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스팀슨관

기차가 지나가는 철길 밑으로 뾰족구두, 부츠, 운동화,슬리퍼 등을 신은 맨발의 청춘들이 잠시도 끊이지 않고 북적이며 모였다가 흩어진다.
그 많던 검정고무신에 흰색 버선들이 밟던 흙먼지가, 이제는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도 풀풀거리지 못하는 신작로가 되었다. 깜박거리는 신호등의 파란불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들의 마음을 재촉해 보려하지만 느긋하니 걸음을 떼어보는 것도 청춘이 갖는 거드름이겠지 싶다.

한국명 원두우로 불린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선교사.
그가 지은 연희전문학교를 기초로 세워진 연세대학교의 정문 앞에서부터 그렇게 한껏 느릿하게 거드름을 피울 수 있는 걸음으로 이들과 같이 교정을 걸어본다.

연세대 스팀슨관 시작

연세대스팀슨관

중요한 것은 언제나 중심일 것이다. 수없이 갈려진 마음을 따라가다 길을 잃을 수도 있는 젊은 날에 거룩한 열매가
맺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줄기에 붙어 있을 수 있도록, 주변에서 맴돌지 않고 곧바로 중심을 찾아간다.

단정한 모습으로 가꿔진 정원을 세 개의 건물이 두르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언더우드 기념관이고 그 옆에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이 좌우로 서로를 바라보고 서있다.

그리고 정원 가운데 언더우드 선교사의 동상이
정문에서 줄곧 걸어온 길을 내려다본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1915년 종로에 있던 기독청년회관
내에 조선기독교대학(Chosun Christian College)을
만들면서 학교를 세워나갔다.

조선에서 길을 읽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곧게 뻗어나갈 수 있는 그리스도의 줄기를
붙잡게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 와중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찰스 스팀슨(Charles S. M. Stimson)이라는 사람이 대학 설립용 자금으로 25,000달러를 기부하게 된다.

스팀슨관은 이 사람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언더우드는 기부금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숨을 거둔다.

전에 지어놓은 목조건물이 있었지만 이들은 석조건물을 짓기 원했다.
어쩌면 투박하고 꾸밈없이 단순해 보이지만, 거센 시련의 바람과 가증스런 유혹의 불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리와
같이, 쓰러진 조선의 젊은 가슴에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자유를 주기 위해 주님 오시기까지 쓰일 수 있는 건물이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두터운 석벽의 믿음직한 품성이 또한 예수를 닮은 듯하다. 그 모습은 고스란히, 흔들리다가 지친 척박한 조선의 푸른 젊은이들에게 기대어 피어날 수 있는 샤론의 꽃이 되었다. 스팀슨관은 대학교 내에 짓는 건물의 최초 서양식 석조건물이었고 이후 다른 대학교에서 짓기 시작한 서양식 석조건물의 기본 사례가 되었다. 닮고 싶은 것이 외관 양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진리를 곡해하고 희석시키려는 사람들이 오가는 발걸음에 뿌옇게 먼지가 쌓이기도 했을 것인데. 이 먼지를 털어낼 때는 비가 오거나 눈이 와서 덮거나 하지 않으면 또 손으로 훑어냈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닦여지지 않은 먼지가 부끄러운 듯하다.

이 한 곳에 닿아서 또 오늘과 내일 더 자라간다. 그렇게 과거와 오늘이 닿아있는 이곳,
이 한 곳에서 계속 아픔의 환영도 머물러 있을 것이다.

글 : 김무진 작가 / 사진 : 유재호 작가 /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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