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아펜젤러관

아무것도 없었던 연세대학교의 옛 땅은 한양 도성의 외곽이었고, 흔한 나무들과 이름으로 불리지 않던 풀들만 무성하여서 돌아보는 이는 밭을 일구는 농부들뿐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의 나무들은 이제 몇 그루 없을지라도 새로 심어놓은 가지들이 줄을 맞춰 자라고 있다. 잘 가꿔놓은 나무들과 꽃들, 잔디와 화단은 걷는 이에게 즐거움이다.

연세대 아펜젤러관 시작

연세대 아펜젤러관

스팀슨관에서 아펜젤러관으로 가는 짧은 즐거움에 잠시 멈칫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언더우드 선교사 동상의 뒷모습이다. 그 뒤에 서서 그가 남기고 간 뒤안길을 지금 걷고 있다.그리고 편하게 이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그가 또 먼저 걸어간 예수의 길일진대 이곳을 거쳐가는 나그네는 무엇을 찾아들고 그의 동상 앞에 서야 하는가!

1885년 젊은 나이에 언더우드와 함께 조선으로 건너온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메사추세츠주 제일감리교회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선교사를 보내기 위해 기부한 스팀슨의 마음이나, 조선의 땅을 밟았던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의 마음이나 모두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건물들은 모두 닮아있다.

반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과 어느 작은 창문 앞에 화분들이 놓여있다. 아무도 봐주지 않은 외진 곳, 잠시 햇빛이 비추다가 그늘지어져버리는 자리였지만 고귀한 생명의 진리는 여전히 자라고 있었다.

어느 예술가의 사진 속에 이렇게 담겨지지 않을지라도 그리스도를 미소 짓게 하는 복음의 화분들이 이 땅 구석구석에 널려져 있으리라. 이곳의 젊은 청춘들이 화분에 담겨져 있는 생명과 같이 비어진 채로 나가지 않기를, 기도의 씨를 심어 놓는다.

탄탄한 편모운암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외형은 창과 문으로 난 이외에 터진 곳이 없다. 금이 가는 것 하나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완강해 보인다. 그 안에 담고 있는 진리가 물러섬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육중한 벽의 견고함을 작은 열쇠 하나가 잠가 놓는다. 약해 보이는 문이지만 진리는 결코 문을 부수지 않고 답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대양을 건너온 작은 선교사의 사랑과 겸손의 열쇠로 조선의 문이 열리듯이. 작고 좁아 보이는 틈이지만 맞는 열쇠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그 진리에 순종하면 된다. 그때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에 닫혀 있는 모든 문제를 열 수 있는 열쇠임을 결코 알지 못하는 삶은 무엇으로 문에 들어갈지, 두드리기라도 하면 다행일까!
이 건물들을 둘러싼 녹음은 참으로 덮고 또 덮었을 것이다. 담쟁이 넝쿨이 부단히도 기어가다가 겨울이면 또 말라 떨어진다. 그렇게도 이 건물을 덮어보는 것이 소원이라 하는데.... 덮이지 않는 진리를 가리려고 말이다. 꾸미는 듯이 올망졸망하게 이어져 서로 끌기도 하고 밀기도 하며 틈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추운 겨울이 이다지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허락하지 마라. 아무리 덮어 놓아도 겨울은 또 얼리고 쓸어가며 반드시 올 것이니까. 마른 가지가 아직도 벽에 붙어서 놓지 않는다 해도 그저 찬바람에 웃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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