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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고 눈썹은 자라다 멈출까? 털의과학론


눈썹을 깎으면 다시 날까? 다시 난다. 그러면 어디까지 날까? 있던 만큼까지 난다.

그러면 머리카락은 어떤가? 머리털도 깎으면 다시 난다. 어디까지 날까?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나온다.
그럼 수염은 어떤가? 수염도 계속 자란다. 그러면 콧털, 겨드랑이 털, 팔, 다리의 털들은 어떨까? 그것들은 눈썹처럼 자라다 멈춘다.
이처럼 우리 몸에 있는 털들을 보면 재미있다. 모든 털들은 모낭에서 만들어져 자라는데 똑같은 성분, 즉 케라틴(keratin)이라는 단백질로 되어있고 구조도 같다. 그런데, 왜 어떤 털은 자라다 말고 어떤 털은 계속 자라나는 것일까?


털의 과학

털의 과학

털의 과학, 털의 단면도, 다양한 수염

인체의 모든 털은 한번 만들어진 후 일평생을 계속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빠지고 새로운 털이 나게 된다. 모든 털들에는 열심히 자라는 생장기, 자라던 것을 멈추는 퇴행기, 새로 만들어진 털에 의해 밀려 빠지는 휴지기라는 세가지 과정이 반복된다.

이 중 생장기는 털마다 다른데, 머리카락은 눈썹보다 생장기가 길기 때문에 더 길게 자라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생장기의 길이는 어떻게 결정된 것일까? 그리고 왜 눈썹은 자라다 멈추고 왜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나는 것일까?
그 모든 비밀은 DNA 속에 숨겨져 있다. DNA에 들어있는 유전정보에 의해 털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눈썹이나 겨드랑이 털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자라면 그 단백질을 그만 합성하라는 명령이 유전정보 안에 들어있는 반면, 머리털이나 수염은 그것을 그만 만들라는 명령 정보가 없기 때문에 계속 자라나오는 것이다.

털들의 운명? 털이 보여주는 과학의 정체

털들의 운명? 털이 보여주는 과학의 정체
털들의 운명? 털이 보여주는 과학의 정체

역시 과학이 해냈다. 왜 털들이 자라거나 멈추는지, 왜 어느 털이 다른 털보다 더 길게 자라는지 이유들을 밝혀내었고, 그것을 결정하는 정보들이 DNA 속에 있다는 것을 과학이 알아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질문이 생긴다.

혹시 머리카락이 자라다 멈추고 눈썹은 계속 자라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눈썹이 계속 자라나면 귀 뒤로 멋있게 넘길 수도 있고, 미용실은 머리가 아닌 눈썹을 손질하는 곳이 되었을 터인데… 겨드랑이 털이 계속 자라나오면 좀 귀찮겠지… 왜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일까? 과연 과학은 이 질문에 뭐라 답을 해줄까? 아쉽게도 그 답은 알 수가 없다. 과학은 그런 종류의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과학으로 알 수 있는 것은 HOW에 대한 영역이지 WHY에 대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은 세상 만물과 모든 현상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유지되는지를 밝히는 것이지 그것들이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대답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과학은 이 세상에 만유인력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그 만유인력이 왜 최초에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말해줄 수 없다.

‘연구하다’라는 뜻의 영어단어는 ‘research’ 이다. ‘re’ 와 ‘search’ 가 붙어서 한 단어가 되었으니 ‘다시 찾는다’라는 뜻이 되는 셈이다. 과학으로 연구하는 것이 바로 그렇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서 다시 찾아내는 것이 과학인 것이다. 과학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본다면 창조된 세계 속에 숨겨진 창조의 질서들을 찾아내는 것이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우상이 된 과학

우상이 된 과학
우상이 된 과학


하지만 현대의 과학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날로 정밀해지고 스마트해지는 전자기기들, 생명체를 복제해내는 생명공학기술… 가히 현대인들의 감탄을 자아내고도 남을만한 눈부신 성과들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다 보니 이제 과학기술은 감탄과 함께 종종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과학기술이 다름아닌 우상이 갖는 모습을 그대로 갖추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앉아서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을 말한다. 우상숭배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율을 선언하고, 피조물을 향해 경외감을 표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현대인에게 바로 그 우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 결과, 현대사회는 과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로 인식하게 되었다. 과학이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인간의 행복과 유토피아를 향해 진보한다는 미명 아래 당연히 과학기술의 가는 길을 용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왜곡된 과학관

왜곡된 과학관
왜곡된 과학관


우리는 과학의 이용자이자 관리자이지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은 우리에게 주어진 원리이고 수단이지 궁극적인 해답을 제시해주는 신이 아니다. 과학을 향해서 궁극적인 존재의 문제에 대한 대답까지 기대하고 의지하는 것을 우리는 ‘과학주의’라 부른다. 더욱이 그 과학주의의 배후에는 자연주의와 진보주의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

자연주의는 무엇인가? 물질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고 또한 존재하는 것의 전부라고 보는, 이른바 유물론의 다른 이름이다. 그 중 대표적인 사상이 ‘생물기계론’이라 하겠다. 생물체는 물질로 구성된 하나의 복잡한 기계라는 것이다. 모든 생명이 물질에 근거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물질로 해석한다. ‘쓸개가 담즙을 분비하듯 뇌는 생각을 분비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정신의 세계도 물질의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자연주의적 발상이다. 자연주의가 말하는 역사의 주인공은 물질이다. 여기에 진보주의가 가세하고 있다. 원인과 결과에 의해 역사는 계속 흐르고 그 역사는 끝없이 진보하지만 어디로 갈 것인가 라는 목적은 없다. 여기서 우리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심각한 문제 앞에 서게 된다.

현대사회가 스스로를 목적이 없는 진보의 역사 속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의 미래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과학주의, 자연주의, 그리고 진보주의.. 현대 과학의 화려한 얼굴 뒤에 숨은 이 거대한 사상적 배경들이 현대인들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자연주의와 진보주의의 결정체는 무엇인가? 바로 진화론이다. 현대의 사람들 모두가 예외 없이 교과서를 통해, 매스 미디어를 통해 이미 진화론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 진화론은 과학주의와 어우러져 인간이 깨달아야 할 참된 진리를 철저하게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의 회복.. 과학은 만물 청지기에게 주어진 도구

과학의 회복.. 과학은 만물 청지기에게 주어진 도구
과학의 회복.. 과학은 만물 청지기에게 주어진 도구


과학은 더 이상 자연주의의 시녀로 진화론의 도구로 유린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 만물에 깃들인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밝혀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과학이 가져야 할 본연의 모습이다. 위대한 과학자 케플러는 그의 과학 활동을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생각을 사랑하는 것’ 이라고 묘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연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찾도록 허락된 종들’ 이라고 고백하였다.

과학은 우리에게 존재의 궁극적인 이유를 줄 수가 없다. 과학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피조세계의 논리체계이자 수단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다.

과학은 우리가 그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청지기로서 세상 만물을 탐구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사용하는 수단이요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이다. 과학은 결코 진화를 설명하는 도구로 오용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창조세계를 다스리고 지키는데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작

글 : 현창기 | 한동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 제작 : GODpia
2015.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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