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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체에 나타나는 유사성들, 무엇을 말해주는가?(1)


이 세상 모든 생물들은 기본적으로 비슷하게 생겼다.

모든 생물체가 세포라는 단위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비슷하고, 그 세포들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도 거의 똑같다. 과연 생물체들은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길래 이렇게 서로 비슷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과학자들의 생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한 가지는,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해 나왔기 때문에 유사성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즉 공통조상의 구조와 기능이 그 자손에 남겨지는 것이라는 주장이다(그림 1).



다른 한 가지는, 각 생물체는 생물로서의 기본적인 기능을 위한 설계도 위에 각각의 특성에 맞는 요소들이 가미된 설계의 결과들이라는 관점이다. 즉 환경에 맞도록 설계되었으니 환경이 유사하다면 기능적, 구조적 유사성은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그림 2).



그런데 이 두 가지 주장은 서로 타협할 수 없는 평행선 위에 놓여있다. 모든 생물체들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서로 상반되는 답을 제시하며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자연발생적 진화를, 후자는 절대적 지혜의 설계를 제시하는, 무신론과 유신론의 화합 불가한 대립인 것이다. 그런데, 무신론과 유신론이라는 세계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판단한다면, 객관적으로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내놓은 해석들은 과연 어느 쪽이 더 타당한 것일까? 주장되는 해석과 그 해석을 도출한 추론과정 자체만을 비교한다면 어느 쪽이 더 논리적일까? 이 글에서는 두 가지 해석의 상세한 내용과 그 해석에 도달하게 된 각 추론의 논리적 측면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존재의 동기를 탐구하는 기원과학 분야에서의 이론들은 증명은 불가능하지만 그 대신 증거를 제시하며 추론하는 것인 만큼 당연히 논리적으로 더 타당한 쪽이 더 과학적인 이론이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생물들을 분리한다는것

현대의 생물분류학에서는 생물체들을 종, 속, 과, 목, 강, 문, 계라는 단계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생물체들을 형태적, 유전적, 생화학적으로 유사한 특징들을 기준으로 특정 그룹별, 그리고 그 그룹 아래의 소그룹별로 나누는 계층적 분류체계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물체들이 특징을 따라 분류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서로가 비슷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생물체들이 유사성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서로가 명백하게 다른 특징으로 구별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차별성 또는 독특성은 멀리 떨어진 다른 그룹으로 분류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사성에 근거하여 가까운 그룹으로 분류하는 분류작업이 항상 순조롭지는 않다. 어떤 경우는 유사성이라는 특징이 오히려 일관된 분류체계를 지키고 싶어하는 생물분류학자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유사성이라는 일관된 분류기준을 지키고 싶어하는 생물분류학자에게 유사성이라는 특징이 곤혹스러운 숙제를 안겨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박쥐는 날개를 가지고 새처럼 날 수 있으니 그 유사성을 기준 삼아 조류로 분류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조류는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시킨다는 큰 특징을 뒤로 미루고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일수도 있다고 규정해야 한다. 고래가 유선형의 몸매로 바다를 헤엄치며 살지만 바닷속 어류들과 함께 분류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어찌됐든 분류학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유사성 특징을 선두에 내세우고 흔들림 없이 붙들고 나아가야 한다. 그 특징을 따라 비슷한 것들을 한 그룹으로 묶어나가다가 어떤 이질적인 특징이 그 유사성과 부딪치게 되면 그 특징을 대표로 하는 특별 그룹을 만들어내서라도 처음의 유사성은 지켜나간다. 박쥐의 분류를 위한 상위 분류단계를 보면 동물계(界)-척삭동물문(門)-포유강(綱)으로 되어있다(그림 3).



동물로서 척추를 가진 동물이며 젖먹이 동물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다른 젖먹이 동물들과는 너무나 다르게 날개를 가지고 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포유강 아래의 분류단계 중 박쥐목(目)이라는 특별한 목이 만들어졌다. 포유류 중 유일하게 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날 수 있다는 특징은 조류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라는 점에서 혼란을 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오리너구리(platypus)는 분류학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대표 주자라 할 만하다. 오리너구리는 동물계-척삭동물문-포유강-단공목-오리너구리과(科)로 분류되고 있다(그림 4). 이 중 단공목(單孔目)은 몸에 털이 있고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만 알을 낳는 동물들을 분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젖먹이 동물(포유강)에 속하면서 알을 낳는 희한한 경우인 것이다. 난생(卵生)의 번식 방법 때문에 조류와 혼동되지만, 실제 유전적으로는 조류보다 파충류에 더 가까운 것으로 분석되는 특이한 동물이기도 하다. 오리너구리는 털이 있고 젖을 먹인다는 점 때문에 포유류로 분류되고 있지만, 관점을 바꾼다면 조류나 파충류로 분류될만한 특징도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분류학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현대 분류학은 특정한 유사성들을 제시하며 그것을 기준으로 생물들을 분류하고 있지만 그 분류기준에 따르지 않는 많은 경우들이 있는 만큼 여전히 불완전하며, 어쩌면 완전한 분류란 영원히 불가능한 작업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완전함과 한계는 왜 생기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생물분류학을 장악하고 있는 진화론적 세계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조류와 포유류는 파충류로부터 진화되어 나왔다는 진화론의 중심 논리를 따른다면 오리너구리는 지극히 반진화론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오리너구리의 독특성은 파충류에서 조류로의 진화로도, 파충류에서 포유류로의 진화로도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파충류와 조류와 포유류의 특징들을 한 몸에 모두 가지고 있는 만큼 그 어디에도 만족스럽게 분류될만한 그룹이 없는 것이다.

생물분류학이라는 학문이 일방적으로 진화론적 관점 하에 장악되어있는 현 상황에서는 진화 논리에 맞지 않는 생물체 특징은 그 중요도에 있어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다. 오리너구리가 가진 ‘알을 낳는 젖먹이 동물’이라는 특징은 동물의 세계에서 최우선으로 주목해야 할 큰 특성일 수도 있다. 오리너구리의 특징을 그가 살아가는 환경과 가장 조화를 잘 이루는 최적화된 설계 특성으로 본다면, 그것은 젖먹이 동물이라는 단편적인 특징과 맞먹는 매우 중요한 분류기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진화의 관점으로는 파충류로부터 포유류로 이어지는 진화 논리가 최상위 기준인 만큼 오리너구리는 젖먹이 동물 그룹(포유강) 아래에 있는 작고 특별한 난생 그룹(단공목)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보편적인 상위 분류 그룹’에 비해 ‘어쩌다 만들어진 특별 케이스 하위 그룹’은 여러 측면에서 덜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진화론적 분류체계의 한계와 문제점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여러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혹시 진화 논리라는 굴레를 완전히 벗겨내고 모든 동물들을 그들의 환경과 그에 맞는 최적화 설계 특성을 기준으로 처음부터 다시 분류하면 어떨까? 물에서 사는 것, 공중에서 사는 것, 육지에서 사는 것 등등.. 이들 큰 그룹들은 다시, 새끼를 낳고 기르는 방식, 먹이 습성, 운동 습성 등 생활방식, 생리적 특성 등을 기준으로 다시 분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모든 특징들을 분류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생물을 분류함에 있어 왜 무척추동물 다음으로 척추동물이 나와야 하며, 척추동물에서도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 또는 포유류라는 순서를 지켜서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신론적인 자연발생이라는 가정으로부터 나온 그 순서 때문에 합리적으로 분류되기 어려운 생물들이 나오게 된다면, 그 분류체계는 이미 객관성이 결여된 비과학적 체계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정작 중요하게 주목되어야 할 특징이 진화 논리로 인해 덜 중요하고 예외적인 특징으로 취급되는 비합리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 원인이 되는 진화 논리를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당연한 과학적 방법론이요 올바른 과학이 아닐까.

유사성은 같은 조상에서 나왔기 때문이라는 진화론적 관점

고래는 폐로 숨쉬는 포유류 동물이지만 물고기들처럼 유선형의 몸매를 가지고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치며 살아간다. 진화론에서는 고래가 엄연한 젖먹이 동물이라는 점 때문에 바다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의 조상은 육상 포유류 동물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포유류 즉 포유강(哺乳綱) 아래, 진수하강(眞獸下綱) 아래에 고래목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고래는 육상의 포유동물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폐 호흡을 하지만 입과 코를 통해 숨 쉬는 육상동물들과는 달리 머리 위 분수공을 통해 숨을 쉬며 입은 아예 폐에 연결조차 되어있지 않다. 진화론 학자들은 고래의 분수공이 육상동물의 코로부터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분수공은 후각을 담당하는 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독특한 호흡기관이다. 성대를 사용하여 소리를 내는 육상동물과는 달리 고래는 멜론이라 부르는 고래에서만 발견되는 기관을 이용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고주파음을 내어 의사소통한다. 향유고래는 몸무게 1/3에 해당하는 엄청난 크기의 경랍기관을 갖고 있어서 수심 3천미터까지 잠수하여 먹이를 잡을 수 있다. 경랍기관 안에는 왁스 성분이 채워져있어 수심이 깊어질수록 고체화되고 밀도가 높아지면서 추와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 또한 세상 그 어느 생물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래만의 장치인 것이다. 고래가 가진 혈액순환계, 신경계, 근육계의 특수한 상호작용, 바다생활에 최적화된 감각계와 의사소통 및 반향정위 시스템 등도 육상 동물과는 전혀 관련성을 찾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다. 고래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인다는 특징 외에 도대체 무엇이 육상 포유동물과 비슷하다는 말인가? 육상동물과는 도무지 연결지을 수 없는 고래만의 독특한 특징들이 수없이 나타나지만 진화론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육상 포유류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다(앞선 글 누가 고래를 위해 바다로 떠났을까?참고 ). 무엇이 이러한 무리스러운 주장이 나오도록 만든 걸까? ‘어류-양서류-파충류-포유류’라는 순서의 진화 프레임 속에서 젖먹이 동물이라는 특징이 있으면 우선 포유강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진화론적 고집이 결국 그러한 무리수를 초래한 것이다.


사실 젖샘이 있어서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고 포유류라 부르지만, 포유강 안에는 너무나 다른 다양한 형태들이 같은 조상의 뿌리로부터 나온 것으로 분류되어 있다. 일반적인 포유동물들은 새끼를 낳되 암컷이 태반을 가지고 있어서 태반류라고 부르고(태반하강[胎盤下綱] 또는 진수하강[眞獸下綱]), 캥거루나 코알라처럼 태반이 없이 미성숙한 새끼가 암컷의 배 부분에 있는 주머니에서 자라는 것들은 유대류라고 부른다(유대하강[有袋下綱] 또는 후수하강[後獸下綱]). 앞서 예로 든 오리너구리는 희한하게도 포유류임에도 알을 낳아 번식한다는 특징 때문에 태반류도 유대류도 아닌 단공류(單孔類)라는 생뚱맞은 분류 그룹(단공목[單孔目])으로 나누어져 있다. 태반류 안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하나의 그룹으로 묶이기에는 너무나 다른 특징들이 또다시 같은 조상의 자손들로 한데 묶여 있다. 예를 들어 박쥐는 다른 일반적인 포유류들과는 달리 비행능력이라는 특징이 있으므로 박쥐목이 별도로 만들어졌다. 그 외에도 코끼리땃쥐목, 바다소목, 바위너구리목, 아프리카땃쥐목, 고래목.. 등등 서로가 너무나 이질적인 특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젖먹이 동물이라는 하나의 특징으로 인해 같은 조상 아래에 함께 속해있는 것이다. 각각의 이질적인 특징들은 일반 포유동물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각 특징마다 별도의 목(目)들이 만들어졌고, 그 수십 개의 목들 사이에서는 포유류라는 특징 외에는 공통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참으로 어색한 분류체계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현재의 생물분류체계는 동일한 진화 조상으로부터 여러 형태의 자손들이 발생되어 나오는 형식을 기본틀로 하고 있다. 단일 조상이라는 뿌리로부터 줄기와 가지가 뻗어나오는 한 그루의 나무 모양으로 그려지는 진화계통수가 바로 그 결론인 셈이다. 하지만 자연에 나타나는 생물체들의 다양성은 그러한 조상과 자손의 관계로 쉽게 설명되지 않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특징들을 동일 계열로 분류해야만 하는 많은 경우들이 자연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조상에서 자손으로 진화하였다는 논리는 생물들을 올바르게 분류하기에 적합치 않거나 또는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진화의 논리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생물들을 분류함에 있어 걸림돌이 되고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생물체에 나타나는 유사성들은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라고 보는 진화 논리의 대전제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호주 대륙에는 다양한 유대류 포유동물들이 산다. 그중에 호주 동남부의 태즈메이니아(Tasmania) 섬에 서식하다가 1930년대에 멸종되어버린 태즈메이니아 늑대를 살펴보자. 주머니늑대 또는 틸라신(Thylacine)이라고도 불리는 태즈메이니아 늑대(학명: Thylacinus cynocephalus)는 태반류 동물인 늑대(학명: Canis lupus) 또는 개(학명:Canis lupus familiaris) 등과 해부학적으로 상당히 유사하다(그림 5와 6). 하지만 흥미롭게도 계통분류학적으로는 이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래서 학명도 상당히 다르다. 늑대와 개는 공통 조상에서 유래된 가까운 관계로 분류되는데 그 근거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들의 매우 닮은 두개골 골격구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늑대와 태즈메이니어 늑대는 턱과 치아 구조 등 어떤 특징들에 있어서는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조상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태즈메이니아 늑대의 행동과 생활방식이 일반 늑대들과 매우 닮아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전혀 다른 계통으로 분류되는 것은 이상함을 지나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음을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진화 조상을 찾아나가는 분류 작업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분류의 기준 중 진화론적 가정에 가장 잘 맞는 특징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태즈메이니어 늑대와 일반 늑대는 태아가 발달하고 성장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늑대는 어미의 뱃 속 자궁에서 배아 발달을 완성하는 태반류 포유동물인 반면, 태즈메이니아 늑대는 어미의 배 바깥에 붙어있는 주머니에서 배아 발달을 완성하는 유대류 포유동물이다.

 이 차이점을 분류의 가장 큰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일반 늑대는 개와 같은 부류(식육목, 개과)로, 태즈메이니어 늑대는 주머니고양이와 같은 부류(주머니고양이목, 주머니늑대과)로 분류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성체(adult)가 되었을 때의 골격적 구조가 놀랍도록 유사함에 불구하고, 그 유사성 기준은 뒤로 밀려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분류기준들의 우선순위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모든 동물은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전제가 바로 그것이다. 진화 논리에 얼마나 적합한가에 따라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분류의 기준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조상과 자손으로 연결되는 진화적 관계의 관점에서는 이 두 종류의 늑대는(태즈메이니아 늑대도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것처럼 한 종류의 늑대이다!) 초기 발달단계를 비교할 때 도저히 같은 조상에서 나온 가까운 자손들로 분류될 수가 없다. 즉 이들은 진화계통 상 멀리 떨어진 관계이며, 각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호주 대륙이 분리된 때로부터) 서로 다른 진화적 역사를 갖는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분류기준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전제 또는 논리가 과연 객관적인가 라는 것이다. 왜 초기 발달단계 상의 차이점이 성체에서 나타나는 유사성보다 앞선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그 둘 중 어느 기준이 합리적인 분류에 더 타당한 것인지는 결코 쉽게 결정될 수 없는 것이며, 다양한 측면의 특징들을 다각적이고 종합적으로 적용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어찌 보면 분류 기준의 우선순위를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생물분류학의 지상 과제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최우선의 분류기준을 진화론적 전제와 논리만을 쫓아서 정해놓고 있는 현대 분류학의 접근 방식은 편파와 독단의 모습은 보일지언정 객관적인 과학적 방법론으로는 평가받을 수 없는 것이다.

궁색한 변명, 수렴진화

생물분류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진화론적인 분류에 가장 우선되는 기준은 유사성이다. 비슷할수록 동일 조상과의 유연관계가 가깝다는 말이다. 하지만 태즈메이니아 늑대와 일반 늑대의 예에서 보았듯이 이들 두 종류의 늑대는 너무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진화적으로 먼 유연관계로 해석되고 있다. 언뜻 보면 모순으로 보일만큼 이중적으로 분류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진화론 학자들은 어떻게 풀고 있을까? 기존의 진화론적 개념들만으로는 이 충돌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학자들은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었다. 요컨대, 계통적으로 관련이 없는 두 생물이 서로 독립적인 적응의 결과 유사한 형태를 보일 수 있다는 별도의 진화 개념이다. 이 수렴진화의 개념을 위해 덧붙여지는 가정은 이렇다: 일반 늑대를 만들어낸 자연선택적 상황과 환경적 필요들이 호주 대륙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였을 것이며, 그 결과 계통적으로 상당히 먼 이 두 종류의 늑대는 유사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점점 서로 닮게되었고 결국에 가서는 표면적으로 거의 동일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론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점들이 내포되어있다. 우선, 태즈메이니아 늑대와 일반 늑대가 나오게 된 각각의 조상 동물들이 처했던 환경이 어떤 면에서 얼마나 유사했으며 어떻게 그들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과학적 증거는 커녕 구체적인 설명 조차 제시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증거나 설명 없이 상상 속에서 하는 이야기라면 수렴진화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개념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인 추론이라 말할 수 있으려면 그를 뒷받침할만한 타당한 논리와 증거가 있어야 하겠지만, 태즈메이니아 늑대의 수렴진화에는 그러한 뒷받침이 없다. 그저 태즈메이니아 늑대에게 나타나는 유사성들을 해명하기에 급급한 하나의 스토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이유다. 또 한가지는, 두 종류 늑대의 각 조상들이 처했던 환경이 아무리 유사했다고 하더라도 독립적으로 진화하는 두 생물이 동일한 특징을 갖도록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할만한 하등의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 특징들 하나 하나가 서로 부합되어 전체적인 유사성을 갖도록 진화하는 것은 더더욱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한 진화를 믿는다는 것은 연속되는 우연의 일치를 기대하는 막연한 맹신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수렴진화가 성립되기 위해 필요한 우연의 일치는 그것이 끝이 아니다. 호주 대륙에 사는 유대류 포유동물들을 살펴보면 종류가 다양하다. 유대류(유대하강) 동물들 중에는, 태즈메이니아 늑대, 즉 주머니늑대 외에도 주머니고양이, 주머니개미핥기, 주머니하늘다람쥐 등등 그 이름들이 태반류(태반하강) 동물의 이름을 딴 것들이 있다. 그만큼 해당되는 태반류 동물들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떻게 그 곳에 있게 된 것인가? 이들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수렴진화를 적용하게 되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유대하강과 태반하강이라는 두 부류에 속한 동물들이 서로 다른 대륙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한 결과 유사한 특징 일체를 공유하는 각각의 유사한 동물들이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해, 유사한 특징 일체가 각각 서로 다른 대륙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하였는데, 그것이 개별적인 동물뿐만 아니라 포유동물의 두 하강(infraclass)에 속한 동물들 대다수가 그러했다는 말이 된다. 한 종류의 동물에서도 믿기 힘든 우연의 작용들이 다양한 포유동물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그야말로 우연의 연속이다. 그들의 존재를 수렴진화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끝없는 우연의 사건들이 일어났음을 주장하는 것인데, 이는 결코 과학적인 설명이라 할 수 없다.

진화론에서는 수렴진화의 개념을 “두 생물이 계통적으로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환경의 영향으로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계통적 연관성’이라는 전제는 왜 반드시 지키려하는가? 그 전제를 버린다면 유사성이라는 기준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모든 생물을 분류해나갈 수 있을텐데, 왜 수렴진화와 같은 궁색한 변명처럼 보이는 개념을 만들면서까지 지키려하는가? 계통적 연관성이라는 진화 논리의 틀 안에 모든 유사성들을 쑤셔넣듯 담다보니, 담아지지 않는 유사성들을 해명하기 위해 수렴진화와 같은 모순적인 가설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나타나는 유사한 형태’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유사성의 원인을 잘못 짚었다는 지적이다. 유사한 특징을 갖는 생물이 존재하는 원인은 유사한 환경에서 진화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그 환경에 살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유사한 환경에 사는 다른 생물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환경의 영향이 갖는 한계도 감안되어야 한다. 환경의 영향으로 표현형이 어느 정도 바뀌고 유사한 특징도 나타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 존재 자체를 결정할 정도의 변화는 될 수 없다. 북극에 사는 북극여우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털이 길어질수는 있겠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여우이며 다른 동물로부터 여우가 된 것도 아닐 뿐더러 여우가 아닌 다른 동물로 변할 수도 없다. 그는 원래 여우라는 기본적인 설계를 가지고 존재하는 동물로서, 북극의 추운 환경 속에서 적응하면서 그렇게 긴 털의 특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생물의 조상이 누구냐 라는 진화론적 생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결국 수렴진화와 같은 불완전한 개념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무신론적 발상이 만들어낸 그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생물체들을 좀 더 타당한 기준을 가지고 명확하게 분류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설계론적인 개념을 연결하면 어떨까? 어떤 설계적 의도와 목적론적인 해석들을 생물분류에 적용한다면 더욱 논리적인 분류체계가 완성될 수도 있다. 생물 간의 유사성은 관찰 가능한 하나의 과학적 사실이다. 그리고 그 유사성을 생물분류의 기준으로 삼는 것 또한 합리적이다. 문제는 그 기준에 어떤 논리를 적용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하지만 현재의 생물분류는 무신론적인 진화 논리만이 일방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것이 무신론이라는 세계관에 뿌리는 두고 있는 이상 객관성은 담보되지 않는다.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생물분류를 위해서는 우선 진화론적 세계관을 걷어내고, 관찰되는 특징들을 순수하게 유사성만을 기준 삼아 분류해나가야 한다. 굳이 진화의 논리를 적용해보아야 하겠다면 설계의 논리도 동등하게 적용하면서 두 모델을 비교 분석해나가야 한다. 무신론적 진화 논리와 유신론적 설계 논리 중 어느 것이 접목되었을 때 더 타당한 분류체계가 될 것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제작

글 : 현창기 | 한동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 제작 : GODpia
2017.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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