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담 밖에서 가을이 넘어오면 그것은 바람 때문이다.
담을 넘어온 가을만큼 밖으로 보내지는 것은 아마도 이 바람을 맞으며 오다 가는 열일곱 소녀들의 웃음소리와 까르르 하다가도 금시 낯을 붉히며 울음을
터트리는 여린 감정들의 파고일 것이다.

담을 넘은 가을은 구름 하나 없이 파랗게 비어있어 소녀들의 마음을 살랑인다.
그 마음이, 그 가을이 시대를 통틀어 돌아봐도 다른 때가 있을까? 그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웠는지가 다를 뿐, 그것뿐이지 않을까?

이화여자고등학교 시작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심슨 기념관은 1915년 미국인 사라 J. 심슨(Sarah J. Simpson)이 위탁한 기금으로 만들어져 붙여진 이름이다. 이화의 역사를 아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안타까운 감정이 묻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완공된 후 100년이 채 안 되는 심슨 기념관 안에 1886년부터 약 130여년의 시간을 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지만 그러하여도 심슨 기념관은 그리스도의 바람으로 심겨진 복음의 여정을 가지런히도 담아놓았다.

이곳 심슨 기념관의 터는 한 때 조선의 나랏일을 맡아서 행하던 시종원이라는 관청이 있었던 자리였다.
1910년 한일합방과 함께 조정의 문이 닫히면서 시종원도 함께 사라져갔다. 가을 하늘만큼이나 공허하게 비어진 이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구름이 이 땅에서는 일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격변의 바람이 일어나기 전, 이곳에는 먼저 그리스도의 바람이 들꽃의 씨앗을 가져와 심어 놓고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서 고스란히 세월의 한숨을 담고 있다.

건물의벽과 돌계단앞

건물의 벽과 돌계단 앞 옆으로 나무들과 풀들이 다듬어지고 솎아지는 사이에 작은 들풀들이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하는 것처럼

옆으로 나무들과 풀들이 다듬어지고 솎아지는 사이에
작은 들풀들이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하는 것처럼.

스크랜튼 여사

스크랜튼 여사

꽃잎이 하나 나기까지 조선의 여성들이,
소녀들이 겪었을 두려움의 벽이 얼마나
높았을지 감히 짐작 해본다.
하지만 그녀들은 허물어져가는 담장 앞에
홀로 당당히 서 있을 수 있도록
굳은 마음으로 배움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의 가을하늘은 더욱 공허하였을 터인데
참으로 잘 견뎌내고 자라왔다.
나지막한 담장보다 높아진 서양의 건물은
이제 감출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시대의
물결을 타고 담을 뻗어 나온 것이다.

소녀들이, 여성들이 또한 그렇게.......
무너진 담 밖으로 말이다.

흐트러지며 부서지는 나뭇잎의 잔해를 옛 소녀가 뛰어가며 밟은 발자국에 소녀들이 발을 옮겨놓는다. 나도 발을 옮겨 놓지만 발자국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발자국은 이들의 것이고 이들의 자취만 남기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열려진 문 안에는 벌써 빛이 와 기다리고 있었다. 담장을 넘어 불어온 바람은 호롱불을 이내 꺼뜨려 버렸었다.
하지만 나약하던 빛은 유리관에 담아지고 비닐전선으로 이어 붙여져 드디어 바람을 이기게 됐다. 그리고는 이전에 어두워 보이지 않았던 의문의 공간을 열어주었다. 그 빛이 지금 여기에 이렇게 빛나고 있지 않은가!

글 읽는 소리와 꼬부랑글씨를 써대는 백묵의 흔적들이 곳곳에 밝혀진 구석구석의 먼지조차도 덮어나갔다.
어두워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들은 그대로 다시 또 새롭게 이들의 마음을 바꾸고 있었다. 들린다. 발자국은 남기지 못할지라도 소리는 같을 것이라 생각하며 계단의 난간을 짚어보고, 탁탁 책상을 쳐본다. 울린다.
고요한 숨소리가 벽에 부딪혀 퍼져간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이곳의 공허를 채우는 것이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신학문을 배우며 서로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또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곳에서 서로의 손을 잡아 주고 있는
이화의 학생들은 심슨 기념관에서 뿌리를 알고
참으로 깊은 그리스도의 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흐트러지지 아니하고 곳곳을 채워나가기를!

우리의 목표는 한국이 한국적인 것에 대하여 긍지를 갖기 바라며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통하여 완전한 한국인이 될 것을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구한말에 한국인다운 한국인으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이 땅을 채우려 했던 그리스도의 가지가 담을 넘어서 그 꽃이 만발하다. 이제는 피어 있는 꽃이 그 향기로 공허한 이 가을 하늘을 가득 채우게 나비도 잠자리도 불러본다. 이들의 날갯짓이 바람을 일으킬 모양인 듯싶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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