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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역사를 보여주는 동영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옛날에 어떤 생물체들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없다고 실망할 것까지는 없다. 그 대신,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지만 생명의 역사를 알려주는 또 다른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화석이다. 과거 과학이 발달하지 못 했던 때에는 화석은 그저 수수께끼 같은 것이면서 땅이 가진 신비한 힘으로 생겨난 기묘한 것이라고 믿어지기도 했다. 생명은 땅으로부터 스스로 나오는 것이라고 믿었던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화석을 그 생명의 발생 과정이 서투르게 실패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질학과 생물학이 발달하면서, 생물체가 퇴적물에 매장될 때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부패되지 않고 암석화되어 화석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러한 화석을 이용해서 지층이 생성된 시기를 가늠하고(표준화석), 지층이 생성될 당시의 환경을 추정하며(시상화석), 과거에 살았던 생물체들의 형태와 기능을 짐작하거나 그 기원과 역사를 추론하기도 한다.

그러면 화석은 과연 생명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말처럼 간단치 않다. 화석을 관찰할 때마다 누구나 수긍하는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그 관찰 결과를 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석을 관찰하는 사람이 기원에 대해 무신론과 유신론 중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이 내려지고 있는 것이다. 즉 화석은 하나인데 그것을 보는 사람의 세계관에 따라 생명의 역사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무신론적으로는 모든 생물체들은 이 세상에 서서히 순서대로 진화되어 나타났고 그 순서대로 화석이 된 것이다. 반면에 유신론적으로는 처음부터 그 종류대로 창조되어 함께 살다가 갑작스러운 격변으로 매장되어 화석이 된 것이다. 결국 그 둘 중 하나는 틀린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유신론과 무신론의 논쟁에서 하나가 옳으면 다른 하나는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화석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진화된 순서? 서식지의 높이 순서?

진화된 순서? 서식지의 높이 순서?

 화석과 관련하여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해석들은 두 가지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모든 생물은 진화의 결과물이며, 지층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다는 것이 바로 그 전제들이다. 표준화석(index fossil)이란 짧은 기간 동안 넓은 지역에 걸쳐 살았던 동·식물 화석으로서 그 발견된 지층의 형성 시기를 알려주는 화석이라고 설명된다. 예를 들어, 삼엽충 화석은 고생대 캄브리아기 지층을 확인하는 표준화석으로 제시되고 있다(그림 1). 생물의 진화 역사를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들은 이처럼 화석을 오랜 세월 동안 진화해 온 생물체들의 진화 순서와 그 연대에 대한 기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화석을 그렇게 진화의 개념과 연결하여 해석해야 한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얼마든지 오랜 시간에 걸친 진화가 아닌 다른 관점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질학에서 동일과정설과 맞서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격변설의 관점에서 화석을 설명해보자. 진화론적 가설인 동일과정설에서는 현시점에서 지층이 형성되는 것을 관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처럼 과거에도 그랬을 것으로 가정하고 모든 지층은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아래쪽 지층에서는 진화가 덜 된 생물의 화석들이 발견될 것이고, 위쪽으로 갈수록 진화의 순서를 따라 고등 생물들의 화석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게 된다. 하지만 지층의 형성은 대홍수, 화산 폭발, 지각 변동, 운석 충돌 등 격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 격변설에서는 화석을 해석하는 시각도 완전히 달라진다. 화산 폭발이나 대홍수와 같은 큰 지질학적 격변이 일어났을 때 함께 살고 있던 수많은 종류의 생물체들은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죽음을 맞고 퇴적층에 매몰되어 암석화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의 유해가 화석화되어 발견되는 순서는 그들이 살아가던 서식지의 높이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물속에 살던 어류를 비롯한 수생생물들은 서식지의 높이가 가장 낮다. 따라서 격변이 일어났을 때 퇴적물들이 아래 방향으로 밀려들 것이기 때문에 가장 아래 지층에 매몰되어 화석으로 발견되게 된다. 그 위 지층에 발견되는 것은 물과 육지의 경계에서 사는 양서류들의 화석일 것이며 그 위에는 양서류보다 건조한 곳에 서식하는 파충류가, 그다음으로 조류나 포유류의 순서로 화석이 발견될 것이다. 이런 서식지의 높이 순서를 다시 나열해보면,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의 차례로 점점 위쪽 지층에서 발견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대홍수와 같은 격변이 실제로 지구 상에 있었다면 이러한 서식지 높이 순서대로 동물들이 매몰되어 화석화되었을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순서가 바로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생물의 진화 순서와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설명이 맞는 것일까? 격변에 의한 서식지의 높이 순서? 아니면 오랜 세월 동안 하등생물에서 고등 생물로 진화된 순서? 이 중 어느 것이 맞는지를 객관적으로 판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설명들은 기원 과학의 범주에 속하는 가설들인 만큼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증거를 제시하며 주장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교과서와 대중 미디어 매체는 진화 가설 한 쪽만을 다루는 불균형과 불공정으로 일관되어 있다. 적어도 진화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금하고 그 대안 이론들을 일방적으로 배척하는 비과학적이며 비학문적인 현실은 반드시 고쳐져야 할 일 중 하나이다. 무신론적 관점을 기초로 하는 동일과정설 자체부터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증명될 수 없는 본질을 가지고 있기에, 그 외의 논리를 갖춘 대안 이론들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화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동일과정설에 근거한 이러이러한 설명도 있고, 격변설에 의해 이러이러한 설명도 가능하다..라는 공정한 접근이 필요하다. 논리적 타당성을 갖춘 이론들이라면 함께 소개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원에 관한 문제에서는 어느 이론만 옳고 어느 이론은 그르다고 그 누구도 확정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이론들을 함께 소개함은 물론 그들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열린 장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과학의 방법이자 올바른 교육의 방법인 것이다.

화석은 다윈주의의 증거가 아니다.

화석은 다윈주의의 증거가 아니다.

화석의 순서가 생물이 진화한 순서를 보여준다는 설명은 말 그대로 진화론적인 관점에서의 주장에 불과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의 순서가 생물 진화의 순서인지 서식지의 높이에 따라 매몰된 순서인지를 객관적으로 가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고생대-중생대-신생대의 순서를 그대로 보여주는 온전한 모습의 지층 기둥(geologic column, 표 1)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층 기둥은 진화론적 관점에 근거하여 생물의 진화 순서에 따라 지층의 연대를 정해놓은 이론적인 개념이지 실제 그런 순서로 온전하게 지층의 순서가 관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화론에서는 관찰되는 지층들에 대하여 동일과정설에 기반을 둔 오래된 연대를 부여하고 그 안에 있는 화석들을 그 연대에 살았던 생물이라고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온전한 지층 기둥이 전체적으로 관찰되고 그 안에 들어있는 화석들이 진화의 순서를 따라 발견되고 있다면 진화론은 객관적 사실로 인정되고 더 이상 진화‘론’이 아니라 진화‘법칙’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지구 상 어느 곳에도 그런 지층 기둥과 화석이 관찰되는 일은 없었고 진화론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진화‘이론’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렇듯 온전한 지층 기둥을 관찰할 수 없다는 한계점은 지층 속 화석의 순서에 대한 진실을 알아내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해볼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중간 화석의 존재를 관찰하는 것이다. 중간 화석이란 현재 우리가 관찰하는 생물종들 사이에는 너무나 큰 생물학적 간격이 있기 때문에 진화가 맞는다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중간 전이 형태 생물체를 보여주는 화석을 말한다. 그래서 중간 화석을 전이 화석(transition fossil) 또는 빠진 고리(missing link)라고도 한다.

진화론에서 지질학적 연대와 생물의 진화순서를 연결하여 제시하고 있는 지층 기둥.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을 통해 모든 생물종의 발생과 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관점을 다윈주의(Darwinism)라고 부른다. 따라서 다윈주의의 근간은 모든 생물종의 진화 계통을 나타낸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즉 진화계통수라 할 수 있다(그림 2). 다윈은 단일 공통 조상으로부터 종분화를 거쳐 다양한 모든 생물들이 진화되어 나왔음을 한 그루의 나무 그림을 통해 주장하였다. 이 계통수에 의하면, 한 생물체가 다른 생물체로 점진적으로 바뀔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형태 상의 급격한 변화는 없다. 다윈은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에서 “이러한 변환들은 수많은 지속적이고 작은 변화들에 의해 일어나게 된다”라고 썼다(Darwin, C., 1859. ‘On the Origin of Species’, Reprinted: Harvard University Press, 1964. p.189). 이 진화계통수는 약간의 수정이 가해지기는 했지만 현대의 진화생물학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발견되어 온 화석들의 기록은 과연 다윈주의적 진화계통수를 뒷받침해주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모든 생물은 단일 조상으로부터 진화해왔다는 다윈주의적 주장이 옳은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금으로서는 화석 기록들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방법이다. 그러나 화석 기록들은 그 다윈주의 학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왔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실망스러운 화석들이 쌓여가고 있다. 지구 상에서 발견되는 화석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표현된다: 간격(gaps), 정체(stasis), 그리고 캄브리아기 대폭발(Cambrian explosion). 이 중에 간격에 대해서만 이 글에서 언급하고 나머지 두 가지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간격이란, 화석 기록에 나타나는 생물체들의 형태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으며, 생물종 간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간 형태의 불완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화석은 확연하게 결핍되어 있는 현상을 말한다. 다윈이 아직 살아있다면 놀라고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화석들은 각각 고유의 형태와 기능을 가진 완전한 생물체들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론 학자들은 중간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 이 간격 현상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들은 간격 현상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간 화석은 당연히 존재하며 이미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또 다른 논쟁이 시작되는데, 진화론 학자들이 중간 화석이라고 제시하고 있는 개별적인 화석 하나하나가 과연 전이 형태 생물체의 화석이 맞느냐라는 새로운 문제가 쟁점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화석에 나타난 어떤 형태적인 차이가 과연 생물 종이 변해가는 중간적 형태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생물 종이 이미 가지고 있는 다양한 형태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인지를 두고 맞서게 된다. 하지만 이 문제 역시 어느 한 쪽의 주장이 맞는다고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학자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뿐이다. 그러다 보니 화석이 보여주는 형태를 전체적으로 관찰하기보다는 자신이 주장하는 논리에 부합되는 특징만 골라서 강조하는 불합리한 일들도 심심찮게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논쟁은 진화론-창조론 사이에서 당연히 일어나지만 오히려 진화론 학자들 사이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그만큼 화석의 형태에 대한 해석을 내림에 있어서 그 주장하는 학자의 세계관이나 주관적 입장이 매우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음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어쨌든 진화론 학자들은 어떤 화석의 형태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중간 화석이라고 주장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생물 진화 스토리를 설명하기 위해 채워 넣어야 할 빠진 고리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수많은 연결고리들 중에 지극히 일부분에 대해 중간 화석을 제시해보지만 진화론이 갈 길은 턱없이 멀다. 그만큼 중간 화석이라고 주장되는 것들을 다 합친다 하더라도 진화 논리의 타당성을 입증하기에는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견되어 온 화석 기록들을 모두 모아서 그것들을 진화론에서 추정하는 연대를 따라 순서대로 나열한다 하더라도, 그로부터 생물의 변화 과정을 자연스럽게 설명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더 많은 화석이 발견되면 될수록, 빠진 고리가 채워지기는커녕 그 간격들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미국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의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라웁(David Raup)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시카고 ‘필드자연사박물관 회보(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 Bulletin)’ 30권 1호(1979년)에 실린 “다윈과 고생물학 간의 갈등들(Conflicts between Darwin and Paleontology)”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혔다: “화석기록에 대한 지식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이후 대단히 확장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화론적 전이 형태에 대한 예들이 다윈의 시대에 있었던 것보다 더 적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의 나의 판단은, 화석 기록에 있어서 다윈의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고전적인 예들(예를 들어 북아메리카의 말의 진화 같은 것)은 이제는 버리거나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윈의 골치거리, 중간 전이형태 화석

다윈의 골치거리, 중간 전이형태 화석

 생명의 나무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다윈의 생각은 간단명료했다. 모든 생물체의 계보의 뿌리를 찾아 내려가면 그들의 공통 조상으로 귀결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공통 조상으로부터 각 생물체까지 뻗어 올라가는 길은 그의 나무 그림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줄기를 거쳐 나뭇가지까지 이르는 하나하나의 단계마다 엄청난 형태학적 변화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즉 다윈의 나무는 점진적인 변화를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상으로부터 자손으로 이어지는 두 생물체 사이에는 그들을 연결해주는 빠진 고리의 전이형태가 필요하다. 두 생물체의 형태적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 둘을 연결하는 전이형태의 종류와 숫자도 그만큼 많아져야 한다. 다윈도 ‘종의 기원’에서 이러한 전제 조건을 분명하게 언급하였다: “과거에 지구 상에 존재했었을 중간적 변이체들(intermediate varieties)의 수는 그야말로 엄청났을 것이다”(‘On the Origin of Species’, p.280). 하지만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후 150년이 지나는 동안 발견된 수많은 화석 기록들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어떤 화석을 중간 전이형태 화석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우선은 진화론 학자들 사이에서 맞다 틀리다 의견이 갈려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논쟁을 이겨내고 중간화석으로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그 수가 너무 부족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그동안 진화론 학자들은 ‘불충분한 조사(insufficient search)’라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답해왔다. 좀 더 많은 시간 동안 좀 더 많은 화석을 발굴하다 보면 결국은 중간화석들이 진화를 입증하게 될 테니 기다려보자는 해명이다. 그러나 150년이란 시간은 그 해명이 변명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진화론 학자들이 종종 사용하는 단어 중에 ‘사촌(cousin)’ 화석이라는 말이 있다. 시조새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진화론에서 모든 새의 조상은 공룡이다. 따라서 조류의 조상인 이른바 ‘깃털이 있는 공룡(feathered dinosaurs)’의 화석, 또는 공룡 피부가 깃털로 변해가는 것을 보여주는 화석을 기대한다. 그러나 1860년부터 시조새로 주장되는 여러 화석이 제시되었지만, 실제 발견된 것은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보아온 것처럼 깃털이 완전히 발달한 시조새 화석들이 전부였다(그림3). 진화론 전반에 대해 잘 정리된 내용과 함께 창조론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The Talk Origins Archive’라는 웹사이트가 있다(www.talkorigins.org). 거기에 나오는 시조새(Archaeopteryx) 관련 내용을 보면, “파충류-조류의 연결고리라 할 수 있는 화석들은 많이 발견됐다. 그러나 그들이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그것이 여전히 간격이 있는 전이형태이며, 매우 다양한 ‘사촌’ 화석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On the whole, though, this is still a gappy transition, consisting of a very large-scale series of ‘cousin’ fossils.)”라는 표현이 있다. 시조새는 아직 새들의 조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할 뿐만 아니라, 여러 시조새 화석들이 조상이 아닌 사촌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시조새의 깃털이 너무 완전하고, 골격 또한 일반적인 조류의 것과 같이 가늘고 속이 비어 있는 모습이 화석에 나타나기 때문에 내려진 평가일 것이다. 더욱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모습을 기대하였지만 발견된 것들은 모두 사촌들의 모습, 즉 이미 진화가 완료된 형태만을 보여주어서 사촌 화석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할아버지 화석들은 왜 150년 동안 꼭꼭 숨어서 발견되지 않고 왜 사촌 화석들만 흔하게 나오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아버지나 할아버지라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조류로 변해가는 공룡의 모습을 화석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고 그래서 시조새(Archaeopteryx)의 학명에 ‘시조(archaeo-)’라는 단어를 붙였지만, 그러한 화석은 나타난 적이 없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류의 진화 조상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화론 내에서도 정작 찾아야 할 것은 시조새가 아니라 시조새의 파충류 조상(the reptilian ancestor of Archaeopteryx)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고, 오히려 시조새가 ‘깃털이 완벽한 한 종류의 새였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학자들도 있음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시조새는 진화론적으로 ‘시조’라고 부르는 것일 뿐, 정작 새들의 ‘시조’가 아니라 그냥 한 종류의 새였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화석 기록은 다윈의 희망했던 그 ‘엄청난 수의 중간 전이형태들’을 지금까지도 보여주지 않았고 앞으로 또한 그럴 것으로 예상된다. 다윈 자신도 이러한 미래의 결과를 미리 예측이라도 한 듯 ‘종의 기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렇다면 왜 모든 지질학적 구조와 모든 지층에서 그런 중간 고리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지질학은 확실히 그런 상세하게 구분되는 유기체들의 사슬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On the Origin of Species’, p.280-282). 그리고 그 고민을 직접 이렇게 표현했다: “이는 나의 이론을 반박하는 가장 명백하고 심각한 반론(the most obvious and gravest objection, which can be urged against my theory)이다.” 다윈은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에 의한 생물의 진화라는 거대한 무신론적 그림을 제시하였고 그 원대한 상상도가 화석이라는 증거의 발견으로 구체화되기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오히려 화석은 그 그림에 먹칠을 하는 걸림돌이 되고 말았고 다윈 자신에게 최대의 골칫거리가 되고 만 셈이다.

화석이 보여주는 다양한 창조의세계

화석이 보여주는 다양한 창조의세계

다윈이 상상했던 생물체들 간의 ‘빠진 고리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이 발견되는 화석들이 생물체들 사이의 간격들을 메워주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간격들을 만들어내는 일까지 벌어져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다윈이 그렸던 진화계통의 나무 그림도 신뢰성을 잃어가고 있다. 화석 안의 생물체들은 각각의 완벽한 모습을 가지고 갑작스럽게 지층에 등장하였으며, 그들 사이의 변화되어가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들을 비슷한 형태끼리 그룹을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하나의 뿌리에서 왔다는 주장은 어디에서도 그 객관적 증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무 그림으로 친다면, 한 뿌리에서 나와서 줄기가 뻗고 많은 가지를 친 나무 그림이 아니라, 각각의 뿌리로부터 자란 많은 작은 나무들이 과수원을 이루는 그림이 현재의 생물계를 더 타당하게 표현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그림 4).



다윈은 조상과 자손으로 이어지는 생물체들의 관계, 즉 대진화(macroevolution)의 연속으로 생물계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했지만 화석 기록들은 그러한 그의 바램에 부합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진화론 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을 지지하며 진화계통 나무의 잘려나간 가지들을 연결시켜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왜 증명되지 않은 다윈의 진화론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렇듯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고 또한 많은 학자들이 그 이론에 열정적으로 헌신하게 된 것일까? 그 뿌리에는 신적 존재에 의한 창조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주인 삼고자 하는 인간의 무신론적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들은 반드시 진화에 의해 스스로 발생된 존재이어야 한다는 믿음 위에서 모든 현상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자세는 결국, 화석 하나를 해석하더라도 유물론적 관념에 기반을 둔 진화론적 해석만이 타당한 것으로 여기는 현대 과학의 왜곡된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화석 기록은 그러한 믿음과 자세가 잘못된 것임을 말없이 증거하고 있다. 화석에 대해서는 창조와 설계의 관점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논리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오히려 관찰되는 화석 기록은 창조의 개념이 아니고는 해석이 어려운 측면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완전한 형태의 특정 생물체들이 한꺼번에 그리고 동시에 화석 기록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든지, 다른 화석화된 생물체들과는 상당한 형태적 간격을 두고 서로 분리되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도 창조와 설계에 의해 설명할 때 비로소 논리적으로 더 합당한 해석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화석들이 보여주는 생물계의 모습은 두 가지 단어로 요약된다: 다양성과 완전성이다.

이 지구 상에서 살다가 없어지거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체들이, 어중간한 모양이 아닌 각각의 완전한 모습으로 그 자태를 드러낸다. 화석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창조주께서도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만족하셨을 만큼 지극히 완벽한 생물들이 다양하게 펼쳐졌던 생명의 역사 이야기인 것이다.

제작

글 : 현창기 | 한동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 제작 : GODpia
2016.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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