 매일 사람들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데 특히 ‘꼴불견 심판’ 코너는 당사자들에겐 불쾌하기 짝이 없겠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웃음거리로 나름 인기가 있다.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집을 꾸미는 데 여념이 없는 아내와 법을 공부하는 똑똑한 대학생 딸 그리고 농구유망주인 아들과 함께 평범하고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리처드의 성격이 그 정도였더라면 아마 큰 탈 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겠지만 이 남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나 감정에 민감하지 못하고 욱하고 터져 나오는 성격 때문에 그만 일을 내고야 만다.

하긴, 그 날은 아들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농구시합 날이었기에 리처드의 신경은 온통 아들의 경기 모습과 골대에 쏠려 있었으리라. 게다가 스카우트를 위해 관계자가 와있는 것을 알고 나니 더욱 속이 타는 상황이었겠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아들이 멋지게 넣은 3점슛을 심판이 오판하며 2점 득점으로 깎아 내리고 리처드는 심판에게 항의를 하다가 그만 실수로 심판의 코를 다치게 한다.

심술이 잔뜩 난 심판은 리처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설상가상 경기장에서 심판과 다투는 모습이 SNS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생방송 진행에서도 물러나게 된다. 분명히 심판의 오판에서 비롯된 일련의 일들인데 모든 화살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이 못마땅하고 화가 나 있는 리처드는 가까스로 판사의 중재를 받아들여 구세군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오직 승리하는 것이 삶의 목표이며 자신이 정한 목표는 이루어야 직성이 풀리는 리처드는 봉사 하러 간 자리에서도 모든 것에 승부욕을 발동시켜 일을 그르치고야 만다. 과연, 리처드는 봉사활동을 통해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영화 컬럼

영화 <실버벨>은 성탄절용 영화다. 크리스마스 시즌, 구세군, 자선냄비, 선물박스 ... 꼭 이런 것이 배경이 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승부욕이 활활 불타는 다혈질의 리처드가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서서히 변화되는 모습이 꼭 성탄선물 같기 때문이다.

영화 <실버벨>은 성탄절용 영화다. 크리스마스 시즌, 구세군, 자선냄비, 선물박스.... 꼭 이런 것이 배경이 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승부욕이 활활 불타는 다혈질의 리처드가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서서히 변화되는 모습이 꼭 성탄선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탄 시즌에만 어울리는 영화는 당연히 아니다. 스펙트럼을 넓혀보면 누군가의 변화, 그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상처, 치유와 회복이 잘 녹아 있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힐링 영화인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리처드라는 남자에 집중해서 보게 된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그는 작은 마을의 스포츠 뉴스 생방송 진행자로 자기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진행능력도 있다. 가만 보면 이 남자, 그렇게 질이 나쁘거나 수준이 낮은 사람은 아니다. 경기장에서의 불미스러운 일도 사실, 심판의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고 심판의 오만과 심술이 그의 화를 돋운 것이며 누가 봐도 고의가 아닌 실수로 빚어진 상해였다. (영화의 후반부 데릭 이라는 미식축구 선수의 말은 경기장에서의 해프닝이 심판의 오판에서 시작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그런데도 모든 비난의 화살, 찌푸린 눈살은 리처드에게 향해 있다. 왜일까? 영화를 보면서 차차 리처드에게 동정이 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그가 착하게 굴었다거나 바람직한 성품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뭘까? 리처드의 모습이 조금씩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리처드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 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악하게 살지 않는다. 특별히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다. 도박을 하거나 고의로 남을 괴롭히거나 악행을 행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심판의 오판에 항의하다가 불미스러운 해프닝이 일어나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은 리처드처럼 우리도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리처드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아내의 부탁을 꼼짝 못하고 들어주고 딸과 아들을 사랑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일면 가정적이며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바라며 그것을 향해 나름대로 노력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가끔 생각한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렇게 착실하고 평범하게 살고자 노력하는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닥친 걸까,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찾아온 걸까, 하고 말이다.

비로소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저 평범하고 모나지 않게 사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 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간들에게 내어주었듯이 우리가 우리의 이웃들을 돌아보고 사랑하고 나누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어쩌면 이 일련의 사태 속에서 리처드가 점점 깨달아가고 느끼게 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인 것이다. 단지 욱하는 성격과 강한 승부욕 만으로는 리처드가 당한 일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 속에 숨어있는, 리처드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리처드는 또 하나의 억울한 개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컬럼

성탄절을 앞두고 곰곰 생각해본다. 나는 악하게 살지 않았으니까,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으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선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에게 다가오는 뾰족한 마음을 견디기 힘들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어한 건 아닐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리처드의 모습을 통해 조용히 말씀하신다. 악하게 살지 않는 것에서 만족하지 말고 선한 일을 하라고.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게 그치지 말고 이웃을 돌아보라고.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사랑하라고 말이다.

그것이 성탄 즈음에 우리에게 주시는 그 분의 마음, 그 분의 선물이 아닐까.



제작

글 : 신지혜 | 시네마토커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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