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선미 작가의 서재는 “그림”이다

화가 김선미 작가의 서재는 “그림”이다

첫 개인 전시회를 준비하며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거의 마지막 1달 반은 하루에 잠을 세 시간씩 자면서 16시간, 17시간 그림에 매달렸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으로 기도는 했지만 따로 시간을 내서 말씀을 보거나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어요. 그런 저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더군요. 기독교 미술을 한다고 하면서 말씀도 못 읽고 그림에만 매달리는데 이런 전시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이런 생각까지 들면서 마지막 한 달은 정말 힘들었어요. 전시회를 왠지 내 욕심으로 하는 거 같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이 앞서는 것 같고요.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는 데 갑자기 말씀이 떠올랐어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시편 19장 말씀이었어요. 전시 주제는 잡혀있었지만 중심 말씀을 무엇으로 할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떠오른 시편 말씀이 제가 작가노트에 적어둔 내용과 딱 맞는 말씀이었어요. 그날 너무 감격해서 ‘주님, 제가 이렇게 부족한데도 제게 말씀을 주시네요.’ 하면서 감사 기도를 드렸어요.

시편 19장이 담긴 첫 전시회

첫 전시회의 그림에는 가볍게 표현된 것 같지만 사실 마음이 아팠던 풍경이었어요.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다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노인이 앞에 서있어도 다들 카톡만 보고 있고요. 이렇게 인간이 소외되어 가는구나 하며 너무 가슴 아팠어요.
그런데 교수님과 대화하면서 제가 너무 부정적인 면만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SNS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분 들도 계시고, 저도 유튜브를 통해 좋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고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는 풍경을 중립적으로 표현했어요. 카카오톡을 많이 하니 이모티콘으로 얼굴을 바꿨어요. 사람들 뒤로 고흐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데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했어요. 지금 우리가 이런 모습이라 할지라도 온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별들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날은 날에게 전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도 온 만물이 하나님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시편 19장의 1~2절의 말씀과 접목해서 전시를 준비했어요.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유학 시절

한국에서 서울의 좋은 대학(서울대학교 도예 전공)을 나왔으니 독일 미술대학에서도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어요. 제가 교만했던 거죠. 형편없는 점수로 떨어지고 나니 내가 미술에는 소질이 없구나 하고 좌절이 되더라고요. 당시 독일의 미대를 다니는 유학생들이 제 포트폴리오를 보더니 독일 경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다시 경향에 맞게 준비해보라고 조언해줬지만 그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어요. 좌절이 너무 컸으니까요. 하나님은 협력해서 선을 이루신다고 그 시간이 저에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독일 가기 전까지 저는 선데이 크리스천이었거든요. 주님과 일대일로 교제하는 시간이 없었어요. 독일에서 미술대학에 떨어지고 열심히 언어 공부해서 들어간 미술교육학과도 곧 그만두게 됐죠. 독일에서 학교생활을 했으면 바쁘게 공부하며 살았을 텐데 학교에 떨어지고 나니 시간의 여유가 많이 생겼어요. 그때 온누리교회 출신의 집사님을 만나서 큐티를 배우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죠.


다시 붓을 잡게 된 은혜

대학시절부터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서울대에는 워낙 탁월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잖아요. 그렇게 쌓였던 열등감이 독일의 미술대학에서 떨어지면서 좌절감으로 바뀌면서 독일에서 10년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독일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한국에 왔는데 기도에 대한 갈급함도 있었어요. 당시 지인의 권유로 여러 중보기도모임에 가게 되었죠. 그 시간이 저에게는 기도를 훈련받는 시간이었어요. 귀국하고 기도 모임에 열심히 다니고 있을 때 후배에게 포슬린 아트(도자기 아트) 공방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포슬린 아트란 유약을 바른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려서 유약이 녹지 않을 만큼의 낮은 온도에 다시 도자기를 구워내는 방식이거든요. 독일에서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걸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계속 길이 막히더라고요.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던 분이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 길을 열어 주실 거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그저 기다렸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길이 열렸죠. 하지만 포슬린 아트가 비용이 많이 들어요. 교육비도, 재료비도 비싸고요. 당시에는 저희 부부가 살아가기에도 빠듯한 재정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재정을 다 채워주셨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는 말씀처럼 기도하면 다 공급해주신다는 말씀을 맛본 시간이었어요.


혈액암 청년에게 선물한 그림

기적처럼 포슬린 아트 공방 강사를 하게 되면서 강사로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림이 잘 안 그려지는 거예요. 독일 대학에서 떨어졌던 악몽이 떠오르더군요. 기도를 하면서 겨우 전시 기한 안에 마무리를 했어요. 그런데 그림 하나를 못 냈어요. 기도하는 중에 이 그림은 지인의 아들에게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아들이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데 혈액암이었어요. 그림을 선물하고 기도모임에 왔는데 계속 문자가 오는 거예요. 그림을 선물 받고 엄마와 아들 둘이서 4시간째 그림을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는 거예요. 너무나 큰 주님의 은혜가 느껴져서요. 그때 깨달았어요. 그림은 내가 하는 게 아니구나. 주님이 하시는 것이구나. 그렇게 그림이 안 풀려서 방언으로 기도했던 게 이 청년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기도였던 거예요. 그 사건이 저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됐지요. ‘그래. 나는 재능도 없고 그림도 잘 못 그리지만 내가 그리는 게 아니구나. 하나님이 필요한 곳에 나의 그림을 쓰시는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 오면서 마음이 회복되었어요. 여전히 그림이 잘 안 그려지는 순간은 힘들지만 그때의 감동을 떠올리면서 다시 힘을 내서 그림을 그려요.

기독교와 예술에 대한 책

프란시스 쉐퍼가 [예술과 기독교]에 쓴 글 중에 제가 가장 공감하는 문장이 있었어요. “악하고 조악한 미술은 사람들에게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악하고 탁월한 미술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다.”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선하고 조악한 미술은 하나님의 특별한 쓰심이 있지 않는 한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에게 별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죠. 하지만 선하고 탁월한 미술은 하나님도 쓰시기에 편하실 것 같아요. 그래서 기독교 미술을 하는 작가는 열심히 연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스티브 맥베이의 [은혜 영성의 파워] 란 책을 읽고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이 책은 예수님이 이미 다 하셨으니까 감사함으로 그것을 취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제가 완벽주의 기질이 있어서 제 힘으로 다 잘 해내려는 성향이 있거든요. 이 책을 쓰신 목사님도 사역을 정말 잘하시던 목사님이셨어요. 여기저기서 크게 부흥시키는 목사님이셨는데 새로 담임한 교회에서 계속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셨다고 해요.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내 힘으로 잘하려고 했다는 걸 깨닫고 이 책을 쓰셨다고 해요. 이 책을 읽을 무렵에 주님이 주신 말씀이 포도나무의 비유였어요. 가지에 붙어있기만 하면 되는데 제가 스스로 열매를 맺으려 했던 거죠. 그런 자아를 말씀에 의지해 계속 내려놓으려고 해요.

더 큰 은혜를 가르쳐 주신 미술대전

백석대학원의 기독교미술학과에 다닐 때였어요. 방학 중에 학교에 오셨던 교수님이 우연히 제 그림을 보시고 기독교미술대전에 내보라고 권유해 주셨죠. 처음으로 100호에 기독교 미술대전에 낼 그림을 그리고(그림, 좌), 또 한 작품은 저의 신앙고백을 담은 그림을 그렸어요. 독일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고개를 푹 숙이고 독일 거리를 걷고 있던 제 모습이었어요(그림, 우). 그때 저는 깨닫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내 안에 꽉 차있었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었어요. 동그라미로 표현한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그것이 생명으로 각 사람들에게 임하는 풍경이었죠. 두 그림을 냈는데 하나는 특선을 하고, 제 신앙 고백을 담은 그림은 낙선을 했어요. 다음 학기 등록금이 없어서 대상을 바랬거든요. 그런데 상금이 없는 특선을 받은 거예요. 사실 더 마음이 힘들었던 건 제 신앙고백을 담은 그림이 낙선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강원미술대전에 그림을 내게 됐는데 그림이 잘 안 풀리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지난번 낙선했던, 신앙고백을 담은 그 그림을 냈어요. 입선이 아닌 낙선한 그림은 다른 공모전에 낼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 그림으로 강원미술대전에서 대상을 탄 거예요. 너무 놀라운 게 그 때 받은 상금으로 등록금을 내고 그해 겨울, 남편과 제가 평신도 선교사 훈련으로 단기 선교를 다녀올 수 있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생명이 전해지는 그림

제 그림에는 가는 선이 되게 많아요. 100호 그림에는 넓은 면도 있지만 대부분 가는 2호 붓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굵은 붓으로는 선의 미묘한 부분을 표현하기 어렵거든요. 석사 논문에 제가 그린 그림을 분석하면서 생명을 표현한 도구를 리듬이라고 했어요. 제 그림에 담긴 고흐의 붓터치가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는 걸 저는 리듬으로 봤거든요. 그런 섬세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가는 2호 붓으로 그려야 해요. 가는 붓으로 100호를 그릴 때는 좀 힘들었지요(웃음).
보통 좋은 그림을 보면 생명력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 생명력의 표현과 하나님의 생명력, 이 두 가지를 제 안에서는 구분 짓고 싶어요. 좋은 그림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회복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전해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제 그림을 통해서 사람들 안에 회복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이 작가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궁금해지는 그런 그림을요.

비전 및 기도 제목

올해 백석대에서 박사 과정에 들어가요. 기독교 미술이 예전에 비해서는 이론이 많이 체계화되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직 위상이 잘 정립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때로는 제 그림이나 다른 기독교 미술 작품이 표면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것이 이론의 부재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술사라던지 이론을 심도 있게 공부하면서 기독교 미술을 하는 분들을 위해 기반이 되는 이론적 토대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있어요.
기도제목은 좀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워왔다고 생각해요. 사랑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모른 채 세상의 가치에 매달리는 걸 볼 때 아픈 마음으로 중보하게 돼요. 저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시대를 잘 분별하고 기도로 깨어있어서 주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인터뷰 진행&정리 : 이음 작가
- 사진 : 이요셉 작가
- 인터뷰 장소 : 카페 라브리
- 기획.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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