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중강당과다락방

얼굴에 차갑게 부대끼던 바람이 시절을 좇아 땅을 녹이면
봄은 여름이 오기 전에 꽃을 피우고 그 꽃잎들은 햇빛을 품고 서늘한 바람과 함께 마음껏 흩날려 간다. 이 바람이 부는 계절에 청춘을 마음에 품은 그대들에게, 김영랑의 시 <오월>의 마지막 시구처럼 묻고 싶다.
‘오늘 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너무도 빨리 내일이면 사라질 것 같은 이 청명한 날씨를 반기며 거침없이 흩날리는 배꽃무리가 거리에 쏟아져 나온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정문 앞은 이처럼 어느 때나 오월이다.

이화여대중강당 시작

이화여대중강당

정문을 지나 꽃이 피어나기까지

붙어있던 줄기를 더듬어 들어서면 고결하고 단아하게 세워져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보인다. 마치 정원에 앉아 나온 어느 왕족의 나들이같이 시중을 드는 나무들에 둘러싸여 위엄 있게 보인다. 그중에서도 조금은 뒤로 물러나 애써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서 있는 대학원 중강당 건물이 있다. 그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본다. 이화여자대학교의 공기가 서서히 주위에 가득히 둘렸다는 느낌이 들 때쯤이면 가장 오래된 고목처럼 서 있는 중강당에 이른다. 그 그늘이 햇빛을 가려주면서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지만 주변에 보이는 현대식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기품이 있고 단정했다. 흙길을 오가며 삐걱거리는 나무의 마룻바닥과 초가지붕 밑에서 글을 읽던 여아들이 새로 지은 화려한 등불장식과 벽돌건물 앞에서 얼마나 마음이 설레었을지, 문을 두드리면 건물 안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복음이 그러했다. 배움이 그러했고 진리가 그러했다. ‘여기에 내가 서 있어도 되는 것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은혜는 그녀들의 자리를 옮겨 놓았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 문들을 드나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이 감사할 뿐인 것을.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때에 이화는 대학과정의 인가를 받지 못하고 전문학교에 머물러 있어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곳에 모였던 학생들에게는 가슴 벅찬 눈물로 입학과 졸업의 순간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반쪽만 열려 있어 좁고 답답해 보이는 문이었지만 그러했어도 이들은 닫혀있는 문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열려있는 다른 반쪽 문에서 희망을 찾아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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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곳에서 찬양을 부르고 말씀을 외치며 연설을 듣고 그동안 배운 것을 발표도 하며 화려한 꽃으로 향기를 모아 줄기를 박차고 피어나갔다. 그들의 함성과 노랫소리와 발 딛는 소리는 천장에 닿아 창문을 울리었고 여전히 빈 공간에 바람이 들면
윙윙거리며 그날들을 추억한다.

수많은 꽃이 이자리에서 피어났다

몇 해 동안 평안한 의자에서 꿈을 꾸고 하였을 터인데 그리스도의 진리는 언제까지나 의자에 앉아 있게만 하지 않았다.
다시 이 자리를 채울 얼굴들이, 그 새싹들이 끊이지 않도록 꽃잎을 떨어뜨려야 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그 영광의 자리를 이 중강당은 이리도 오래도록 조용히 담아 놓고 있었던 것이다.

후문을 나가서 왼쪽으로 가면 이화 삼성교육문화관과 이화 신세계 관이 나온다. 그 커다란 건물 옆 끝에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교회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화여자대학교 다락방전도협회 건물이다.중강당 건물과 같은 화려함도 없으며 학교에서 주목할 만하거나 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위치에 자리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뜻밖에 찾아간 이곳에 이화의 정신이 이름에 새겨져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이화여자대학교라는 건물의 형체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이것이지 않을까? 그 옛날 바다를 건너온 외국인 선교사들이 어느 곳보다 척박했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학교를 세워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가르치던 그 건물의 의미는 그들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붙잡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였다. 1960년대 그 어느 곳보다 열악했던 농촌으로 봉사단을 꾸려 섬기기를 시작했던 다랑방전도협회의 중심이 선교사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창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문을 열고 드나드는 사람도 많이 줄어 있는 듯하다. 꽃이 되어도 뿌리로 떨어져 거름이 되는 꽃잎이 과연 몇인가 헤아리기에는 창문이 너무 뿌옇다. 그러나 중강당에 남아 있는 의자처럼 이름만 남아 있어 보이지만 이곳은 여전히 예수를 노래하고 아픈 사람들을 싸매며 그리스도가 없는 곳으로 나아가 빛을 비추고 있다.

그 빛이 배꽃을 비추어주고 있으니 이화의 향기는 더없이 영광스럽지 않을까!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있겠다는 약속이 있다. 자리는 언제나 비어 있는데 누구든지 와서 이곳을 채우면 될 듯하다. 흰 꽃잎들이 무성하게 떨어져 있는 자리, 그 향기에 스러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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