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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종의 기원’ 종분화, 과연 일어날 수 있는가 (상)


생물학의 영역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의 가장 큰 쟁점이라면 ‘대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진화론에서는 진화라는 현상을 소진화(microevolution)와 대진화(macroevolution)의 두가지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소진화는 같은 생물종(species) 내에서의 작은 변화들을 의미하는 반면, 대진화란 어떤 종의 경계를 넘어서서 다른 종으로 변화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사람의 경우 흑인, 황인, 백인 등 피부색이나 인종이 다른 것은 소진화이고,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등 유인원으로부터 사람(Homo sapiens)으로 변화된다고 보는 것은 대진화라고 말할 수 있다. 소진화는 실제 자연으로부터 관찰되고 있는 사실적 현상이다. 같은 생물종이면서 서로 다른 다양한 표현형을 보여주는 개체들이 존재하고 있고 또한 새로 생겨날 수도 있다. 소진화는 실제 관찰되는 과학적 사실인만큼 진화론-창조론 간의 논쟁거리가 아니며, 창조론에서는 소진화라는 표현 대신 변이 또는 다양성이라고 다르게 부를 뿐이다. 문제는 대진화이다. 결정적으로 대진화라는 현상은 실제 관찰된 바가 없기 때문에 증명되지 않은 가설로서 본질적으로 논쟁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생물은 스스로 자연발생하여 존재한다는 무신론적인 관점으로부터 만들어진 일종의 추론적 개념인만큼 무신론과 유신론 간의 핵심적인 쟁점이 되어있는 것이다.

진화론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소진화가 축적되면 그 결과 대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창조론에서는 작은 변화의 축적에는 한계가 있으며 종이란 현저히 구별되는 시스템적 존재인만큼 다른 종으로의 총체적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이 논쟁은 언뜻 보기보다는 좀 더 복잡하다. ‘종의 경계를 넘어서는 변화가 가능한가’라는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 종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문제까지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생물체의 표현형이 얼마나 차이가 나야 다른 생물종으로 분류할 것인가라는 종 규정의 기준이 달라지면 다른 종으로의 변화가 일어나는지의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종을 비롯해 속, 과, 목, 강, 문, 계라는 체계로 생물 분류를 주도하고 있는 진화론 내에서도 이러한 종 개념의 기준에 대해서는 아직도 통일된 입장이 정리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보니 특정 생물체의 진화에 대한 개별적 사안으로 들어가면, 주장하는 학자의 주관적 견해가 마치 공인된 기준처럼 제시되는 비합리적인 일들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어떤 생물체를 진화의 관점으로 해석할 때 이미 그 추론에는 무신론적 믿음이 개입된 것인데, 그에 더하여 종 분류의 기준에서조차 학자의 주관적인 판단이 적용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비과학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혼란스러운 생물종 내지는 대진화 논쟁에 있어서, 여과되지 않은 채로 진화가설들을 접하게 되면 진실이 아닌 진화 추론의 늪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각종 매체를 통해 흘러나오는 다양한 진화 가설들에 대해 무방비로 노출된다면 종의 기원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력을 가지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신론에 기초하는 진화론의 세계관적 속성은 물론 대진화를 둘러싼 쟁점 전반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춤으로써 논쟁을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종의 개념.. 무엇이 종을 나누는 기준인가

종의 개념.무엇이 종을 나누는 기준인가

 종(種, species)은 생물 분류에 있어서 가장 기본 단위가 되는 분류 단계이다(그림 1). 종, 속, 과, 목, 강, 문, 계로 이어지는 분류체계의 가장 아래 단계로서, 진화론에서 진화의 최종 결과로 형성되는 생물체 집단의 최소 단위를 가리키는데 사용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종을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다. 모든 생물체에 적용 가능한 종의 개념을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최전선의 생물학자들조차도 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일치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갑론을박 중이다. 이렇게 종의 정의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현상을 두고 ‘종 문제(Species Problem)’이라고 부를 정도로 생물학자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제리 코인(Jerry A. Coyne)과 알렌 오어(H. Allen Orr)는 2004년에 쓴 그들의 책 ‘종분화(Speciation)’에서, 종에 대한 정의는 수십 가지는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것들 중에 어느 것이 종에 대한 옳은 정의일까? 코인과 오어는, “생물학자들은 종의 개념을 어떤 목적에 맞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서로 다르다”라고 쓰고 있다(J. Coyne and A. Orr, Speciation. Sinauer Associates, 2004. pp.25-26). 생물학자들이 자신의 목적에 따라 종의 개념을 취사 선택하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종의 개념이 이렇게 불확실한 것인가를 지켜보면서 다소 허탈한 느낌마저 든다. 어찌 되었든 그 중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두 가지의 대표적인 종의 개념을 말한다면, 생물학적 종 개념(biological species concept)과 형태학적 종 개념(morphological species concept)을 들 수 있다.

우선 생물학적 종 개념은 종을 규정함에 있어 생물집단의 생식적 특성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는다. 서로 자연적인 교배를 통해서 생식 능력을 가진 자손을 번식할 수 있다면 같은 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연 상태에서 교배가 이뤄지지 않거나 생식력을 가진 자손이 나오지 않는 생식적 격리(reproductive isolation)가 있으면 다른 종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자와 호랑이 사이에서 인공수정을 통해 만들어진 종간 잡종, 즉 라이거(Liger) 또는 타이온(Tigon)은 정상적인 생식능력이 없기 때문에 사자와 호랑이는 다른 종에 속한다. 반면, 형태학적 종 개념은 종을 규정할 때, 생물체의 유형(type), 형태(morphology), 내지는 표현형(phenotype)에 기준을 둔다. 그래서 유형학적 종(typological species)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생물학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던 개념으로, 생물분류학의 기초를 놓은 1700년대 스웨덴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e)의 종 분류개념 역시 유형적 종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생물학적 종 개념과 형태학적 종 개념이 서로 일치된 분류 결과를 내놓는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결국 심각한 논쟁들을 야기하고 있다. 두 대표적인 종 개념이 완벽하지 못하여 각각 단점을 가지고 있기에 그러한 논쟁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먼저, 생물학적 종 개념은 다음과 같은 불가피한 단점을 가진다: 세균처럼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체에 대해서는 적용하기 어렵다. 특히 식물의 경우에는 서로 다른 종 사이, 또는 다른 속 사이에서도 자연 상태에서의 교잡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현장에서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문제점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숙제다. 형태학적 종 개념은 어떨까? 이 개념은 생물체가 무성생식을 하든 유성생식을 하든 상관없이 적용할 수 있고 현장에서 적용하기 쉽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형태를 판단함에 있어 분류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분류자 개개인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초파리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눈 색깔이나 날개 숫자가 다른 자손이 태어났다면 형태적으로는 다르지만 그들이 다른 종으로 변화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자에 따라 변이로 인한 형태 변화의 폭을 다르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결론이 내려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렇듯 쓸만한 종 개념들이 각각의 본질적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생물종을 분류한 결과들에 대한 객관성은 누가 담보해줄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 확인될 뿐이다.

실제 이러한 한계는 생물분류학 연구에서 심심찮게 드러나고 있다. 어떤 두 생물체를 분석한 결과 형태학적으로는 같은 종인데 생물학적으로는 다른 종으로 판정된다면 그들은 같은 종인가 아니면 다른 종인가? 어느 한 종로부터 다른 종으로의 변화는 일어날 수 있는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인가? 즉 대진화는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적용할 경우, 학자가 정의하는 종의 개념에 따라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라는 엇갈린 답이 동시에 나올 수 있게 된다. 만일 그 학자가 대진화의 증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생물학적 종 개념을 제시하면서 대진화를 주장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학자의 주관적 믿음이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자 자신이 원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판단 기준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스토리 텔링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한다.

종분화 가설들

종분화 가설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떤 생물종이 진화되어 새로운 종이 발생되는 현상, 이른바 종분화(speciation)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종분화란 진화론적 관점에서 어떤 종으로부터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종이 발생되어 나오는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제리 코인과 알렌 오어는 “종분화라는 과정을 통해 생식 상의 장벽이 만들어지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종의 현 상태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라고 단정지었다(J. Coyne and A. Orr, Speciation. Sinauer Associates, 2004. pp.27-39). 종이란 무엇인가라는 복잡한 논쟁은 그렇다 치고, 중요한 것은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종분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진화생물학자의 입장에서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개념이 바로 종분화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종분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상당히 자세하게 논리를 만들어 설명하고 있다. 생물학적 종 개념으로 종을 정의한다면, 새로운 종이란 생식에 대한 장벽이 만들어짐으로써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은, 지리적인 장벽(예를 들면, 산맥 또는 물에 의한 격리)이 같은 생물종을 두 집단으로 격리시킴으로써 물리적으로 상호교배가 차단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그림 2). 시간이 지나면서 그 두 집단은 유전적 변화로 인해 지리적인 장벽이 제거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상호교배가 이뤄지지 않게 될 수 있다. 이를 가리켜 ‘이소적 종분화(allopatric speciation)’라 한다. 현재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설이기도 하다.

물론 다르게 설명하는 가설들도 있다. 상호교배를 막는 장벽이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의 행동이나 시간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동소적 종분화(sympatric speciation) 가설은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지리적으로 분리되지 않더라도 같은 지역 내에서 유전적 다형성(genetic polymorphism)이 일어나서 생식적 격리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그림 3). 이 외에도 주변지역 종분화(peripatric speciation)나 근지역 종분화(parapatric speciation) 등의 가설도 있다.

 그렇다면 종분화가 일어나는 과정이 왜 이렇게 여러 가지로 설명되고 있는 걸까? 언뜻 생각하기를 종분화는 그만큼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 위의 과정 중 하나가 적용되어 종분화가 일어난다면 그 외의 다른 과정으로는 종분화가 일어나지 않음을 의미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소적으로 종분화가 일어난다면 동소적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어느 한 가설을 따르려면 다른 가설의 논리는 반박 내지는 포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가설들이 달라진다면 그 가설들은 그만큼 부정확하다는 방증이 되며, 달리 말하면 그 중 어느 것도 정확한 가설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다보니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가설들 중 어느 것이 더 타당한가를 두고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종분화라는 현상은 진화론적 추론으로부터 나온 가상적 개념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설명하는 가설들도 상상 속의 논리를 펼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누구의 상상이 더 그럴싸한지 견주고 있는 양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편으로, 진화론에서는 종분화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설들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이른바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 가설을 들 수 있다. 생식적으로 격리된 두 집단은 서로 다른 유전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고 결국에 가서는 유전적으로 상호교배가 불가능한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전제한다. 이 때 큰 집단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집단은 그 유전자 빈도가 큰 집단과 달라져 새로운 종의 “창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그림 4, 좌). 격리된 집단의 크기가 작을수록 유전자 빈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를 유전적으로 “표류(drift away)”한다는 의미로 ‘유전적 부동(遺傳的 浮動, genetic drift)’이라 이름붙였다. 원래의 유전자 빈도로부터 우연하게 편차가 생겨 조상 집단의 유전자풀과 달라지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창시자 효과와 유사한 것으로서 병목 효과(bottleneck effect)를 말하는 가설도 있다(그림 4, 우). 빙하작용, 가뭄, 질병 등 격심한 환경적 사건으로 인해 집단의 크기가 크게 축소되었을 때, 살아남은 개체들은 유전적 부동 현상이 일어나 유전자 빈도가 빠르게 바뀔 수 있고, 결국에는 원래의 집단과 상호교배 불가능한 새로운 집단이 출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실 종분화를 일으키는 원인에는 유전적 부동 외에 자연선택이라는 요인도 있다. 다만, 유전적 부동은 집단 내 번식 과정에서 일어나는 유전자 빈도의 변화이므로 생물체에는 유리하거나 불리함 없이 중립적인 반면, 자연선택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물체에 유리한 유전형질만 남겨둔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자연선택과 유전적 부동 가운데 어떤 것이 종분화를 일으키는 주된 요인인지에 대해서는 진화생물학의 또다른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논쟁 또한 이소적 종분화와 동소적 종분화 가설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과 마찬가지로 둘이 함께 병립할 수 없는 가설 간의 대립이다. 대부분의 종분화에서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둘 중 하나이지, 상황에 따라 주된 요인을 바꿔가며 종분화를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진화생물학에서는 생식적 격리와 유전적 변화를 통해 일어나는 종분화를 설명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여러 메커니즘들과 다양한 추론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다양한 가설들의 뒷면에는 좀처럼 해결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진화생물학의 고민이 있다. 우선,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가설들은 학자에 따라서 각자의 목적에 맞도록 서로 다르게 선택 사용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진화에 대한 해석들이 하나로 모여지고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방향성 없이 분산되어 혼란만 가중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문제들은 앞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봐줄만 하다.

결정적으로 치명적이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생식적 격리와 유전적 변화 메커니즘의 공동 작용으로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는 것을 확증해주는 증거가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점이다. 그 다양한 가설들을 뒷받침하고자 제시된 증거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나마 제시된 것들조차(다음의 ‘하’편에서 상세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진화론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될 정도로 불완전한 것들이다. 종분화는 관찰된 바도 없고 어떤 증거로도 증명된 바가 없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서 연구결과들이 축적될수록, 이른바 소진화에 해당될 수 있는 ‘2차적 종분화’는 일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1차적 종분화, 즉 대진화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종의 형성은 관찰된 바 없는 가상의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확실해져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앞서 소개한 다양한 종분화 메커니즘 가설들은 다윈주의적인 관점으로 세워진 가정 위에서 추론을 전개하지만, 관찰되는 현상들이 그 가설들을 확증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오히려 관찰결과들을 그 가설에 끼워맞추어 해석하려는 무리한 시도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가설들이 주장하는 바가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시켜 줄만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종의 기원에 대해 남는 것은 계속되는 논쟁뿐이다. 결론적으로, 생식적 격리와 유전적 변화라는 메커니즘이 함께 작용하여 새로운 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추리에 불과한 일종의 시나리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2)편에서 계속 됩니다.

제작

글 : 현창기 | 한동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 제작 : GODpia
2017.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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