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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십 년 만의 귀향이었다. ‘장’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부르고뉴에 돌아왔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땅, 포도나무들이 푸른 초장처럼 펼쳐져 있고, 가족과 함께한 추억이 별처럼 반짝이는 곳, 십 년 전 떠날 때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채 부르고뉴는 가족처럼 따뜻하게 ‘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뜻밖의 마중을 나온 창백한 십대 소년 ‘장’이 있었다. 외로움에 젖어 쿡 찌르기라도 하면 눈물이 흐를 듯한 얼굴, 오랫동안 잊고 지낸 자신의 얼굴, 그 슬픈 얼굴이 마당을 들어서는 ‘장’을 바라보았다. 부르고뉴를 떠날 때 ‘장’은 아버지와 불화하였다. 변함없는 부르고뉴의 풍경도 싫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이곳을 떠나 세상을 돌아보고 싶었다. 아니다, ‘장’의 가출은 어쩌면 자기 자신의 뿌리로부터 도망치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장’은 유럽에서 남미로, 다시 호주로 대륙을 건너 낯선 세계들을 배회하였다. 그 사이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아이까지 낳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포도나무를 기르고 포도를 수확하여 와인을 만드는 일을 놓지 못했다. 호주에 아내와 아이를 두고 부르고뉴로 돌아올 때 ‘장’은 아내와의 사랑에 대해 의심했고, 가족의 존재조차 희미하였다. 빚을 졌고, 불안정했으며, 조국조차 없었다. 그리고 부르고뉴의 아버지 집을 ‘장’은 마음에 동경하였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장’이 떠난 십 년의 여행은 자신이 떠난 자리 곧 부르고뉴에 돌아오기 위한 머나 먼 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두 동생 줄리엣과 제레미는 ‘장’과 얼싸안고 기뻐한다. 세 남매는 기쁠 때나 슬플 때 셋이 한 묶음이 되어 껴안고 위로했다. ‘친구’처럼 함께 있을 때 두려울 게 없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장’이 떠나버린 뒤 두 남매는 큰 기둥 하나를 잃어버린 듯 흔들렸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제레미는 더욱 힘겨웠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와이너리를 경영해 온 줄리엣도 ‘장’의 튼튼한 어깨가 그리웠다. 무엇 하나 스스로 판단하거나 결정하지 못했다. 줄리엣은 오빠의 한 마디에 자신감을 회복했고, 제레미는 비로소 장인 앞에서 제 소신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두 동생보다 더 큰 공허감을 느낀 쪽은 ‘장’이었을지 모른다. 동생들이 있어 ‘장’은 비로소 빛났다. ‘장’은 부르고뉴에서 형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사랑

장남이 집을 떠나버린 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마음속의 고백을 편지로 썼다. 그러나 그 편지를 부치지 못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오해했다. 아들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네가 원한다면) 세상을 돌아다녀 보렴. 그러나 꼭 다시 돌아오너라. 너를 사랑한단다.”

만약 ‘장’이 아버지의 마음을 십 년 전에 알았더라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을지 모른다. 아들은 아버지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젊은 시간은 그렇게 요동치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이제 한 아이의 아빠로서, 아버지의 집을 떠나 오랫동안 타향을 떠돌아다닌 ‘장’은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몸으로 이해한다. 지난 십 년의 세월을 보내고 났을 때 ‘장’은 아버지의 사랑을 오해하지 않아도 될 만큼 고요해졌다.







#아버지의 집



아버지의 집을 떠난 아들이 방탕한 삶의 끄트머리에서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안다. 따뜻한 식탁, 포근한 품, 늘 내편이 되어주던 가족들…. 아버지의 집에서 아들은 별을 보고 꿈을 꾸었다. 제 숨으로 노래했고 나답게 살 수 있었다. 내 안의 씨앗을 싹틔워 활짝 꽃피우리라 믿었다. 그걸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떠남으로써 알게 되었다.



‘탕자’란 떠남으로써 돌아오는 우리들의 이름일지 모른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돌아가야 할 부르고뉴가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그곳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진심을 들어야 한다. 탕자로 밀어내던 그 젊은 날의 수많은 고민과 두려움과 호기심조차 나의 부르고뉴에선 와인처럼 섞지 않고 숙성되어갈 것이다. 포도나무에 새 잎이 돋고 다시 열매가 익어갈 무렵 와인을 만든 이의 성품을 닮은 와인이 탄생하듯 오해와 욕망과 분노로써 얼룩진 우리 젊은 날의 시간도 섬세하고 차분하고 강해질 것이다. 나의 부르고뉴로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웠다.

영화 컬럼

제작

글 : 박명철 작가
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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