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교회

늦은 밤, 가로등의 불빛보다 길거리의 백열전구가 더 환하게 불을 밝히며 누군가의 하루는 시작된다. 새벽이 한낮처럼 뜨겁게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다가 불빛들이 하나 둘 지기 시작하면 잠들기 전의 눈빛과 잠에서 깨어나온 눈빛이 마주치며 바통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소리 없이 나오는 하품이 남대문의 거리를 한시도 잠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자동차들’이라는 상투적인 표현과 같은 이 거리 어느 모퉁이에서 어느 교회 하나가 자신을 가린 주변 건물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문득 남대문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힐끗.

남대문교회 시작

남대문 교회

남대문 교회

그들은 스치는 바람같이 남대문 교회에 머물다 갈 때, 이곳에서 무엇과 마주하고 있는지, 혹 허망한 조선의 베데스다 중풍 병자에게 닿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손길이 이어진 곳은 아닌지, 알고 있을까?

1884년 12월의 추운 겨울 일어난 갑신정변은 조선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에게도 불안한 상황이었다. 미국공사관 의사였던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 ~ 1932) 선교사는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었지만 다른 동료들은 모두 철수하고 있었다. ‘환자가 누구이든지 오직 생명을 지닌 영혼이기에 남는다.’ 갈등하던 알렌 선교사는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간구하며 끝까지 남아서 치료를 계속한다. 그리고 갑신정변은 삼 일 만에 끝이 났다.

알렌 선교사가 치료한 사람 중에는 왕실의 종친이었던 민영익이 있었다. 고종은 민영익을 치료한 서양의학에 대해서 놀라워했고 이로 인해 세워진 것이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이었다. 이후 광혜원은 제중원으로 명칭이 바뀐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조선의 베데스다 연못을 동하게 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허망함 가운데에서 일어날 힘을 주시기 원하셨던 것이리라. 그렇게 보인다.
믿음으로 남은 자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길은 이 민족의 아픔을, 상처를 말씀으로 치료하는 것이었다. 남대문 교회는 바로 이 제중원에서부터 모체가 되어 이어진 예배의 열매이다. 나뭇가지의 수많은 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교회를 덮는 듯하다. 마치 나비같이. 한국의 아픈 시기에 겪어야 했던 그 수많은 고통은 나비처럼 날아가고 이제는 여기 이곳에 꽃 같이 날아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또한 나비처럼 모여든다.

저곳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습한 공기와 함께 머릿속을
잠식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향기 맡아야 할 과거가 견고하게 쌓여있기에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깊숙한 지하 끝,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무덤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남대문 교회와 같은 계단을 통해서 현재 예배하며 서 있는 우리와 연결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기쁨을 동시에 담아
울리는 찬양은 오르간의 모든 파이프를 통해서
남대문 교회를 가득 채우고 주변의 모든 시끄러운
세상 소리를 교회 안에 품어 놓는다.

그 향기가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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