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회관 - 아주 작은사랑도 기억합니다

가도가도 새로운 곳이 있노라면 언제 가도 똑같으리만큼 한결 같은 곳이 있다.
오랜만에 덕수궁 길을 걷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한 구세군 회관이 그렇다. 오래된 거리의 오래된 건물.

이 당연한 조화가 길가던 행인을 멈추게 할 만큼 생경한 이유는 어제만해도 없었던 건물이 다음날 아침에 생기는 무시무시하고도 변화무쌍한 서울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아, 서울에서 이런 건물을 본 게 대체 얼마만이던가?

매해 겨울마다 빨간 통을 앞에 두고 맑은 종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심드렁하게 '구세군이네'라고 중얼거린다(거기에 돈을 넣은 기억은 까마득하다).

이 솥을 끓게 합시다 시작

이 솥을 끓게 합시다.

캘리포니아 주의 항구도시 오클라호마에 배 한 척이
파선되어 천 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생겨났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라 남은커녕 나 살기에도 바빴던
사람들은 난민들을 어렵게 모른척했고, 추운 겨울이
닥쳐오자 난민들은 꼼짝없이 길거리에서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때 마을의 누군가가 항구에 커다란
무쇠 냄비를 걸어놓았다. 냄비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이 솥을 끓게 합시다"
단순한 이 문구에 감명을 받은 마을 사람들은 먹을 것을
가져와 그 냄비에 넣었고, 거기에서 끓여진 수프로
난민들은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솥을 걸어놓은 조셉 맥피
라는 젊은 청년의 기지로 천 여명의 난민이 목숨을 건진
이야기는 바다를 건너 1928년, 일본의 극심한 경제 수탈로
고통 받던 조선에 조셉 바아(한국 이름은 박준섭)라는
선교사에 의해 빨간 솥과 함께 전해져
그 해 겨울, 솥에 모금된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게 된 것을 시발점으로 오늘날까지 솥 색깔 하나 변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심드렁하게 지나치는 "구세군 냄비" 이다.

따뜻했던 그 기억을 오롯이 담아 증축된
구세군회관은 오래된 시간과 상관 없이 그대로
남아 바쁘게 바뀌어대는 서울 한복판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며, 또 한 편으로는 매해
겨울마다 빨간 솥을 내보내고 있다.

간단한 한 마디로 냄비 가득히 수프를 끓게 했던
그 어느 추운 겨울날의 따뜻한 마음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월의 풍파에 굴하지 않고 오롯이 서 있는 건물로
들어서기 전에 잠깐 생각해 본다.
어떤 것들은 언제나, 항상 그대로이다.

언제나 그대로

언제나 그대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한국의 구세군의 중흥기인 근대화 과정을 이끈 건물의 위용은 생각보다 엄숙하지 않다.
오히려 놀라우리만큼 친근하다. 온갖 현대적인 건물이 앞다투어 들어서는 서울의 한복판 덕수궁에서 만나는 1928년생의 건물은 숱한 역사의 흔적들과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음에도 결코 뽐내지 않는다. 단지 낮고 차분하게 이 곳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인다.

'스쳐 지나가도 좋다, 발길을 돌려 한 번 들어와보면 더욱 좋다. 이곳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여기 있을 테니까.'


서울에서 보기 힘든 겸손한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마음 편안한 건물에 도취되어 한 발짝 발걸음을 뗀다.
문은 기다렸다는 듯 기꺼이 낯선 행인을 위해 열려 주었다.

이곳이 필요한 사람들

이곳이 필요한 사람들
1928년 증축된 이후 별다른 리모델링 없이 꾸준한 보수 공사만을
통해 유지된 건물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새롭고, 아름답다

현진건의 소설 ‘B 사감과 러브레터’에 나오는 사연 많은 여학생 기숙사를 연상시키는 좁다란 통로와 묵직한 나무 문짝들 그리고, 동그란 문 손잡이. 요새 보기 힘든 아치형 지붕과 얼핏 봐도 사람의 손때가 몇 십 년은 묻어 있을 것 같은 투박한 의자는 마침 들어온 햇살과 어울려 텅 비었음에도 밝고 마음 푸근한 예배의 장소를 물씬 만들어 낸다.

무섭다는 어떤 할머니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교회 안의 예수님은 그대로이고,
교회의 문턱이 높아진 게 아닌데도 번쩍번쩍하게 젊은 건물 앞에서 알 수 없는 주눅이 들어 숱하게 발걸음을 되돌렸다는 그네의 이야기에 마음 한구석이
시렸었다.

찬송이라고는 죄다 알 수 없는 것뿐이요,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마이크를 통해 나오는 설교는 가슴으로 오기도 전에 귀가 아파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 되었노라고 서글프게 웃었던 그 할머니를 성큼 모셔다가
이곳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마이크도 번쩍번쩍, 으리으리한 그 무엇도 없는

이 곳을 애타게 찾고 있을 어떤 사람들을 위해 그 어떤 교회보다도 오랜 시간 동안 이 자릴 지키고 있는 예배당이 있노라고.
그들이 기억하는 교회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푸근한 장소가 여기 있으니, 이제 이곳에서 그간 시린 마음을 모두 풀어 놓으시라고. 예배당 안으로 때마침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신 탓인지 눈물이 조금 고인다.

나이 많고 수다스러운 건물

나이 많고 수다스러운 건물

새삼 이 오래된 건물의 나이를 실감한다.
작지만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풍요로웠노라고.

몇 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복도를 얼마나 많이 오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나름의 이야기가 있어서 화려하지도, 밝지도, 새로운 것도 없는
이 곳은 언제나 활기차고 즐거운 곳이라고.
나이가 들면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는 법이라고. 쉼 없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어느새 건물 뒤편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길로 향하게 된다.

이 건물을 한 번 돌다 보면 좁고, 작고, 낡은 것에 어느샌가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좁은 골목길이 더 이상 스산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느끼며
새삼 발 밑의 붉은 길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진정 누군가를 걱정하고, 위로해주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오래된 이 건물은 일제 시대부터 한국 전쟁 이후까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한 번도
지나치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도움과 나눔의 풍요로움 속에서 이 곳을
지나가는 모두를 실망시키지 않은 자애로운 이 곳을, 그냥 스쳐 지나가는
나 같은 행인의 이야기를 보태도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티끌과 깨알만큼의 나눔을 대단한 것인 양 착각하며 은연중에 자랑도 하고
다녔던 알량한 내 동정심에 관한 이야기. 어디가서 꺼내기도 부끄러운
이 이야기는, 올 겨울까지 차곡차곡 모아놓았다가 빨간 냄비가
보이자마자 집어 넣어야겠다.


글 : 강재은 작가 / 사진 : 유재호 작가 /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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