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명전 - 막다른 길끝에서 새것이 되다

1899년 신축되어 대한제국의 왕실도서관으로 위용을 드러냈던 중명전(重明殿)의 이전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다.
두 번의 화재로 인해 이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황실의 역사에 중심이 되어 다시 건축되고 세워지기를 반복했다.

무너진 곳은 다시 세우면 새롭게 된다.

1905년 11월 17일 이곳에서, 대한제국은 완전히 무너졌다. 일본의 억압과 강제로 체결된 한일협상조약,바로 을사보호조약의 장소가 여기였다.
처참하게 박탈당한 대한제국의 역사는 짙은 그늘 속에서 겨울을 맞이하게 됐다. 그때에도 하늘은 여전히 푸르게 태양을 품고 있었다

낯선길의 표지판 시작

낯선길의 표지판

관광객의 버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정동극장 앞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운전사 아저씨들이 옆으로 비켜서서 팔짱을 끼고 아무 곳이나 기대어 선다. 그 옆에 작은 표지판 하나가 이들에게 가려졌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누구도 가리지 말라 말하는 이가 없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사이 이 길은 뜸하게 오가는 이도 없이 조용히 표지판만 다시 앞세워 놓는다.
언뜻 보이는 것이 없어도 표지판은 이야기한다. 이 길 끝에 가면 있다.
중명전, 막다른 길 끝에서 새것이 되다.

들어선 길을 걷는 즐거움을 찾는 정동에서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다니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막다른 길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중명전을 찾는 목적이 아니라면 걸음을 내딛기에는 불필요한 길일 수도 있을 것이 양쪽에 높은 건물들이 볕을 가려서 그늘지고 또 좁다. 하지만 목적이 뚜렷하다면 막다른 길 끝에서 문을 열고 환하게 반기는 중명전의 탁 트인 하늘이 보인다. 푸른 하늘이어서 그런지 태양은 더 짙은 그늘을 드리우지만 중명전은 그래서 더 밝아 보인다.

중명전의 그림자

중명전의 그림자

상처 난 자리에는 옹이가 박혔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들이 꺾이며 줄기를 자라게 할 때, 떨어지는
낙엽들이 길게 빼어놓은 그림자를 스친다. 중명전의 그림자도 그렇게 뒤쪽 마당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새것으로 되기까지

새것으로 되기까지

수옥헌이 황실에서 사들여 사용하기 전에 이곳은
러시아 사람 사바틴이 선교사들을 위해 지은 건물이었다.


조선을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기 원했던 그들의 마음은 뜨겁게 기도의 눈물로 이곳의 대지를 적셨을 것이다. 이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밟은 사람들의 발이 닿기 전에 그곳에 먼저 그리스도의 눈물로 씨앗을 심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씨앗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메마른 땅을 갈아엎어야 했던 하나님의 손을 지금 우리는 새롭게 지어진 건물의 전시된 유리벽 너머로 목도하게 된다.
그날에 쓰였던 문서들과 고정된 사진 속에 남겨져서 다시는 바뀔 수 없는 역사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얼굴들, 이름들.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셨고 뒤엎어진 땅에서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뿌려진 씨앗을 일구게 했다.

그리고 이 나라는 지금의 중명전과 같이
새것이 되었다.

이때에 짐을 짊어졌던 이들도 변화를 가지려고 했다. 자의에 의해서든지 타의에 의해서든지, 궁이라는 가장 변할 수 없었던 모습,그 한 자리에 아치형의 창문과 통로들 그리고 베란다와 천정에 꾸며진 등불장식들로 자리를 채운 것이다. 그곳에서 의자와 탁자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얼굴을 마주 대하던 임금과 신하들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을 덧입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틀어져 있는 상투와 갓끈은 여전히 머릿속의 생각을 동여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명전을 궁에 두었던 고종의 눈은 그렇게 훗날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롭게 지어지는 서양의 건물들이 앞으로 변화될 대한제국의 모습이었고 그 중심에 중명전이 있었다.

하지만 저 현대식 건물이 지어지기까지
역사는 그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았다.

틈새로 비치는 햇빛

틈새로 비치는 햇빛
들DDD

깊이 간직하고 있는 먼지들은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는다.
가끔씩 쓸고 닦는 빗질에도 꿋꿋하게 남아서 이제는 돌처럼 같이 굳어간다. 저마다 금이 가고 틈이 생긴 이야기를 품고서. 새롭게 지어진 건물이 미처 찾지 못한 이야기들은 그렇게 묻힌다. 하지만 그 틈 속에서 들리는 살아있는 이야기는 영원히 새어나와서 찾아와 두드리는 자에게 들려줄 것이다

해가 지나가는 길에 따라 그림자도 따라가는 사이, 그 틈새로 비치는 빛은 여전히 눈부시다.

눈부신 햇빛을 따라서 또 다시 정동길로 되돌아 나가겠지만
이곳에서의 역사는 되돌아오지 않기를,
이곳의 그림자로만 머물기를 소망해본다.


글 : 김무진 작가 / 사진 : 유재호 작가 /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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