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백형선의 서재는 ‘이웃’이다.

치과의사 백형선의 서재는 ‘이웃’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이셨던 고 김활란 박사님이 1960년대에 “우리나라의 미래는 전도다” 하시면서 세우신 다락방전도협회가 있었어요. 치의예과 2학년이었던 저는 1972년도부터 그곳에서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다락방전도협회의 서용원 목사님과 성경공부로 시작한 모임에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생들이 합류하게 되면서 에셀이란 동아리가 만들어졌어요. 매주 수요일 성경 공부와 함께 방학마다 고아원에도 가보고, 윤락여성들이 있는 곳도 가고, 연초 공장, 마포에서 넝마주의자들(생계를 위해 헌 옷이나 헌 종이, 폐품 등을 주워 모으던 사람들)이 모이는 이들에게도 찾아갔지요.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학생운동을 하며 성경이 말하는 ‘이웃’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찬양대하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고, 공부도 열심히 하며 살았는데 나는 내 이웃이 누구인지는 몰랐어요. 성경에서 배웠지만 실제로는 못 봤던 것이지요. 그런 이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정말 도와주고 사랑해야 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이웃을 돕는 일을 하게 되었지요.

치과 의료선교 에셀의 첫 해외 선교지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열악한 환경의 우리나라에 와서 복음과 함께 교육과 의술을 전해줬잖아요. 우리도 언젠가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부터는 우리나라도 비자가 나오면서 외국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었지요. 그렇게 해서 에셀에서 93년도에 필리핀으로 첫 해외 선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해외 선교는 처음이라 두려웠지요. 다들 경험이 없는데 외국에 이런 치료 장비를 가지고 가서, 진료를 해야 했으니까요. 의사는 저하고, 레지던트, 그리고 학생들 몇 명 이렇게 소수의 인원이 갔습니다. 첫 사역지가 필리핀 마닐라 인근의 도시 빈민 사역지와 화산 폭발 이재민이 거주하는 타를라크 지역이었어요. 화산 폭발이 있던 지역에서는 밥을 못 해먹을 것 같아서 미군 전투식량, 씨레이션을 사 가지고 갔지요. 진료를 마치고 교회 학교에서 식사를 하는데 아이들이 쭉 서서 우리를 보고 있는 거예요. 굶었을 아이들 앞에서 식사를 할 수가 없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음식을 다 나눠주고 대원들은 다 같이 굶었습니다. 아무 것도 못 먹고 자려고 누웠는데 너무 기쁘더라고요.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었지만 이 일이 얼마나 보람이 있는지를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선교지에서 섬세하게 돌봐주시는 하나님

캄보디아에서 진료 사역을 하는데 하루는 선교사님이 가까운데 나환자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환자들의 자녀들은 음성인데 마을 밖을 못 나온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싫어하니까요. 그 교회에 가서 자녀들을 진료해주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시더군요. 함께 온 대원들이 다 가겠다고 해서 그곳에 진료를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걱정하시기를 그 교회가 지붕만 있고 다 오픈이 된 곳인데 모기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진료하는 사람이 하루 종일 모기에 시달릴 텐데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시더군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저희가 진료하는 동안 모기가 한 마리도 없었어요. 그곳에 계신 분들이 굉장히 신기해하시더군요. 그런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사역에 함께 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번은 말레이지아 보르네오 섬에서 쪽배를 타고 4시간을 가야 하는 지역에 갔습니다. 배를 타는데 비가 부슬부슬 오는 거예요. 제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불평했지요. ‘주님, 비가 와서 저희 장비 다 젖으면 큰일 납니다.’
도착해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데 또 비가 부슬부슬 오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지역의 햇볕이 정말 강했던 거예요. 당시에 선크림 이런 것도 없고 햇볕 아래서 배를 타고 갔으면 살이 완전히 데어서 잠도 못 자고 진료도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섬세하게 저희 팀을 인도하시는 것을 깨닫고 나중에 제가 회개했지요.
선교지에 가면 육체적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그런 은혜를 체험하니까 너무 기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형통하게 길을 열어 주셨기에 25년 동안 계속 선교지를 갈 수 있었네요.

단기 선교를 떠나는 이들에게 권하는 책

의사이자 소설가인 A.J. Cronin의 자서전적인 소설 「성채」를 대학교 시절에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A.J. Cronin의 소설은 다 사서 봤지요. <성채>는 영국의 청년 의사가 광산촌 웨일스에서 현실의 부조리 속에서 부패해 가다가 환자의 죽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다시 고민하면서 의사로서 추구해야 하는 삶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의사라면 꼭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책입니다.
단기 선교를 떠나는 분들에게는 「단기의료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선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있어요. 이 책이 그런 가이드를 해 주는 책입니다. 이제까지 진행된 단기 선교의 장점과 문제점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고정(도식화)된 우리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하여 더 효과적인 단기의료선교사역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지요. 그 동안 에셀 치과의료선교팀도 나름대로 해마다 발전하며 진행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매년 변화되는 사역지 상황에 대하여 우리 팀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하여야 한다"는 도전을 받게 되더군요.

현지 사역을 돕는 ‘움직이는 병원’

예수님께서 베네스다 연못에 찾아가셔서 38년 된 병자를 만나주셨어요. 예수님이 그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셨단 말이지요. 예수님이 왜 그 사람을 선택하셨는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도 예수님처럼 필요한 이들에게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선교지를 가면 천 명 정도 환자를 치료하고 옵니다. 의사가 대략 열 명 정도 가지요. 하루에 진료 환자가 300명 정도가 됩니다. 제가 새벽에 준비해서 아침에 다 함께 큐티를 하고, 저녁에 사역이 끝나면 평가회를 하고 기도회를 하지요.
사역지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정신없이 치료하다 보면 본질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을 구하는 것이지요. 선교의 목적을 잃어버리면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열정만 앞서는 것도 안 됩니다. 한 번은 한 대원이 자기 돈을 들여서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마크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선교지에서 그걸 달고 하자고 했지요. 대원에게 현지 선교사님이 허락하시면 달 수 있어도 우리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선교사님께서도 그 얘기를 듣고는 “그러면 너무 좋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사역하고 떠나시면 저는 쫓겨납니다.” 하시더군요. 단기 선교를 할 때는 자기 열심이 아니라 모든 것을 현지 선교사님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해야 합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사니?”

아버님께서 권하셔서 치대에 들어오게 됐지만 한번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92년도에 수련회를 갔는데 서용원 목사님께서 저에게 “너는 무엇을 위해서 사니?”라고 물어보시는데 그 질문을 듣고 제가 대답을 못했어요. 교회에서, 학교에서 열심히 살아왔지만 무엇을 위해서 사냐고 물으시는데 대답을 못하겠더군요.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교회에 다니고 그런 것이 하나의 생활이지 내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들더군요. 그럴 즈음 본과에 올라가서 해부학 시간에 실험대 위에 쭉 누워있는 시체들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게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신앙에 대해 6개월 동안을 깊이 고민하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시간이었지요.
88년, 89년도에 미국에 방문 교수로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 36살이었는데, 그곳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데 갑자기 월요일에 연락이 왔어요. 병원에 입원했다는 거예요. 흉선암이 걸렸는데 미국에서 공부하느라고 8년 동안 가슴 사진을 한 번도 못 찍었다고 해요. 친구 집에 갔는데 아이가 4살밖에 안 됐는데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하나님께 친구를 살려달라고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친구를 위해 정말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부어주시더군요.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지적인 부분으로만 이해하고 알았던 하나님이 아닌 더 크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친구는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렇게 힘들 때나 흔들리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기도로 다시 제자리로 오게 하셨습니다.



비행기에서 쓰러진 사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갈 때 비행기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밥을 먹고 난 후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다가 바닥에 쓰러졌지요. 숨이 안 쉬어지더군요. 바닥에 쓰러져서 ‘이러다 죽는 거구나’ 생각했는데 스튜어디스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산소마스크를 해주더군요. 사람들은 사역지가 아니라 병원으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권유했지만 여기서 내가 병원으로 가면 사역 스케줄이 엉망이 되잖아요. 그래서 그냥 하나님이 살려주셨는데 괜찮을 거다 하고 남아공으로 갔습니다. 갔다 와서 심장내과에 가서 검사했더니 좌심실 벽이 두꺼워졌다고 해요. 아직도 약을 먹고 있습니다. 얼마 전 동유럽 갔다 오다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서 요즘은 장기로 떠나는 선교는 가기가 어렵네요.
후배들이 선생님은 이제 아무것도 하시지 말고 그냥 곁에 계시기만 해도 힘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이후로는 좀 편해졌습니다(웃음). 그때 사역지에서 쓰러졌으면 저는 감사하지요. 그럼 순교잖아요(웃음). 하나님께서 저를 쓸 일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살리실 거고, 그 정도면 됐다 하면 가야지요(웃음).

비전 및 기도제목

저희 노할아버님이 평양에서 신학을 하셨고 감리교 역사에 나오는 이화춘 목사님이십니다. 외할아버지, 어머니, 저, 그리고 아들, 손자 이렇게 6대째 신앙 가족이지요. 저희 어머님이 연세가 91세이신데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셔서 후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외할머님께서 100세에 돌아가셨는데 외할머님도 그렇게 기도하셨어요. 그런 기도하시는 모습, 주일날 항상 교회에 가시고 목사님을 섬기는 태도, 그런 것들을 보며 자랐지요. 말로 백 번 가르치는 것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치과의료선교사역 에셀도 변화하는 상황에 잘 대처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더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제 아들이 학생 때부터 저와 함께 선교를 다녔습니다. 지금은 저와 같은 치과 의사의 길을 가고 있지요. 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냐고 주변에서 물어보는데 저는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그건 아들에게 물어봐야지요(웃음). 저와 같이 연세백병원도 시작하고, 해외 선교도 함께 가겠다고 하니 제가 나쁜 아빠는 아닌 것 같네요(웃음). 손주까지 6대째 신앙인데 우리 가정에 신앙 계승이 잘 되고, 어머님, 장모님도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제가 경추 협착증이 있어서 한동안 교회 갈 때 지팡이를 짚고 갈 때도 있었어요. 남은 인생도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해주시는 길을 잘 따라 갈 수 있도록,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 인터뷰 진행&정리 : 이음 작가
- 사진 : 이요셉 작가
- 인터뷰 장소 : 연세백치과
- 기획.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공감 캠페인

내 마음의 서재는 "희망을
밝히는 따뜻한 북스토리 입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