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화여고 생활관

밝은 햇빛에 눈이 부시거나 비가 오던 어느 한 때에는
커다란 나무 아래로 피해도 보고 원두막 짚더미 밑에서 쉬어 가기도 했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모두 쓰러져버려 피할 곳 없는 나그네에게 지붕 하나가 위로해 준다. 거지도 그 처마 밑에서 빌어먹은 밥을 먹고 뜀박질하며 놀다가 지친 아이들이 쉬었다 간다.

하루에 하루를 그늘지어주는 지붕 하나가 이리도 편하다.

배화여고 생활관 시작

배화여고 생활관

큰 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서서 올라간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배화여자고등학교에는 정문을 지나면 보이는 작은 건물이 있다.1914년에 완공되어
선교사들의 숙소로 사용되어지고 학생들의 생활관이 되기도 했던 기와지붕의 이 건물은 한옥이 아닌 서양식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붕이 없어졌다. 그리고 비를 맞고 눈을 맞고 쉴 곳이 없어진 구한말의 조선은 그렇게도 황량한 광야가 됐다. 그 광야에 어느 누군가가 다시 커다란 지붕을 짓기 시작했다.
조선사람 모두가 쉴 수 있는 그늘이 되기를 바라며 그 아래서 꽃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때에 비스듬히 내리닫는 곳을 평평하게 만들어
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위태로워 보이는 땅이다.
하지만 조세핀 필 캠벨(Josephine Eaton Peel Campbell, 1853~1920) 여사는 기어코 이곳에
집을 짓기로 한다.

조세핀 여사

조세핀 여사

밀려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생경한 붉은 벽돌이지만 기왓장으로 덮어서 머리는 조선이 되어 이곳에서 뿌리를 박으려 한다.

그러니 보아 달라!한국 최초의 여자 선교사였던 그녀는 세워진 건물의 모습이 이곳의 집들과 달랐지만, 지붕은 한국의 집이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 자태가 참 예쁘다.
서양건축물과 같이 모든 면에서 새롭게 지을 수 있었던 때에 한국과
서양의 건축기법을 접목시키고자 했던 작은 시도가 이 건물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조세핀 여사는 좀 더 세심하게 배려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벽과 건물 안의 구조는 모두 다를지라도 같은 지붕 아래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가족이라는 것 말이다. 생판 모르는 남일 뿐만 아니라 피부색까지 달랐던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오라비와 누이가 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광야에서 같은 구름기둥
아래 있었던 이스라엘처럼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지붕 하나에서만이라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 잠자고 일어나서 배움을 준비하던
여아들은 문이 닫히고 열렸던 횟수만큼 배우고
또 배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세워질 날을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반석이 되고 기둥이 되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 문창에 비치는 모습은 초라한 것들이었겠지만
벌써 그 안에 한국의 모습은 마치 작은 씨앗 안에 커다란 나무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담겨져 있었다.심은 손길에 주신 축복에 숨쉬며.

서양과 외침의 강압적이고 싸늘한 그늘 속이 아니라,악습과 옛 관습에 억눌려 있어 빛이 없던 어두운 그늘 속이 아니라
조선의 기와처럼 조선의 처마가 복음으로 새롭게 되어 주님의 날개 밑과 같이 품어 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지금 또 어느 곳에서 그때 타올랐던 벽난로의 뜨거움에 굳어진 몸을 녹이듯 마음을 녹일 수 있을지...
매일 차가워지는 교회의 아픔을 안고 다시 타오르기를,
오는 겨울 가득 기도의 연기가 맵겠다.

글 : 김무진 작가 / 사진 : 유재호 작가 / 제작 : GOD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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