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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체에 나타나는 유사성들, 무엇을 말해주는가?(2)-상


유사성의 두 이름, 상동성과 상사성

어떤 두 생물체가 갖고 있는 기관들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기능을 하는데 구조가 다르거나, 기능은 다르지만 구조적으로 비슷한 기관들을 볼 수 있다. 곤충의 날개와 새의 날개를 생각해보자. 둘 다 몸 양쪽에 붙어서 날 수 있게 해준다는 면에서 그 기능이 서로 유사하다. 하지만 곤충의 날개와 새의 날개는 그 구조가 서로 매우 다르다. 곤충의 날개는 가는 그물맥에 얇고 가벼운 큐티클 막층이 튼튼하게 펼쳐진 마치 연과 같은 구조로서 골격이나 혈관이 전혀 없다. 그러나 새의 날개는 골격 위에 피부가 덮힌 구조로 혈관이 잘 뻗어있어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해준다. 공기의 흐름을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양력을 발생시킴으로써 비행능력을 주는 기능은 비슷하지만 그 구조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이번에는 새의 날개와 고래의 지느러미와 사람의 팔을 비교해보자. 날기 위한 날개, 헤엄치기 위한 지느러미, 무언가 집을 수 있는 팔, 이들은 쓰임새 즉 기능이 서로 너무 다르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골격을 비교하면 일부 구조적으로 유사한 뼈들을 보여준다. 이렇듯 생물계에서 나타나는 유사한 특징들은 기능적 유사성과 구조적 유사성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분류학의 창시자인 칼 폰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는 생물 분류의 기준으로 기능적 유사성이 아닌 구조적 유사성을 선택하였다. 즉, 곤충은 날개를 가지고 비행하는 기능이 있지만 새와 함께 분류하지 않고 곤충으로서의 구조적 유사성을 기준 삼아 날지 못하는 곤충들과 함께 분류하였다. 린네의 분류 체계를 보완하기 위해 1840년대 영국의 생물학자 리차드 오웬(Richard Owen)은 기능적 유사성을 “상사성(相似性, analogy)”, 구조적 유사성을 “상동성(相同性, homology)”이라고 부르며 구분지었다. 오웬은 생물체에 상동성이 나타나는 것은 어떤 “원형(原型, archetype)”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라 설명하였다. 오웬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역시 상동성이 나타나는 이유가 원형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말한 원형의 의미는 서로 다른 것이었다. 오웬은 생물체들이 어떤 공통적인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했고, 다윈은 생물체들이 어떤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발생되어 내려온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구조적 유사성, 즉 상동성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즉, 절대적 설계자의 지혜와 설계로부터 나온 것이라 볼 수도 있고,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산물이라 볼 수도 있다. 철학적인 표현을 빌자면, 영원불변의 이데아가 진정한 존재라고 보는 플라톤적 관점과, 진정한 존재는 질료와 형상의 결합만으로 이루어진다고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이 서로 다른 결론으로 이끄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진화론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상동성, 그 바탕은 무신론적 신념

개구리의 앞다리, 새의 날개, 박쥐의 날개, 고래의 지느러미, 말의 앞다리, 사람의 팔.. 진화론에서 설명하기를 그 해부학적인 구조가 유사하므로 이들이 같은 조상에서 나온 증거라고 설명하는 것들이다. 이른바 상동성을 갖는다하여 상동기관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이러한 상동성은 상동 유전자의 정보를 따라 상동 발생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부연 설명도 덧붙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유사성에 대해서는 조상과 자손의 관계를 거론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설명될 수 있다. 개구리의 도약 능력, 새와 박쥐의 비행 능력, 고래의 수영 능력, 말의 질주 능력, 사람의 움켜쥐는 능력 등 그들 각각의 기능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먼저 고려한다면, 그들의 구조적 유사성은 각 동물들의 서식 환경과 생활 방식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최적의 기관으로 설계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며 그 논리의 타당성 또한 부족하다 할 수 없다. 결국 그 기능을 먼저 고려할 것인지 그 구조를 먼저 고려할 것인지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이 내려질 수 있다.

 진화론에서는 생물체들에서 유사성이 나타나는 이유를 그들이 같은 조상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접할 때 유사성이라는 단어를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생물체의 유사성이란 여러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만큼, 특히 기능적 유사성과 구조적 유사성을 구분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진화론의 입장에서도 이 두 가지 유사성을 동시에 제시할 경우에는 조상과 자손의 관계라는 일관된 논리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둘 중에 어느 한쪽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일종의 선택이 필요하다. 진화론에서는 그중 구조적 유사성, 즉 상동성과 그 특징을 갖는 상동기관을 진화의 증거로 적극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고래의 지느러미와 사람의 팔이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골격의 구조적 유사성을 앞에 내세우고, 기능적인 면은 따지지 않거나 뒤로 미루어두는 입장이다.

이처럼 상동성은 원래 구조적인 유사성을 가리키는 개념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진화의 증거로 적극 활용되면서 진화론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역시 다윈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다윈은 진화적 계보를 보여주는 증거로 상동성을 제시하였고, 다윈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척추동물들의 골격 구조가 비슷한 것이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하였기 때문이라고 단정짓고 있다. 개의 앞다리와 사람의 팔을 비교하면서 유사한 형태를 가진 뼈들을 짝 지어 제시하고 그 뼈들에는 동일한 골격학적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러나 그 해당되는 뼈들의 구조에는 유사한 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함께 나타나며 기능적인 면에서는 거의 유사성이 없다. 개는 서있거나 걷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앞발 골격도 그에 맞는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의 팔은 물체를 잡는 등의 다양한 조작이 가능한 형태로 되어있다. 개의 앞발가락으로는 무언가를 집거나 쥘 수가 없으며 엄지발가락과 다른 발가락들을 서로 맞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이렇게 개의 앞발과 사람의 팔은 기능적으로는 전혀 유사하지 않다.

따라서 진화론적 입장에서는 ‘기능’보다 ‘구조’에 주목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공통조상의 기본적인 골격을 물려받아 그렇게 상동성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유일한 해석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해석이 여러 해석 중에 가장 타당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조상과 자손이라는 진화의 관계를 말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진화론에서 구조보다 기능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은 모든 동물이 조상과 자손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불변의 신념에서 나온 필연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구조적 유사성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찌됐든 결론은 진화발생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무신론적 믿음이 그 뿌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의 서식 환경이 유사하다면 얼마든지 구조적 유사성은 관찰되기 마련이다. 환경이 비슷하면 그 환경에 맞도록 유사한 기능의 기관들을 가져야 할 것이며 기관의 기능이 비슷하면 구조적으로도 유사한 형태를 가질 수 있다. 요컨대 기능적 유사성과 구조적 유사성을 반드시 구별해서 보아야 한다는 어떤 근거도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공통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구조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동물들의 각 환경에서의 최적 설계 개념으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각 동물의 존재를 올바르게 설명하려면 그 기관들이 보여주는 기능적 유사성과 구조적 유사성을 균형 있게 고려하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조상과 자손의 관계로 연결된 존재가 아니라, 각 동물 고유의 특징과 서식 환경에 맞게 최적으로 설계된 독립적 존재로서의 동물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끼워맞추기식 진화 논리, 수렴진화와 상사성

지구상에서의 생물의 진화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화석 기록들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200년 이상의 화석학 연구를 통해 수많은 화석들이 발견되었지만 어떤 생물종이 다른 생물종으로부터 진화되는 과정을 ‘증명’해주는 화석은 발견된 바 없다. 즉 화석 기록들이 보여주는 생물종들 간의 형태적 차이에는 여전히 메꿀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진화론 학자들은 아직 발견된 화석 기록들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200년간 나오지 않던 그 ‘간격’ 화석들이 앞으로 더 기다리면 나올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지 160년이 다 되어가지만 진화론은 여전히 진화 ‘이론’이지 진화 ‘법칙’이 아니지 않은가?

다윈의 이론이 입증되려면 공통조상의 존재를 보여주는 화석들과 생물종들이 발생되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주는 중간형태 화석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화석 기록은 그 어느 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발견되는 화석들에는 진화론 학자들의 상상과 추정으로 만들어진 가설만 붙여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진화가설들에서는 상동성이 생물들의 진화적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상동성을 진화의 강력한 증거로 사용하게 됨으로써 또 다른 문제가 따라온다. 상동성이 공통조상으로부터 나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한다면, 그와 다른 또 하나의 유사성, 즉 상사성(기능적 유사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그래서 진화론 학자들은 다른 조상에서 나온 종이라도 비슷한 환경에 살다보면 비슷한 적응과정을 통해 비슷한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이른바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 개념을 개발해내었다(그림 1). 계통적으로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그 기능이나 외관이 비슷한 기관이 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곤충과 새와 박쥐 모두 날개를 가지고 비행에 이용하지만 그들의 날개는 수렴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상사성의 예가 된다. 고래가 유선형의 몸체와 지느러미를 가지고 헤엄치는 것이 물고기와 비슷하다는 것도 수렴진화와 상사성으로 설명된다. 고래는 물고기들과 발생계통이 달라서 어류가 아니라 포유류로 분류되지만 그 유선형 몸체와 지느러미는 어류에서의 기능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진화론적 관점의 틀 내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해석일 뿐 객관적으로 입증된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결론 내려야 하는 개연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논리적 타당성도 취약하다. 진화론에서는 자연에 나타나는 엄청난 다양성은 진화 즉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곤충과 새와 박쥐는 왜 하필이면 날개라는 방식으로 비행하는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비행능력이 자연선택의 압력으로 작용하여 비행 장치가 진화하게 된 것이라면, 왜 그 비행장치는 반드시 날개라는 유사한 구조를 가져야 하는가? 환경에 적응하는 우연의 과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퍼덕이는 날개가 아니더라도 가벼운 기체의 부력을 이용하는 풍선 원리의 장치나 무언가를 분출시켜 추진하는 제트 장치 등 얼마든지 다양한 비행장치들이 가능했을 것이다. 다른 비행장치에 비해 날개가 가장 자연선택에 유리할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동물에서 나타나는 비행장치는 날개가 유일하다. 진화론에서 진화란 모든 기관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과정인데, 왜 비행장치는 하나같이 날개라야 했으며 다른 장치들은 왜 생기지 않은 것인가? 이렇게 모든 진화가설들은 이미 정해진 결론에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자기 편의적 해석들만 적용하는 편중된 경향을 보여준다.

관점을 다르게 하여 날개를 살펴보면 어떨까? 지구상에 날아다니는 모든 동물이 하나같이 날개라는 기관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의 자연은 한 설계자에 의해 설계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합리적인 결론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동물의 비행능력을 위해 날개라는 장치를 공통적인 설계요소로 포함시킨 설계자의 절대적 지혜의 결과로 보는 것이다. 현대 과학계에서 이러한 관점을 유신론적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 추론의 논리가 타당하다면 과학이론의 담론에 포함시켜 객관적으로 평가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하) 편에서 계속

제작

글 : 현창기 | 한동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 제작 : GODpia
2017.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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