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선교사 묘원

강바람에 버들가지에 핀 꽃무리가 스르르, 스르르 흩어지는 버들개지를 떨어낸다.
바람이 없는 날에는 개미가 기어가다가 건드리고 나비의 날갯짓에도 하나, 둘 휘청거린다.

강 위에 내려앉은 버들잎은 물고기가 치어 가고 미끄러진 개미 한 마리가 수면 위에서 바둥거린다.
양화진(楊花津), 버들꽃나루라는 말에 나른한 한 낮의 풍경이 떠오른다.
포근한 봄날 같은 나루터를 이리도 느긋하게 가만 두었더라면, 노를 저어온 나룻배가 잠시 잠들다가 버들 바람이 일렁이는 물결에 깨어나 다시 어디론가 떠나가던 일들이 계속 이어져 갔더라면, 늘어진 버들가지 아래 이 묘비들이 세워질리 있을까?

양화진선교사 묘원 시작

양화진선교사 묘원

구한말 조선을 찾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묻혀 있는 이곳 양화진에는 이제 버드나무보다 더 많은 묘비가 세워져 강바람을 맞대고 있다. 그 일렁이는 바람에 개미가 기어가고 나비가 날아다니며 한낮이 느긋하다. 그러나 양화진을 지나간 시간의 뱃머리들은 태풍의 돛을 달고 나루터에 닿았던 것이다. 양화진은 천주교도들이 참수당하여 수많은 피가 흘려지고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의 사체가 능지처참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의 뱃머리를 돌리려고 잡았던 역사의 키가 처참하게 부러져버린 이곳을 땅 끝에서 순풍의 돛을 달고 외국인 선교사들이 다시 밟게 되었다.

‘이름이 없어 부를 수 없습니다. 부를 수 없어 누구인지 모릅니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고맙습니다.’자신도 자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꽁꽁 싸매어 놓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지극히 작은 사람들을 찾아와서 끝까지 사랑했다는 증거가 아마도 이것이지 않을까 고개 숙여 본다.이름이 단단한 돌판에 새겨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고서라도 귀한 것을 얻고 싶었던 그들은 소망을 위해 아낌없이, 이 세상에서는 이름을 지워버린 것이리라.

거대한 바람이 버들가지를 휩쓸 때에 그저 쓸려갔어도 어느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않고 역사에 한 줄 정도로 사라져버릴 꽃잎들이었는데, 바람이 이들에게 속삭였을까....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모든 값을 치르고 이곳에 소망을 심어 놓았다. 나무가 꼿꼿이 견디기 위해 땅에 묻힌 뿌리는 가지만큼 계속 자라간다. 그 깊이를 헤아리는데 높이 선 가지를 보고 알 수 있다면 이들의 주검이 거름 되어 열매가 풍성한 이 땅을, 이제는 우리가 밟게 되었다. 우리의 뿌리가 여기에 있어 그 영광과 축복이 날개를 펴고 이 땅에 충만하다. 그렇게 느긋할 수 없는 평안이다.

 빗물이 촘촘하게 묘비를 적시고 잠시 머물다 가듯이 
좁은 길을 따라 사람들이 촘촘히 걸으며 머물다 간다. 이들이 먼저 간 길은 거치는 돌부리들과 질척대는 진흙 길이었지만 이들이 닦아 놓은 길에는 맑은 햇살과 풀 향기만 가득하다. 아마도 너무 쉽게 걸어가는 길이라서 잠시 머물러 보는 것이리라. 그래야 묘비를 보고 그래야 기억하고 그래야 다시 거친 길을 찾게 되는 것이리라.

그 길에 잎이 떨어지고 눈이 덮이고 할지라도 솟아있는 묘비처럼 진리는 드러나 있다. 다만 희미해질 때마다 하나님의 입김이.......바람이, 빗물이, 개미와 나비들이 털어내며 그 소망을 빛나게 할 것이다.

그 길에 잎이 떨어지고 눈이 덮이고 할지라도 솟아있는 묘비처럼 진리는 드러나 있다. 다만 희미해질 때마다 하나님의 입김이... 바람이, 빗물이, 개미와 나비들이 털어내며 그 소망을 빛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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