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가옥

집 뒤로는 녹음이 푸르르다. 마치 언제 봄이 있기나 했었느냐는 듯, 언제나 그랬다는 듯, 짙푸른 여름 날씨다.
올해는 포근한 봄 햇살을 만끽할 겨를도 없이 여름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것 같은 날씨를 느끼고 가만히 있자니 ‘계절은 봄을 잃었고 사람은 청춘을 잃었다’라는 어느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기도 전에, 목련과 벚꽃이 순서를 지켜 피고 지기도 전에 훌쩍 더워진 날씨에 푸른 이파리들이 앞다투어 나오기 시작했다.
형형색색 꽃들을 보는 봄은 믿기지 않을 만큼 짧고, 어제 분명 꽃이 피었던 것 같은 창 밖의 화단은 벌써 녹음이 푸르르다.

언더우드가옥 시작

계절은 봄을 잃어가는게 분명하다

계절은 봄을 잃어가는게 분명하다

그러니 사람도 청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청춘이라고 하기엔 한참 지났지만 뭔가 싱숭생숭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발걸음은 청춘의
아지트로 향한다. 그렇다, 계절은 다소 봄을 잃었을지언정 이곳에서 청춘이 스러져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아우르는 청춘의 모습이 가득한 캠퍼스라는 이곳에서는 말이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없어져버린 봄 때문인지, 주책 맞게 일찍 온 여름 때문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젊음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찾아간 푸르고 싱그럽기 그지없는 캠퍼스의 한 켠에 자리한 낮은 서양식 주택이 있다.

들뜬 마음으로 나 역시 어디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을 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감의 미덕이 활개치며 수많은 젊음에게, 그리고 그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활기와 도전을 주는 대학이라는 캠퍼스 한복판에 누군가 ‘살던’ 집이 주는 고요함과 느긋함은 얼핏 당혹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당혹스러움도 잠시, 집 둘레로 부드럽게 난 길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찾아왔음을 느낄 수 있다.

푸른 녹음 안에 비밀스럽게 숨겨진 그 곳. 비밀스러운 고즈넉함에서 풍기는 기분 좋은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 집으로, 거침없이 한 발짝을 옮겨 놓다.

완만한 곡선의 길을 따라 들어가면 드넓은 미국의 초원 한가운데나 있을 법한 집이 나타난다.
인심 좋은 여주인이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와요’라며 초청할 것 같은 이 집은 ‘처음 선교사’로 헨리 아펜젤러와 함께 알려진 호레이스 언더우드 선교사의 가옥이였다. 현재의 연세 대학교의 기틀이 된 연희 전문학교를 세우고, 학교의 바로 옆에 자신의 집을 만든 선교사.
조선을 향한, 그리고 학교를 향한 그의 남다른 열정과 사랑이 자신의 집을 지은 위치에서부터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집은 그의 직접적인 후손이 아닌 그의 교육을 받고 자라난 조선의 후손들에 의해 잘 보존되고 있다.

우린 당신이 준 사랑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린 당신이 준 사랑을 잊지 않았습니다.

반짝반짝 빛이 나게 닦아 놓은 테이블과 창틀,
그리고 먼지 하나 앉지 않은 벽의 수많은 액자를
보는 모든 사람들은 이곳을 사랑했던 한 선교사의 헌신과 사랑이 제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남아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가 세운 학교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손길에 묻어 나옴을
본다.


잘 보존된 집기들과 더불어 그의 선교 흔적이 곳곳에 꼼꼼하게 기록된 이곳은 집 자체로 하나의 박물관이 되었다.
작은 집이지만 이곳을 한 번 둘러본 사람들은 대번에 그가 조선에 온 이후로 이곳을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또한 그가 학교를 세우기 위해, 그리고 조선에서 푸른 눈의 이방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전 생애를 걸고 치열하게 노력해 왔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좁은 방 안에 숨듯이 옹기종기 모여 예배를 드리던 교인들은 이제 누구나 한 번씩 들어와보고 싶은 건물에 당당히 모일 수 있게 되었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따뜻한 불빛

안에서도 밖에서도 따뜻한 불빛

숨가쁜 열정에 지친 젊은이들이여,
서늘한 이 곳에 잠시 쉬었다 가지
않겠나..

신기하리만큼 조선 이름 같으면서도 본래
서양 이름의 느낌을 잃지 않는 작명 솜씨에
감탄했을 법도 하다. 언더우드보다는 원두우로
살아가는 삶을 기꺼이 택한 그의 흔적.

따뜻한 불빛 아래에 원두우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남겨진 그의 사진들과 한마디가 무척 가깝게
다가온다.

아니면 그 사이에 알게 된 이 집 주인의 따뜻한 흔적을 알게 되어서일까? 집을 떠나는 발걸음이 왠지 내키지 않는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가깝고도 편한 지인의 집을 나서는 것 마냥 밖으로 나와서도 자꾸 자꾸만 따뜻한 불빛이 있는 창문을 눈으로 쫓게 된다.

따뜻한 조명과 어울리는 따스한 무언가의 흔적이
나를 따라 나온 것처럼 집을 나온 후에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우리 다시 만납시다

우리 다시 만납시다

결코 크지 않다.
그러나 저곳 안에서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서늘한 위로를 받아 나온다.
그것이 비단 나 혼자만일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저 계단 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푸른 눈의 선교사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갔을까?

언제든 기꺼이 다시 오고 싶어지는 집을 뒤로하고 다시 뒤돌아 한 번 더 바라본다.

글 : 강재은 작가 / 사진 : 유재호 작가 /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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