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사역자 유은성의 서재는 ‘놀이터’다

찬양사역자 유은성 님의 서재는 ‘놀이터’다

저에게 서재는 놀이터예요. 책만 있는 게 아니라 건반도 있고 기타도 있고 컴퓨터도 있죠. 서재에서 놀이를 하듯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얻고 창작할 수 있는 영감을 얻습니다. 특히 성경과 책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말씀을 읽거나 책을 읽다가 음감이 떠오르기도 하죠. 그러면 휴대폰에 녹음해서 저장해 둡니다.
3집 앨범에 ‘예수님처럼’ 이란 곡이 있는데 맥스 루케이도의 [예수님처럼]이란 책을 읽고 만든 곡이에요. 이 책을 읽고 예수님처럼 사는 삶에 대한 노래를 만들었어요. 앨범에도 맥스 루케이도의 [예수님처럼] 책을 읽고 곡을 만들었다고 써두었죠. 그런데 앨범이 나오고 <예수님처럼>이란 책이 갑자기 많이 팔리기 시작한 거예요. 출판사에서 수소문해서 저에게 연락을 주셨어요.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한국에 방문하셔서 북 콘서트를 하시는데 와서 콘서트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요. 저에게는 꿈만 같았죠.

무명 생활 끝에 받은 선물 같은 곡

무명 생활을 7년 정도 했어요. 제가 노래 한 곡을 아는 사람도 없었고 저를 찾는 교회도 없었죠. 그런 시간이 지나고 하나님이 저에게 선물로 주신 곡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에요. 2006년에 발매한 2집 음반에 있는 곡이죠. 이 앨범에 있던 ‘온 맘 다해’, ‘주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죠’도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어요.
‘주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죠’ 곡은 제가 무명 시절에 쓴 찬양이에요. 제 이야기가 담겼죠. “내 모든 소망이 끊어졌다 해도. 내 모든 기회가 없어졌다 해도. 좌절과 절망이 나의 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해도… 주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죠. 내가 모든 걸 포기할 때 나를 일으키죠.” 이런 가사의 곡이에요.
이 찬양을 부를 때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자살하려던 분이 이 찬양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이메일이나 편지를 통해서 듣기도 했고요. 유명한 분들이 이 노래 덕분에 어려웠던 시간을 견뎠다며 제게 사인을 요청하시기도 하고요.
3집 앨범 ‘회복시키소서’를 내고 한 달 후에 일산의 모교회에서 ‘회복시키소서’ 찬양을 부르는데 기적이 일어난 적도 있었어요. 수술이 잘못되어서 다리가 펴지지 않던 79세의 성도 분이 찬양을 부르던 중에 일어나시기도 했었죠.

선교사님의 시로 만들어진 찬양

4집 앨범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한 선교사님께서 선교지로 떠날 때 쓰신 시를 가사로 만든 곡이에요. 그 선교사님께서 이슬람권 국가에서 6년 동안 선교하시다가 지쳐서 한국에 들어오셨다고 해요. 운전을 하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회복시키소서’란 찬양을 들으셨다고 해요. “잃어버린 나의 눈물 찾게 하소서. 꺼져만 가는 열정을 다시 태우소서.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시키소서” 가사를 들으시고는 펑펑 우셨다는 거예요. 나중에 제가 이 찬양을 부른 걸 아시고 저를 찾아오셨어요.
그 선교사님께서 선교지에서 적었던 시 16편을 주시면서 음반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셨죠. 제일 먼저 제 눈에 들어온 시가 ‘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였어요. 마치 제 이야기 같았거든요. 미국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 찬양이 만들어졌죠.

최근에 ‘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곡이 일반 방송 다큐멘터리 타이틀곡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빈민국의 심장병 어린이들을 도와주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였거든요. “난 주러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받고 갑니다. 눈물 닦아주러 왔을 뿐인데 내 눈물만 흘리고 갑니다… 고쳐주러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치료되어 갑니다.” 이런 가사의 내용이 영상에 잘 맞았다고 해요.

가요가 아닌 찬양사역자의 길을 선택

아버지가 개척 교회 목사님이셨어요. 개척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해야 하니 피아노를 배우게 됐죠. 그런데 1년 반 만에 체르니 40번을 마스터하게 된 거예요. 부모님께서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권유하셔서 중학교에서 드럼, 베이스를 배우고 고등학교에서 어쿠스틱 기타와 화성악 배웠어요. 그런데 음대는 못 가게 됐죠. 고등학교 3학년 때 레슨을 받아야 하는데 레슨비가 너무 비싼 거예요. 그 당시 아버님이 받으셨던 교회 사례비의 절반 이상이 되는 비용이었어요.
그렇게 지내다 대학교 4학년 때 연습실에서 찬양을 만드는데 우연히 조하문 목사님과 하덕규 목사님이 제 노래를 들으시게 된 거예요. 당시 조하문 목사님은 ‘이 밤을 다시 한번’이란 곡을 엄청나게 히트시킨 유명한 가수셨죠. 오디션을 보고나서 저에게 가요 음반을 내자고 하셨어요. 고민하다 정중히 찬양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가요는 저에게 안 어울리는 옷 같더군요. 슬픈 사랑, 이별 노래를 만들어서 불러야 하는데 이게 저에게 맞는 옷일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찬양을 해야지.’ 하면서 찬양사역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첫 찬양 음반을 만든 회사가 부도나고

2000년에 유은성의 이니셜인 ‘YES(예스)’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어요. 그런데 그 음반이 유통이 안 됐어요. IMF 역풍이 기독교 음반 시장으로 불면서 음반 회사가 부도가 나고 음반 4천장을 고스란히 제 방에 쌓아둬야 했어요.
가요계의 좋은 조건을 포기하고 찬양 음반을 냈는데 음반이 망한 상황이 된 거예요. 한 번은 제일 친한 친구가 “영화 보여줄게 나와.”했는데 친구가 있는 신촌까지 갈 왕복 차비가 없는 거예요. 결국 그 친구에게 말도 못 하고 못 갔죠. 밑바닥부터 하나님이 저를 굴리신 시간이 있었기에 우울증이 뭔지도 알고, 아픈 사람의 마음도 알 것 같아요. 어려운 사람들의 상황도 알게 된 거죠.
당시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유통도 안 된 음반과 박카스를 사들고 방송국을 돌아다녔어요. 방송국 피디님들이 저를 보고 바카스 맨이라고 불렀죠. 그렇게 2~3개월 하고 나니 한 피디님이 저를 부르시더군요. “사람들이 너 오면 바카스 맨이라고 비아냥거린다. 내가 그 별명을 지어줬는데 듣기 싫더라. 내가 방송 잡아줄 테니 이제 바카스 가지고 오지 말아라.” 그분 덕분에 유통도 안 된 음반의 찬양을 가지고 방송에 나갈 수 있게 되었죠.

아내를 만나게 해 준 책

4집 앨범 ‘나는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를 내고 ‘하나님 저는 참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고백을 드렸어요. 그런데 진짜 많은 걸 받게 하시는 아내(배우 김정화)를 만나게 된 거죠. 아내도 저처럼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있었거든요. 에이즈 센터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안녕, 아그네스!]란 책을 쓰고 있었어요. 아내가 우간다의 아이를 입양했는데 그 친구가 에이즈에 걸린 아이였거든요. 아그네스를 처음 만났을 때는 6살이었는데 지금은 15살이 됐네요. 에이즈 걸린 아이들은 약만 잘 먹으면 보통 사람처럼 살 수 있거든요.
책에 QR 코드를 넣고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어요. 혹시 작곡을 재능기부해 줄 수 있냐고 해서 흔쾌히 허락했죠. 그렇게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 장모님이 암 투병 중이셨고 아내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내에게 정식으로 교제하자며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내가 엄마가 되어줄 수는 없어도 엄마처럼 힘이 되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힘들 때마다 기대라.”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었죠.

결혼 후 4대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상견례 자리에서 저희 아버지께서 3시간 동안 설교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그런데 장인어른이 사돈어른이 목사님이시고 사위가 전도사이면 내가 예수 믿어야지 하면서 그때부터 저희와 함께 교회를 가시게 되셨죠. 지금은 성경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저희를 위해서 기도도 해주세요. 제사를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시던 증조할머님도 권사님이 되셨죠. 저희가 결혼하면서 이렇게 4대가 예수님을 믿는 가정이 된 거예요. 이것이 아내와 저의 최고의 간증입니다.
지금 5살, 3살 아들 둘을 키우고 있어요. 아이들이 진짜 밝아요. 집에서 뛰어다니고 날아 다니죠. 나가려고 하면 “아빠 가지 마!”하며 등에 매달리고요. 얼마 전 아내와 SBS ‘싱글 라이프2’라는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박명수 씨가 집에서 지내는 저의 모습을 보고 “종처럼 사네.” 하며 농담을 하더군요. 아이들을 섬기고, 아내를 섬기면 아이들과 아내가 기뻐하는 모습에 제가 행복한 거예요. 결국 희생과 순종은 내가 행복한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6년 동안 남편과 아버지로 살면서 예수님의 섬김을 배우는 것 같아요.

사실 아이들이 있으면 창작 작업을 하는 게 쉽지 않아요. 얼마 전 만난 뮤지션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한 분이 “그때는 원래 그래. 그런데 신기하게 그 시기가 지나면 하나님이 막 부어주신다.” 그러더군요. 뭐든지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숙제가 어디 있겠어요.

비전과 기도제목

얼마 전 7대 장기가 없어서 수액을 맞으며 살아가는 예지란 친구를 만났어요. 36개월 때 의료사고로 장기를 잃고 장기이식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아이죠. 감사하게도 예지가 예수님을 믿고, 예지로 인해 온 가족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어요. 예지처럼 아픈 아이들과 아프리카의 입양한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요즘은 찬양 음반을 준비하고 있어요. 일반 방송의 드라마 음악에 작곡과 노래로도 참여하게 되었고요. 이제 찬양사역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믿지 않는 분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세상의 믿지 않는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브릿지 역할을 하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일을 할 때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려요. 그리고 저희 가정이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가정의 모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인터뷰 진행&정리 : 이음 작가
- 사진 : 이요셉 작가
- 인터뷰 장소 : 사랑의교회
- 기획.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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