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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체에 나타나는 유사성들, 무엇을 말해주는가?(2)-하


상동성과 상사성의 불편한 공존

상동성과 상사성의 불편한 공존

진화론에서는 어떤 경우에는 상동성을, 다른 경우에는 상사성을 제시하며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생물체에서는 상동성과 상사성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즉 구조적인 형태가 매우 비슷하면서도 기능까지 유사한 기관들이 서로 진화적 유연관계가 먼 생물체 사이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인간과 오징어의 눈이 그러하다. 인간의 눈과 오징어(또는 낙지)의 눈을 위아래로 잘라 단면을 비교해보면 그 구조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진화적 계통이 서로 전혀 다른데도 눈의 구조와 기능은 신기할 정도로 흡사하기 때문에 진화론에서는 수렴진화의 예라고 말한다. 인간의 눈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것이 하필이면 진화계통적으로 저멀리 떨어져있는 무척추 연체동물의 눈으로 판명 났지만 이 둘은 단순히 수렴진화, 즉 상사성으로만 설명되고 있다. 아니 그렇게 설명될 수밖에 없다.

사실 포유동물인 사람의 눈과 무척추 연체동물인 오징어의 눈이 서로 놀라우리만치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은 생물학자들에게는 큰 관심거리가 되어왔다. 오징어, 낙지, 문어 등 두족류 연체동물은 진화론에서 말하기를 약 6억 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발생되었다고 하는 무척추동물이다. 그들의 눈이 거의 6억 년 후 진화 역사의 끝자락에 진화되었다는 사람의 눈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지구상 동물들의 진화과정에서 처음과 끝에 위치하는 두 동물의 눈의 구조가 비슷한 것에 대해 진화론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눈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다양한 동물이 한꺼번에 진화되도록 촉발시킨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약 6억 년 전 갑작스럽고도 폭발적으로 수많은 무척추동물들이 진화한 시기가 있었다고 본다. 이른바 고생대의 첫 시대인 캄브리아기다. 이 시기의 불과 500만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5천 종류가 넘는 무척추동물들이 갑자기 발생되었다고 주장되고 있다. 이 때 만들어진 동물의 형태가 전체 38개 동물문(門, phylum) 중 35개 이상이다. 문은 종-속-과-목-강-문-계의 분류체계에서 위의 두번째 큰 분류단계로서 동물체의 몸체 형태(body plan)를 기준으로 나눈다. 즉 지구 상의 동물들의 형태 대부분이 이 단 한 번의 시기에 나왔다고 보는 만큼, 가히 폭발적인 진화라는 의미에서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진화론적 지구의 역사에서 500만 년이란 하루 24시간으로 치면 고작 1~2분 정도에 불과한 시간이다. 이 지극히 짧은 시간 사이에 지구상 모든 동물의 몸체 구조 대부분이 갑자기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고생대 이전, 즉 선캄브리아기의 지층에서는 캄브리아기 동물체들에 대한 조상의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증거 부재의 문제점, 그리고 캄브리아기 이후 6억 년 동안에는 새로운 동물문이 거의 진화되지 않았다는 논리적 문제점 등이 지적된다. ‘캄브리아기 대폭발’에 대해서는 앞선 글 ‘화석이 들려주는 생명 역사 이야기[2]-캄브리아기에 무슨 일이?’를 참조하기 바란다.)

쉽게 믿기 어려운 이 캄브리아기 진화 이야기의 배경에 눈의 진화가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제시되고 있다. 캄브리아기 초기의 절지동물로 알려져 있는 삼엽충이 잘 발달된 눈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때, 눈의 발생이 다양한 동물들의 출현을 촉발시켰음을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먹잇감을 공격하거나 포식자로부터 도망하려면 눈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을 것이며, 포식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몸의 색깔이나 형태를 바꾸는 등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눈으로 인한 온갖 진화가 일어났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렇다면 그 눈은 최초에 어디서 온 것일까? 일반적인 진화의 논리라면 처음에 눈을 가진 조상이 진화되었고 그로부터 나온 후손들이 계속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통상적인 진화론으로는 동물들의 눈을 설명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캄브리아기의 무척추동물들과 그 이후 진화되었다는 동물들의 눈의 형태를 볼 때 진화의 순서와 전혀 맞지 않는 다양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동물의 눈은 진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기관이라고 볼 수 없으니 진화론의 입장에서는 기괴하고 당황스러운 현상이다.

예를 들어, 일명 꼼장어라고도 불리는 먹장어를 살펴보자. 먹장어에서는 눈을 찾기 어려운데, 눈이 없는 것이 아니라 피부 밑에 묻혀있으면서 약한 빛만을 감지한다(이를 눈이 퇴화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눈이 먼 장어'라는 의미로 먹장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그림 2). 이 먹장어는 척삭동물의 일종, 즉 진화론적으로는 척추동물의 원시적인 형태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미 삼엽충과 같은 절지동물과 오징어, 낙지, 문어 등의 연체동물이 완전한 눈을 가지고 있는데, 그보다 더 진화된 척삭동물문에 속하는 먹장어가 오히려 퇴화된 눈을 갖는다는 것은 진화 논리상 모순이 된다. 그래서 진화론에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동물의 눈은 최초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상동적 기관이 아니라, 무척추 동물에서, 그리고 척삭동물에서 각각 별도로 진화된 상사적 기관이라는 설명이다. 눈을 필요로 하는 적자생존의 환경에 살다 보니 각 진화계통과는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발생된 것이라는 또 하나의 수렴진화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 순서 상의 불일치 모순을 피해 눈의 기원을 수렴진화와 상사성으로 설명하다 보니 또 다른 논리적 장벽이 진화론 앞에 놓이게 되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오징어와 사람처럼 진화계통이 전혀 다른데도 눈의 구조는 매우 유사한 경우들에 대해 설명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구조가 유사하다는 것은 상동성을 가진다는 의미인데, 그 관계를 상사성으로 해석해고 있다는 말이다. 구조가 비슷하다면 공통조상으로부터 온 상동기관이라고 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발생계통과는 무관하게 별도로 진화된 상사기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오징어의 눈과 사람의 눈은 서로 상동성 관계로 볼 수도 있고, 상사성 관계로 볼 수도 있는데, 문제는 상동성과 상사성은 한 기관에 대해 함께 적용될 수 없는 병립 불가의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상동성과 상사성이 동시에 나타나 구분하기 어려운 기관들이 생물의 세계에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물고기와 고래의 지느러미와 유선형 몸체가 그러하고, 새의 날개와 박쥐의 날개가 그러하다. 분류학의 기초를 놓은 린네도 처음에는 고래를 어류로 분류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물고기와 고래가 보여주는 지느러미와 유선형 몸체이라는 유사성은 판단하기 까다롭다. 관점에 따라 구조적 유사성으로 볼 수도 있고 기능적 유사성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론적 논리로는 상동성과 상사성을 함께 적용하면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만큼 상동성과 상사성이 모두 나타나는 구조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결국 진화론은 한 쪽 유사성을 버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물고기와 고래가 유선형의 몸체라는 구조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래는 어류가 아니라 육상 포유동물로부터 진화한 동물이라 해석된다. 오징어의 눈과 사람의 눈은 그 단면 구조가 너무나 흡사하지만 서로 독립적으로 진화되어 만들어진 것이라 주장된다. 즉 구조적인 유사성이 분명히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상동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아무리 진화론이라지만 물고기와 고래의 공통조상이나 오징어와 사람의 공통조상을 제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진화론은 상동성과 상사성이 모두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 가지를 함께 말할 수 없는 딜레마에 갇혀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상동성과 상사성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왜 불편해야 하는가? 둘 다 분명하게 관찰되는 유사성인데 어느 것은 선택하고 어느 것은 버려야 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생물체 사이의 유사성은 어떤 형태이든 반드시 진화라는 개념의 틀 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무신론적 전제 때문이다. 이 상동성-상사성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유사성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해석하는 것밖에는 없다. 설령 그것이 유신론적 입장이라 할지라도 논리적 모순의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타당성이 있다면 당연히 고려되고 채택되어야 한다.

유사성은 차별성과 함께 볼 때 타당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유사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두 기관 사이에서 유사성을 분석함과 동시에 각각의 고유성 내지는 차별성을 함께 분석함으로써 보다 종합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접근방법이다. 동물의 눈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동물에게 있어서 눈은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기관이다. 일부 무척추동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동물이 눈을 가지고 있고 동물의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눈도 그 구조와 기능 면에서 다양한 것들이 존재한다. 곤충 등 무척추 절지동물들은 홑눈(單眼, ocellus) 또는 겹눈(複眼, compound eye)을 가지는데 겹눈은 수백~수만 개의 낱눈(個眼, ommatidium)이 벌집모양으로 모여서 이루어진다. 수많은 렌즈 즉 낱눈들은 각각 독립적인 빛 신호를 감지하고 그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물체를 모자이크처럼 조각을 맞추어 인식하게 된다. 게다가 곤충들은 겹눈 뿐만 아니라 2~3개의 홑눈까지 함께 가지고 있다. 이 홑눈들은 빛의 명암을 구별하여 곤충의 활동성을 추가적으로 결정해준다.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이러한 곤충의 눈과는 전혀 다른 구조의 눈을 가진다. 눈의 앞면에 렌즈처럼 초점을 맞추는 수정체와 빛의 양을 조절하는 홍채가 있고, 내부에는 유리체라는 투명한 젤 성분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망막에서 빛 신호가 전기 신호로 바뀌어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구조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흥미롭게도 사람의 눈과 비슷한 구조의 눈을 가진 무척추동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징어, 문어, 낙지 등의 두족류 연체동물이다(그림 3). 다만, 사람의 눈은 수정체의 두께(곡률)를 조절하여 초점을 맞추는 반면, 두족류 동물은 수정체의 두께는 고정되어 있고 카메라의 렌즈처럼 수정체를 앞뒤로 이동시켜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렇듯 어떤 두 기관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면 차별성도 함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차별성이라는 것은 어느 쪽이 더 우수하고 다른 쪽은 덜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덜 진화된 어느 한쪽으로부터 더 진화하여 다른 쪽이 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것은 각각 차별적으로 자기만의 특징을 가짐을 의미한다. 각 동물의 환경과 생활방식에 맞도록 최적화된 고유의 특징을 가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징어의 눈은 수정체를 앞뒤로 움직여 초점을 맞추지만 사람의 눈은 고정된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여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각각 고유의 작동원리가 다를 뿐이다.



이렇게 시력이라는 눈의 기능면에서도 다양한 차별성들이 나타나지만 시각의 방법이라는 측면에서도 다양한 특징들을 볼 수 있다. 사람은 양쪽 눈으로 하나의 초점을 맞추어 원근감을 느끼는 양안시(兩眼視, binocular vision)의 눈을 갖고 있다. 그런데 소나 말 등 주로 초식동물들은 두 눈이 머리 양쪽 측면에 위치하기 때문에 각각의 눈으로 다른 상을 보는 단안시(單眼視, mononocular vision)의 눈을 갖는다. 양안시는 원근감과 입체감으로 시력을 높여주는 장점이 있지만 좌우 측에 있는 물체를 보려면 머리를 돌려야 한다. 반면 단안시는 입체적인 상은 볼 수 없겠지만 머리를 돌리지 않고도 시야가 넓다는 장점이 있다. 새들 중에서도 올빼미는 양안시를, 닭은 단안시를 가진다. 양안시와 단안시는 양쪽 눈의 광축(optical axis)이 벌어져있는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인간, 사자, 호랑이 등은 10° 이내, 개는 30~50°, 노루는 100°, 악어는 144°, 도마뱀은 145~170°, 토끼는 170° 정도다. 이렇게 동물에 따라 두 눈 간의 거리가 다양하여 볼 수 있는 시야가 다르고 상의 입체감도 다르게 되어있다. 이러한 차별성은 시력이 높고 낮은 순서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각 동물의 진화 순서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 각 동물 고유의 생활방식과 환경에 최적화된 설계의 결과라는 것이 가장 타당한 설명이 되는 것이다(그림 4).



이처럼 동물들의 눈의 구조와 기능을 살펴보면 진화의 논리에 맞추어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공통조상으로부터의 진화 계통에 따르는 상동성을 말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별도의 계통에서 독립적으로 수렴진화하였다는 상사성 특징으로 연결짓는 것도 잘 맞지 않는다. 진화론의 이러한 문제점은 몇가지 대표적인 동물의 눈들을 단순하게 비교해보더라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6억 년 전 캄브리아기에 갑자기 출현한 무척추 절지동물 중 하나인 삼엽충은 매우 복잡하고 진보된 형태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척추동물들의 눈은, 수정체가 유기물 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죽은 후 즉시 분해되어버리지만 삼엽충의 수정체들은 무기물 결정으로 되어 있어서 발굴된 화석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척추동물들의 눈은 하나의 렌즈만을 가지지만 삼엽충의 눈은 이중 렌즈를 가지고 있어서 물속에서 뒤틀림 없는 상을 볼 수 있었다. 앞서 설명한 곤충의 눈은 어떤가? 겹눈과 홑눈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매우 효율적인 시각을 가질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척추동물들의 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자외선까지 볼 수 있다. 특별나기로는 오징어의 눈도 뒤처지지 않는다. 오징어의 눈은 사람의 눈과 비교할 때, 구조적으로 매우 흡사하면서도 오히려 더 합리적인 형태로 되어있다. 사람의 눈은 망막 한 부분이 뚫려있어서 그곳으로 시신경과 혈관을 동공에 연결하는 구조로 되어있지만, 오징어의 눈에는 시신경과 혈관이 망막 뒷면에 붙어있어 망막의 한 부분이 뚫려있을 필요가 없다(그림 5).



요컨대 눈을 놓고 비교한다면 삼엽충이나 곤충이나 오징어 중 그 어느 것도 인간에 비해 덜 진화되었다거나 원시적인 형태의 동물이라 말할 수 없다. 삼엽충, 곤충, 오징어, 인간.. 이들 모두가 눈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은 서로 구조가 확연히 다르므로 상동기관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유사한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유사한 형태로 진화하게 된 상사기관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맞지 않다. 삼엽충이나 물고기들이나 모두 바닷속 유사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그들의 눈은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서로 확연히 다르므로 수렴진화에 의한 상사기관에 해당되지 않는다. 결국, 눈은 상동성으로도 상사성으로도 해석하기 어려운 기관인 셈이다. 정리하자면, 진화론의 핵심 논리는 유사성인데, 동물의 눈들은 상동성과 상사성이라는 두 가지 유사성 중 어느 것으로도 진화론적인 해석이 어렵다. 이렇게 동물의 눈은 진화론적 관점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유사성과 함께 차별성에까지 초점을 맞추어 관찰한다면 동물의 눈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음을 알게된다. 오징어와 인간의 눈은 (삼엽충 또는 곤충의 눈과는 달리) 서로 유사한 시스템으로 되어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차별성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흥미롭게도 오징이의 눈이 인간의 눈에 비해 보다 합리적인 구조로 되어있다.

사실 이러한 차별성 때문에 진화론적 해석을 내리는 일에는 어려움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진화적으로 매우 하등한 그 연체동물들이 오히려 인간보다 합리적인 구조의 눈을 가지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진화의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징어와 인간의 눈이 보여주는 특징들을 타당하게 설명해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모든 동물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발생된 존재라는 그 무신론적 신념을 걷어내야 한다. 아울러서, 유사성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내리기 위해 차별성을 함께 보아야 한다. 유사성과 차별성이 공존하는 두 기관에 대해 유사성만을 골라내어 그것만으로 상호 연관성을 추론하는 것은 전체에 대한 객관적 비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결론은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진화론에서 무시되고 있는 각 동물 고유의 차별성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곤충들만이 가진 겹눈과 홑눈의 협력 시스템, 오징어 눈의 합리적인 구조와 효율적인 초점 조절방식, 갯가재 눈의 복합 색상 감지능력, 새들의 뛰어난 시력, 박쥐가 가진 낮은 시력과 초음파 능력의 공조.. 한마디로 각 동물은 고유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구조와 기능에 있어서 각각 고유의 특징으로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유사성은 차별성과 함께 볼 때 타당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한 여러 예들을 비롯하여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의 눈이 보여주는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것은 ‘각 동물들의 복잡성 순서와 관계없이 나타나는 유사성’과 동시에 ‘각 동물들의 종류대로 나타나는 고유의 차별성’이다. 단순한 동물(오징어)과 복잡한 동물(인간) 사이에서 유사성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각 동물에 따라 뚜렷한 차별성이 나타나는 것은 절대적 설계자에 의한 설계 특성이라는 타당한 논리로 해석될 수 있다. 한 설계자로부터 나온 설계이기 때문에 복잡성이 크게 다른 동물들 사이에서도 유사성이 나타나는 것이며, 동시에 각 동물에게 맞도록 고유의 설계 특성이 주어졌기 때문에 차별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곤충은 곤충에게, 오징어는 오징어에게 필요한 효율적인 구조의 눈이 설계되어 주어졌고, 인간에게는 인간에게 필요한 시각능력에 맞는 눈이 설계되어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 과학자들은 이러한 유신론적 관점의 설계론적 해석은 철저히 배제하고 진화론적 해석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것은 무신론만을 허용하도록 왜곡되어버린 현대 과학계의 편협한 차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차별의 결과는 진화론 특유의 순환논리 틀 속에 갇혀 상동성과 상사성의 딜레마와 같은 모순의 늪을 헤메게 될 뿐이다. 무신론적이든 유신론적이든 모든 관점의 이론들에 대해 그 논리적 타당성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하여 토론될 때 비로소 합리적인 결론이 얻어질 수 있다. 그러지 않는다면 동물들에 대한 진정한 탐구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제작

글 : 현창기 | 한동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 제작 : GODpia
201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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