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 교수의 서재는 ‘방앗간’이다

조명환 교수의 서재는 방앗간이다

책을 읽으면 한 인생을 만나고,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어 좋아요. 제 서재에는 책도 많지만, 42년 전에 처음 샀던 원서 책이나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며 사용했던 노트들도 있어요. 남들은 뭐하러 가지고 있느냐 하지만 저는 간직하고 싶어요. 그렇게 서재에는 제 과거도 있는 곳이지요. 이렇게 다양한 책과 노트가 꽂혀 있는 제 서재는 마치 방앗간 같은 곳이에요. 방앗간에 재료를 가져가면, 원하는 떡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제 서재도 그렇습니다. 재료가 하나하나 다 달라요. 그런 재료가 다 섞여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미래가 그려지는 장소입니다.

어머니의 선물을 받고 열등감이 자신감으로

모태신앙으로 평생 교회에 다녔는데 제 얘기를 누구한테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할 얘기가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공부를 못했고, 전쟁 끝나고 3년 뒤에 태어났으니 너무 가난해서 미국의 원조를 받았어요. 2년 전, 우연한 기회에 CMBC(한국기독실업인회)에서 초청을 받고 60년 만에 처음으로 제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6개월 동안 기도하며 간증 준비를 하는데, 깜짝 놀랐어요. 정리하면서 하나님이 제 인생에 이렇게 치밀하게 개입하신 것을 처음 깨달았어요. 「꼴찌 박사」도 그런 은혜를 발견하고는 울면서 쓴 책입니다.
학창시절, 얼떨결에 교수를 하겠다는 말을 해놓고는 적성에도 안 맞는 미달학과에 들어갔어요. 입학하는 날 어머니가 축하한다고 흰 봉투를 주시더군요. 그 안에 역대하 16장 9절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말씀이 적혀 있었어요. 어머니께서 “네 머리는 나쁜 머리로 검증된 머리다. 네 머리로 교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하나님이 네 속에서 일하시도록 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때는 섭섭했지만, 생각해보니 맞는 얘기였지요. 결국은 그 말씀이 평생 저를 끌고 가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열등감 때문에 나 자신만 보면 너무 부족하고 못나서 숨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어머님이 적어주신 역대하 16장 말씀처럼 하나님이 내 속에서 일하신다고 믿으니 열등감이 자신감으로 변하더군요. 힘든 걸음이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45년간 돌봐주신 에드나 어머니

어린 시절부터 45년 동안 저를 도와주신 에드나 어머니는 제가 교수를 하는데도 15달러를 보내주셨어요. 매달 오는 편지 내용 중에는 변하지 않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GOD loves you. Trust his love. I pray for you.(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단다. 그의 사랑을 믿어라.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대학 교수가 되고, 6년이 지났을 때 에드나 어머님 연세가 99세셨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미국에 무작정 갔습니다. 간다고 하면 오지 말라고 하실까 봐 주소만 들고 찾아갔지요. 어머니를 만나면 꼭 하고 싶은 질문이 있었거든요. “나는 당신의 아들도 아니고, 이웃도 아닌데. 한 번도 본적 없는 외국 아이를 어떻게 4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할 수 있었나요?” 그게 궁금했어요. 에드나 어머니께 물으니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을 해주시면서 “나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지만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나를 구원해 주시는 선물을 받았단다. 그런 내가 너에게 15달러를 100년을 줘도 그 은혜를 못 갚는단다.” 이어서 10절의 “예수 안에서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에드나 어머니는 미국의 소시민이셨습니다. 저는 여권이 없는 미국 사람은 처음 봤어요. 살아계신 100년 동안 비행기를 한 번도 못 타 보셨죠. 에드나 어머니 마지막 직업이 편의점 직원이셨는데도 교수인 저에게 15달러를 보내주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2001년도에 105세에 돌아가셨어요.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을 돕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에이즈학회장 일을 하면서 에드나 어머님의 사랑이 자주 떠올라요. 에이즈에 걸린 어린 아이들을 돕고 있는데 아이들 중에는 아버지가 에이즈에 걸려서 에이즈인 경우도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엄마가 에이즈에 걸리고, 엄마는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임신했다가 아기가 에이즈에 감염된 상태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제네바에 있는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와 함께, 이런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에이즈 치료를 해주고 있어요. 공항에서 국제선을 탈 때마다 1달러 내는 '고통없는 후원금'으로 이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교육을 잘 받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지요.
1달 전에는 베트남 정부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에이즈 환자를 만났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수혈을 받았는데, 에이즈에 감염된 피를 받은 거예요. 공무원 복지부 직원 7명이 서 있는 가운데 이 분과 대화하는데 그를 위해 기도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곳은 불교 국가이고 옆에 공무원들이 서 있으니 기도할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데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기도해줘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지요. 그가 “나는 예수가 누군지 모르지만, 그 기도를 받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도를 하고 눈을 떴더니 그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미국 대학에서 쫓겨난 후 인도해주신 길

대학 시절에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어머님이 주신 역대하 말씀처럼 하나님께 잘 보여서 하나님을 내 인생에 끌어들이려고요. 그런데 갑자기 결핵에 걸려서 모든 걸 스톱시키시더군요. 너무 당혹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잘 풀릴 줄 알았거든요. 안 풀리는 정도가 아니라 죽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 거예요. 그때는 결핵으로 죽을 수도 있었거든요.
적성에도 안 맞는 공부를 하러 미국까지 갔는데 성적이 안 돼서 미국 대학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어요. 다행히 한 교수님이 추천서를 써주셔서 입학 편지가 왔는데 조건부인 거예요. 우리 학교에 딱 한 명의 교수가 당신을 받겠다고 나타났다. 그 교수 밑에서 공부하려면 우리 학교에 오고, 안 하려면 오지 말라는 거예요. 저는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제가 한 적이 없어요. 다 그렇게 하나님이 하셨지요. 그래서 제가 난데없이 그 교수에게 가서 에이즈를 배우게 됐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고민을 하지만, 저처럼 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런 기회가 오면 감사하게 받아요. 저를 받아준다는데 얼마나 고마워요.
갑자기 결핵에 걸리고, 미국 대학에서 쫓겨난 사건이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그 때 제 영적 근육이 많이 성장 했더군요.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 왔기 때문에 그 과정을 통해서 제 내면이 굉장히 튼튼해지고, 용기가 생기고,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나중에 큰일을 시키기 위해서 단계별로 혹독한 훈련을 거치게 하신 것 같아요.

노벨상 수상자와의 기적 같은 만남

「꼴찌 박사」를 읽고, 제 간증을 들은 분들이 깜짝 놀라고는 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그런 만남들이 이루어졌으니까요. 노벨상 수상자와의 만남은 정말 독특하고 특별한 만남이었습니다.
건국대 개교 50주년 행사를 하는데 제가 그 일을 맡게 된 거예요.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백신을 발견해서 노벨상을 받은 블럼버그 박사를 초대하면 좋겠다 했지요. 그 때 우리나라에 간염 환자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노벨상 수상자를 초청하려면 1년 전에 약속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들 몰랐어요. 그 분은 2년 전에 옥스퍼드대학하고 약속이 되어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냥 미국으로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실 거야.’ 그런 믿음을 가지고 미국에 도착했는데 그분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건대에 저와 함께 갈 때까지 여기를 안 떠난다고 하고는 복도에서 노숙을 했지요. 당시 저도 교수였지만, 제가 창피당할 게 뭐가 있겠어요. 다만, 이분에게 그런 모습이 무례함으로 비춰질까봐 그게 염려되긴 했지요. 다행히 그분이 그런 모습을 나쁘게 안 보고 좋게 보신 거예요. 옥스퍼드 일정을 1주일 줄이고 건대에 오게 됐지요. 그리고 그분과의 만남이 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게 되었습니다. 6개월 뒤에 그분에게 편지가 왔어요. 그분의 초청으로 함께 스탠퍼드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에이즈 분야의 세계 최고의 대가도 소개받았어요. 블럼버그 박사가 그곳에서 시간의 40프로는 자신과 함께 지내자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를 불러서 같이 식사하고 차를 마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세계적인 노벨상 수상자, 정치인, 기업인들을 다 만났지요. 하나님이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서 제 생물학적인 머리에 정치, 경제, 경영이 다 들어가게 만들어주셨어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대화하면서 저를 통섭형 두뇌로 바꾸시더군요. 스탠퍼드대에서 1년 반 동안 지낸 시간이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지요.

운명을 사랑하고 받아들인 자의 책

과학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과학이 어떻게 상업화 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란 책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어떻게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었는지, 전기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과, 투자자와의 관계에서 삐걱거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 굉장히 자세히 쓰여 있더군요.
인문학 책도 많이 보고, 시집도 좋아합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였다가 이과로 옮겨서 문과에 대한 향수가 아직 남아있거든요. 저는 윤동주의 시를 만나지 않았다면 시를 좋아하지 못했을 거예요. 윤동주 시인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사랑했고, 죽어가는 것들도 사랑했습니다. 그의 시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이 있고, 사랑과 희망을 만나게 해줍니다.
힘들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를 추천해 주고 싶어요.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고 자기를 사랑하며 운명에 맞서서 절망을 극복해 가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거든요. 주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대학 시절부터 있었던 습관이 걸어가면서 기도를 해요. 미달학과로 대학에 들어갔는데 공부는 못하지, 박사는 되어야겠지, 절실하게 하나님이 필요한 거예요. 새벽 예배도 가고 밤에도 교회에 갔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거예요. 버스 안에서, 걸어가면서 중얼중얼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주님이 나를 만들어줄 줄 믿습니다.”하고요.
젊은이들이 힘들 때, 혼자 슬퍼하지 말고 기도했으면 좋겠어요. 혼자 힘들어하는 게 내 인생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요. 내 인생은 그리스도의 것이거든요. 나는 그리스도의 것인데, 내 걱정을 그리스도가 해야지 왜 내가 해요. 그러니 혼자 울지 마라. 울더라도, 예수 꼭 붙잡고 울어라. 죽고 싶더라도 예수 꼭 붙잡고 죽고 싶어 해라. 예수 놓으면 큰일 난다. 그런 부탁을 젊은이들에게 해요.

비전 및 기도제목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선택적으로 보지 않아요. 내게 사랑의 마음이 있으면 도와주고,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안 도와주고, 여유가 있으면 도와주고, 없으면 안 도와주고 그런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어요. 에드나 어머님을 보면서 가난하든 부자든, 늘 해야 하는 게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돈이 없으면 기도로 이웃을 사랑하는 거예요.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은 무조건 도와야 하는 거예요.
‘왜 하나님이 에드나 어머님을 45년 동안 내 옆에 붙여두셨을까? 그리고 45년간 변하지 않는 똑같은 메시지가 그분을 통해 나에게 전달됐을까?’ 하는 질문의 답을 이제 찾았어요. 너도 에드나 어머니가 한 것처럼 사랑의 행위를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에드나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셨어요.
이제 남은 인생의 2막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 살고 싶습니다. 이전까지는 내가 삶의 중심에 있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으로 살고 싶어요. 나는 단지 그분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도구일 뿐입니다.



- 인터뷰 진행&정리 : 이음 작가
- 사진 : 이요셉 작가
- 인터뷰 장소 : 건국대학교
- 기획.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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