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전 시작된 예수의 불길 시간은 거기서 멈췄다 정동제일교회

차가운 바람이 언뜻언뜻 지나가지만 어느덧 정동의 거리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무수하게 물러서고 들어서는 건물들로 여전히 빼곡한 거리, 그렇지만 발이 닿는 거리만큼은 언제나 한결같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듯싶은 거리.
수필가 피천득이 이야기한 ‘뺨이 붉은 아이들과 둥근 카라를 단 여학생들로 가득한’ 그 거리는 여전히 학교에 가는 학생들로, 회사로 출근하는 회사원들로, 그리고 저 나름의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가지고 거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 사연 많은 거리의 중심에 정동 교회(현 정동제일교회)가 있다.
백여 년 전 조선을 첫눈에 사랑하게 된 푸른 눈의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이 교회는 아직까지 그 자리에 굳건히 서서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예수를 찾아 오는 사람을 품는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교회라는 곳의 문을 두드린 사람들.
저 안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까, 얼마나 많은 기도가 스며있을까?

다시 봄이 온다.
차가운 정동 거리도 아름다웠지만 봄이 오면, 이 거리는 더욱 바빠지리라.

정동교회 내용 함께 갑시다 시작

함께 갑시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며 여닫았을 정동교회의 문은 여전히 희다.
천국의 색이 흰 색이라 했던가?
이 땅에 예수의 씨앗을 뿌리고 함께 천국으로 가고자 했던 낯선 선교사의 소망은 오늘날 아름다운 선교의 한 자락처럼 이어져 내려 오지만,
당시 흰 색은 그저 서민들의 옷 색깔 이라는 것 외에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 둘씩 예수를 알아가고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초가삼간 단칸방에서 조선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물이 예배처소로 들어서자 푸른 눈의 선교사는 교회의 사방에 흰 문을 달았다.

교회의 지붕에 십자가를 세울 수 없었던 나라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누가 어느 곳에서 오더라도 교회로 들어오는 문이 잘 보이도록 붉은 색과 대비되는 흰 색의 문을 건물의 앞과 뒤를 가리지 않고 달아놓는 것이었으리라.

흡사 천국의 문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문을 달아놓은 선교사의 가슴 깊은 곳의 소망 곧, 조선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예수를 믿고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고자 했던 그 소망은 오늘날에도 천국을 꿈꾸며 저 문을 여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듯 여전히 희고, 밝다.

헨리 아펜젤러

헨리 아펜젤러
헨리아펜젤러 이미지

정동교회의 한 켠에 자리한 아펜젤러 선교사의 동상이 보인다.
시인 타고르가 노래한 ‘찬란한 태양의 나라’ 조선에 반 호기심으로 온 이 젊은 선교사는 이윽고 걷잡을 수 없이 조선에 빠져들게 된다.

조선의 무엇이 그를 그토록 사랑에 빠지게 했을까?
그의 자서전에서 그는 조선의 높은 학구열과 학문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회고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 학구열이 요새는 문제가 되지만 당시에는 서양인 선교사를 매혹시킬 만큼 독특했던 한 나라의 문화였는가 보다. 아무튼 그 열성적인 학구열과, 그 학구열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는 신학문을 가진 푸른 눈의 선교사의 만남은 파급 효과가 컸다.

내로라하는 조선의 양반들도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으로 자녀들을 기꺼이 보냈고, 신학문의 보급은 곧 조선 전체로 퍼져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또한 예수를 믿는 사람들 역시 급속히 늘어 아펜젤러는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선교지에 교회를, 그것도 서양식 건물로 세우는 기금을 요청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그곳에 지펴진 예수의 불길

그곳에 지펴진 예수의 불길
그곳에 지펴진 예수의 불길 이미지

단단하지만 포근한 느낌을 주는 붉은색 벽돌의 건물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좁은 방 안에 숨듯이 옹기종기 모여 예배를 드리던 교인들은 이제 누구나 한 번씩 들어와보고 싶은 건물에 당당히 모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더 이상 붉은 벽돌 건물이 신기하지 않은 우리는 정동 거리 한복판에 있는 이곳을 심드렁하게 지나쳐간다. 그러나 정동의 거리가 따뜻해지는 것을 미처 느끼지 못할 만큼 마음이 시린 사람들이, 백 년의 시간 동안 천천히 낡아간 벽돌 건물이 오히려 더 마음 편한 외로운 사람들이 아직도 이 곳을 찾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쉼을 찾아, 다시 일어설 힘을 찾고 다시 교회의 문을 나선다. 그들에게 이곳은 자랑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낡고 해진 건물은 주변의 최신 빌딩들에 둘러싸여 백 년 전의 영광을 떠올리기 힘들게 하니까.

그러나 이 안에서 울려 퍼졌던 백 년 전의 기도와 찬양은 놀랍게도, 여전하다.
마음을 다해 부르는 찬양 소리가, 간절한 기도의 음성이 저 벽돌 담을 넘어 조선 전체로 울려 퍼지는 것을 꿈꾸었을 그 때 정동 교회 교인들의 소원은 놀랍게도 이루어져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네가 보는 저 붉은 건물은 백 년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따뜻한 예수의 불길을 멀리멀리 지펴내는 가슴 설레는 공간, ‘교회’이다.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교회의 구석구석을 익숙하게 걷는 보행자의 발걸음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회란 그런 곳이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이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오기엔 무척 많은 망설임이 필요한 곳. 그러나 그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내가 이미 이 속에 속해 있었던 사람임을 깨닫고, 알 수 없는 안도감에 눈물 흘리며 주저 앉아버리는 의미심장하게 편안한 장소.

누구나 오라고, 어서 오라고, 두 팔을 벌리고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 정작 내 자신이 섞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생각이 있었는지는 우리 자신만이 안다. 그리고 저 안에 들어갔을 때 만난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역시, 우리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는 시작하고, 또 누군가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러나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을 불러온다. 그렇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실타래가 한없이 이어지고 이어져 오늘 여기 서 있는 나에게까지 그 차례가 왔다.

백 년 동안이나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던 교회가, 그리고 그 숱한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었던 예수의 눈동자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이곳에서, 너의 이야기를 해 보라고. 어스름 해가 지는 교회를 뒤로하고 다시 정동의 거리로 나선다. 이른 저녁, 행인의 발걸음도 뜸한 정동 거리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엄청 푸졌다.

제작

글 : 강재은 작가 / 사진 : 유재호 작가 /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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