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교육전문가 박재연의 서재는 “관계”다

대화교육전문가 박재연의 서재는 “관계”다.

제 책장을 메우고 있는 책들은 90프로는 사람, 심리, 뇌과학, 상담 책들이 대부분이에요. 그 안에 관계가 다 있지요. 제 서재에 종교 서적도 참 많아요. 저희가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은 없다고 할 때도 하나님은 깨닫게 하세요. 나는 항상 너와 연결되어 있다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관계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나와 우리 가족,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그 다음은 세상, 사회와의 관계죠. 이 관계는 공감으로 연결되어 있거든요. 내 느낌과 다른 사람의 느낌을 추측할 수 있는 이 능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공감을 막는 것 중에 하나가 거리감이에요. 시리아 난민이 100명이 죽어도 우리는 별로 느낌이 안 와요. 거리가 멀면 공감 능력이 많이 줄어들죠. 그런데 나 자신과 하나님과 관계가 연결되어 있으면 먼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죠. 사회와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해요.

소통을 위한 시작점

저는 10년 전에 굉장히 불행했어요. 아이와 둘이 살면서 공황장애까지 왔었죠. 내 인생은 실패구나 이런 인생을 실패라고 하는구나 생각했었어요. 우리 아이가 6살이 되던 해에 제가 아이를 아주 많이 혼낸 적이 있었어요. 덧셈을 못한다고 야단친 거예요. 그날 아이가 조그만 종이에 편지를 써서 제 방에 두고 갔어요. 엄마가 화낼 때 너무 무섭다고, 그런데 엄마를 너무 사랑한다고. 눈이 퉁퉁 부은 아이의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아이가 적어둔 종이에는 ‘사랑과 두려움’이란 단어가 함께 적혀있었죠. 그걸 보면서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데 이런 엄마가 되면 안 되겠구나. 어떻게 하면 이런 모습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교육, 심리, 대화 여러 분야에 대해 공부했죠.
그러다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면서 개인의 삶과 서로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대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렇게 대화교육을 하게 되었죠. 제가 생각하는 소통의 전제는 진실하게 자신을 보기 시작하는 것에 있어요. 자신을 드러낼 수 없으면, 내 아픔을 상대에게 드러내지 못하면 소통이 시작될 수 없거든요. 나의 이런 모습을 남에게 얘기하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두려움이나 수치심 때문에 그런 얘기를 못 할 수 있어요. 그 말은 돌려 말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늘 신경 쓴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볼 수 없어요. 대화 교육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대화의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자기의 욕구를 몰라요. 자기가 마음속에서 뭘 원하는지 모르면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가 없어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나의 수치스러운 모습, 우울한 모습, 부끄러운 모습을 다 꺼내서 볼 수 있어야 돼요. 내가 이런 것을 두려워하는구나. 내가 이런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우울하구나. 이런 것은 내가 꺼내보기 싫을 만큼 불안해하는구나. 이렇게 자신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의 감정도 고스란히 볼 수 있죠. 그 과정이 아프긴 해요.

보통 자기개발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약점은 숨기고 강점을 드러내 경쟁에서 이기라고. 하지만, 박재연씨는 도리어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라고 합니다. 약육강식의 현장인 기업에서조차 그렇게 대화교육을 합니다. 그녀가 말하는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을 드러낼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약점과 강점은 내 생각이 만든 것

약점과 강점은 우리가 만들어낸 생각이에요. 저는 자신의 “여림”을 드러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자신의 취약점. 남들에게 보여줬을 때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거야.’ 하는 건 내 해석이에요. 오히려 내 여림을 드러낼 때 남들과 진짜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 생기게 돼요.
기업에서 대화 교육을 시작할 때 그분들에게 아주 가벼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꺼내놓게 해요. 그럼 어떤 분은 “사실 저요. 영어도 못하는데 팀 회의 때 알아듣는 척했어요.”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럼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쟤 뭐야? 이제까지 아는 척 한 거야?” 하고 반응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다른 분이 “사실 저는 먹는 것만 보면 못 참아요. 집에 가서 토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먹어요.” 하면서 자기의 여림을 드러내기 시작해요. 누구 한 사람이 자신의 여림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전염이 돼요. 조직에서도 그런 나눔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강점과 약점이라는 표현보다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다.” “내가 두려워했던 내 모습이다.”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잘한다 못 한다, 좋다 나쁘다. 맞았다 틀렸다. 이런 표현은 다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보면 관계를 아주 힘들게 만들 수 있죠. “

대화를 위한 위한 열쇠

소통에도 기준이 있어요. 사람하고 대화를 잘하려면 그 사람의 관심사를 알아야 하잖아요. 관심사는 좋아한다는 행동이거든요. 만약에 어느 한 분에게 관심사가 뭐냐고 물었더니 매일 아침 신문을 보는 게 자기의 관심사라고 하셨어요. 신문을 보는 그분의 욕구를 보면 배움이라든지 자신감, 유능함, 인정, 이런 것들이 내재되어 있어요. 저는 그런 욕구를 봐요. 모든 행동에는 그 사람이 만족하게 하려는 욕구가 있거든요. 그것만 알면 대화가 잘 이루어질 수 있어요.
기업에서 대화교육 중에 팀장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제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추측해서 팀장님에게 물었죠. “팀장님은 협조가 필요하신 건가요?” “네. 그러네요. 그런데 저는 계속 대리에게 너는 내가 맨날 찾을 때마다 왜 자리에 없는 거야” 라고 만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본인은 팀이 협력하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었던 거예요. 그럼 그걸 다르게 얘기할 수 있어요. “나는 우리 팀원들이 협력하는 게 중요해.” 그렇게 얘기하면 상대가 듣기에도 기분 나쁘지 않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가 아닌 상대의 잘못된 점만 얘기해요. 그래서 넌 잘못했으니깐 이렇게 해. 그리고 그 사이에서 관계가 틀어지고 오해가 생기는 거죠.

기적처럼 다가온 만남

2011년도에 싱가포르에서 아이와 1년을 보냈는데요. 그때 하나님을 만났어요. 김밥을 먹으러 한 권사님 댁에 갔다가 그분에게 일대일 양육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죠. 그때는 한국에 돌아와서 교육도 많아지고 제가 정말 잘 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아이와 영화를 보러 갔다가 공황장애가 또 다시 왔어요. 모든 것이 다 제 뜻대로 되는 것만 같던 상황에서요.
저는 그 증상이 오고 40일 동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시간 동안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요한복음 21장을 기도를 통해 주시고, 쓰레기통에 떨어져 있던 주보를 통해 보여 주시고. 그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의 말씀에 제가 “네 예수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게 됐어요.

가족을 변화시킨 책, 「사랑하면 통한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베드로가 헛고생하잖아요. 고기 한 마리도 못 잡고. 제가 그걸 깨달았어요. 내가 지금 내 잘난 맛에 하려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멈추셨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책도 그렇게 해서 쓰게 되었고요. 책이 나오고 나서 제 가족도 가정의 아픔에 대해서 다 얘기하게 됐어요. 놀라운 일이죠. 오빠도 저도, 부모님에게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사과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고요. 그렇게 가족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부모님도, 오빠도 다 교회를 다니게 되었어요. 「사랑하면 통한다」란 책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 같아요. 저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가 가족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책을 통해 해결해 주셨어요.
책을 보면 소통을 위한 네 가지 과정이 담겨있어요. 먼저 내가 못났다고 생각되는 모습, 아픈 모습들을 다 드러내는 것이 필요해요. 사람을 통해서 드러내기도 하고요. 기도나 상담을 통해서 다 드러내도 돼요. 그렇게 컨페션(Confession:고백)하면 ‘절대 이런 걸 발설하면 안돼, 이런 걸 밝히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에 눌려서 감추어져 있던 순수한 감정이 나와요. 슬프다. 두렵다. 이런 감정을 충분히 느끼는 게 두 번째. 컴패션(Compassion:긍휼)이에요. 나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힘든 존재였는가에 대한 연민이 올라와요. 세 번째가 커넥션(Connection:연결)인데. 그 감정 이면에 '아, 그때 내가 보살핌이 필요했구나. 수용 받는 게 필요했구나.' 깨닫게 되죠.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소통)은 내게 상처를 준 상대에게 “그 당시에 내가 이런 이유로 슬펐는데 내가 수용 받는 게 필요했어.”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게 돼요. 소통은 이렇게 네 가지 C를 통해서 이루어져요.

고백(Cofession)과 긍휼(Compassion) 그리고 연결(Connection)이 이뤄 질 때 진정한 소통(Communication)이 일어난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소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연결하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연결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친밀감을 경험합니다.



숨기고 감추었던 시간

제가 누군가와 잘 지내기 위해서 보니 정작 저 자신과 잘 못 지내고 있더라고요. 저를 끝없이 자학하고 학대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힘들지만 훌륭하게 잘 산 사람들, 예를 들면 마틴 루터킹이나 간디, 그런 분들의 삶을 보니 자기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힘들었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지 않았어요. 제가 「사랑하면 통한다」란 책을 냈을 때 우스갯소리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제 동창들이 이렇게 얘기할 거라고. “너, 엄청 뻥쟁이었구나. 어린 시절이 굉장히 행복한 줄 알았는데 다 거짓말이었구나.”
저는 제 아픔을 철저하게 숨겼어요. 그건 열등감이었고 수치심이었기 때문에 드러낼 수가 없었어요. 그걸 드러낸다는 건 죽음과 같았으니까. 그걸 꺼내 보이라고 해준 것이 제 아이였어요. 그렇게 자신을 숨기면서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아이가 가르쳐줬어요. 다른 사람 앞에서는 다 숨기며 살았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제가 너무 추한 사람인 거예요. 제 아이를 통해서 저의 그런 모습을 봤어요. 제 안에 변화가 절실했었죠.

삶을 다르게 보게 한 「죽음의 수용소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나 힘들던 때였어요. 삼성동에 있는 서점에 갔다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을 발견했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야기였는데,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적혀있어요.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의 선택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글을 봤어요. 저는 그 글이 굉장히 놀라웠어요. 저는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생각했고, 제 선택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 책을 딱 읽는데 저보다 더 힘든 사람이 거기 있는 거예요. 저는 제가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수용소에서는 시체가 옆에 있어도 그 사람이 먹던 빵을 뺏어서 먹는 곳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자신의 빵을 나눠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아주 희박하지만. 99명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1명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인간에게 따뜻한 온정이 있다고 말할 가치가 있다는 거죠. 빅터 프랭클이 죽을 것 같이 힘든 순간에 아내가 환하게 웃는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렸어요. 그때를 회상했던 내용에 이런 문장이 적혀있어요. “사람을 살리는 건 사랑이다.” 사랑의 순간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말이 아주 좋았어요.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가 여러 어려움을 넘어서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사랑이었어요. 제 아들에 대한 사랑.
다만 제가 어릴 때 경험했던 길들여진 폭력으로 저도 아들을 대했던 거죠. 아들의 입장에서 저는 폭력적인 엄마였어요. 그렇지만 아들이 저를 도와줬어요. “사랑해요”라는 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만큼 부모도 자녀를 사랑하라고 주셨잖아요. 그런데 부모가 죄에 물들어 있어요. 서로를 판단하고 비난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서로 정죄하고 벌주고. 그건 인간의 권리가 아닌 거예요. 우리는 사랑해야 할 뿐인데. 세상의 학습된 사고방식으로 인해 상대방을 교정하려고만 하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 안에 선함이 있어요. 하나님이 주신 그런 선함을 아이들을 통해 볼 수 있어요. 예수님이 아이들을 사랑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제가 아동인권보호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런 저의 배경들이 있었죠.
제가 기업에서 교육을 많이 하지만 제 목적은 항상 아동인권에 있어요. 그분들은 대부분 부모이거나 잠재 부모예요. 저는 그분들이 자신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요. 그럼 이분들이 자녀와 대화할 때 서로의 욕구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예요. 기업에서 교육이 끝날 무렵 “회사에서도 도움이 되었지만 제 가족들도 너무 좋아졌어요.”라는 말을 하세요. 그럼 제 목적을 다 한 거예요.


비전과 기도제목

저는 ADHD와 틱이 있는 아이들이 있는 부모님들을 위해 기도해요. 저희 집에서 이런 분들과 함께 무료 모임을 하는데요. 매달 한 번씩 이분들을 모시고, 밤에 교육을 하게 됐어요. 아이를 아무리 사랑해도, 내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건 쉬워요. 하지만ADHD나 틱이 있는 아이들은 엄마의 불안감을 굉장히 강하게 만들어요. 불안해진 엄마는 아이들을 때리거나 협박을 할 수 있게 돼요. 일상보다 이렇게 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들을 위해서 저희가 기도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그분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게 저의 소명인 것 같고요.
요즘 학교 폭력이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저는 학교 폭력이 가정 폭력에서 온다고 확신해요. 어느 날 부모로부터 사랑받던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를 면도칼로 긋고 오지 않거든요. 학교 폭력이 생기면 가해 아이와 피해 아이가 만나 지도 못하게 해요. 이건 비극이거든요. 갈등은 두 사람이 용서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아이들이 정말 용서와 미안함을 경험할 수 있어요. 저는 이런 학교 폭력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계속 방법을 구상 중에 있어요.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도 집 안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두려움 속에서 맞고 있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그런 아이들은 주변의 관심 없이 발견될 수가 없어요. 세상에 그걸 알리고 그런 부모님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돕고 싶어요.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신 모습 그대로 회복할 수 있도록 통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 인터뷰 진행&정리 : 이음 작가
- 사진 : 이요셉 작가
- 인터뷰 장소 : 서초동 마랑코코
- 기획.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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