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수화가 석창우의 서재는 ‘일상의 공간’이다

석창우 화백의 서재는 ‘일상의 공간’이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주 공간이 바로 서재에요. 책들은 주로 그림 공부를 위한 고서적들이 많아요. 서재에서 그림도 그리고, 컴퓨터로 카페도 들어가서 회원 분들이랑 소통하고, 제가 좋아하는 무협만화도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서재는 ‘일상의 공간’인 것 같네요. 책은 주로 성경책을 봅니다. 예전에 성경책을 3번 반 정도 읽었는데 같은 내용이더라도 읽을 때마다 와 닿는 게 다르더라고요. 제 인생의 말씀이라고 생각되는 구절이 하나 있는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입니다. 그 말씀이 제 삶에 내려와 일상이 되니 상당히 좋더라고요.

범사에 감사하라

보통 전기 2만2900v 감전되면 양팔뿐만 아니라 양다리까지 나가게 되거든요. 근데 저는 팔만 없어지고, 발가락도 두 개 정도 다쳤지만 걸어 다니는 데는 지장 없게 다쳤어요. 그게 참 감사하더라고요. 두 번째로 감사한 건, 제가 전기 관련 일을 했을 당시 현장책임자였는데, 만약 제 밑에 있는 누군가가 다쳤으면 평생 한이 되었을 거예요. 차라리 내가 다친 게 잘 됐다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하게 하셨어요. 사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가 아니고선 인간적인 마음에서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죠. 근데 사람들은 자꾸 물어봐요. 하지 않아도 되는 걸 해서 밑에 있는 사람들이 안 미웠냐고. 전혀요. 사고 이후에도 열등감이나 고통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집사람도 중환자실에서부터 별일 아니라고 말하면서 긍정적으로 대해주었고, 저 또한 일하다 보면 다칠 수도 있다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시작하다 보니 이게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그리고 낙관으로 쓰는 구절도 몇 가지 있는데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아도 좋은 걸로 골라요. 방송에서는 성경 구절이 나오면 그 부분이 편집되는 경우가 많은데 전에 스타킹 출연했을 때 슈퍼주니어를 그리면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구절을 쓰기도 했어요. 아침마당에서도 성경구절을 넣었는데 그 때는 읽어주기도 했고요. 자꾸자꾸 시도를 하니까 되더라고요. (웃음) 종교적인 내용을 꺼리더라도 계속 요청을 하면 받아주는 곳이 있어요.

움직이는 동작의 구상

어렸을 때부터 무협소설을 많이 보았어요. 2011년도에 중국 절강성 TV에서 초대해서 한 번 갔었는데 무협 하는 사람의 포즈를 그리기도 했어요. 만화는 주로 인터넷으로 보는데, 옛날 건 다 봐서 한참 보다 보면 전에 봤던 작품들도 꽤 있어요. (웃음) 옛날 작가들이 그림도 잘 그리고 내용도 참 좋아요. 일반적인 사람들은 단순한 포즈이지만, 무협만화에서 나오는 포즈는 전부 움직이는 동작들이거든요. 계속 보고 있으면 작품을 구상하는데 도움이 되죠. 만약에 스포츠 선수들을 그릴 때에도 동영상이나 사진을 계속 봐요. 김연아 선수를 그린다고 하면 몇 달 동안 계속 동영상과 포즈를 봅니다. 심상으로 익히는 거죠. 동작에 대한 구상을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활자보다는 시각적인 매체를 좀 더 많이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소치장애인올림픽 폐막식 '2분 40초 퍼포먼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실사단이 나왔을 때 김연아의 ‘트리플 럿츠’ 장면을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이번에 소치에도 초청받게 되었어요. 그때 오셨던 분들이 상당히 감동을 하셨던 것 같아요. 이번 장애인올림픽 폐막식은 45억 관중의 지켜보는 큰 무대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떨리지는 않았어요. 근데 소치에서 선보일 작품은 원래 15분 정도 시간은 줘야 되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갈 때는 2분 40초 밖에 안 주는 거예요. 굉장히 시간이 촉박했죠. 리허설을 할 때도 도저히 그 시간 안에 그리지 못했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그림 작업할 때는 작업만 생각해요. 어떤 퍼포먼스를 할 때는 주변에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시간을 맞춰서 그림을 그릴 때 참 애매한 게 중간에 어떤 음악이 있으면 그 시간에도 맞춰야 하는데 집중해서 그리게 되면 음악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는 거예요. 그냥 저 혼자 할 때면 상관이 없는데 시간이 딱 짜여 있는 상황에서 그림을 그릴 때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아요. 시간도 없고, 음악도 맞추기 힘든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인데, 왠지 느낌이 내가 하면 불가능한데 하나님이 하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다 맡기기로 했어요. 어차피 저를 선택하셨으니까 하나님께서 책임져달라고. 그랬는데 심지어 예정시간보다 3초 빨리 끝나서 발 낙관도 원래 하나 찍는데 두 개 찍게 되었어요. 힘도 덜 들고. 그리고 큰 붓일수록 탄력이 별로 없는 붓이거든요. 근데 그때는 붓이 탄력이 있으면서 저절로 춤추는 것처럼 아주 잘 움직이더라고요. 저 혼자 출렁출렁하면서 막 움직이는 듯 했어요. 편안하게 그리고 왔죠. 원래 퍼포먼스를 하고 나면 몸 안에 있는 기를 몽땅 다 쓰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는 쉬어야 몸이 회복되는데, 소치에서는 작품이 끝났는데도 하나도 안 아프고 괜찮았어요. 이번에 하나님의 ‘기’ 를 반만 달라고 했는데, 반 더 주신 것 같아요.(웃음)

사실 2분 40초 안에 그리기엔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그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소치에 가기 전에 예배를 드릴 때 목사님께서 믿음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번 작품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나는 몸만 빌려드리는 거다’라고 생각했어요. 현지에서 반응도 대단했어요. 스텝들과 카메라 감독 또한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고 하더라고요. 끝나고 나오니까 사람들이 같이 사진 찍자고 하고, 어떤 외국인은 ‘짱‘이라는 한국말을 배워서 저한테 외치기도 했고요. 제 작품에서 어떤 생동감이 느껴진다고 하는데 팔이 없으니까 가능한 일이죠. 손가락, 손목, 팔꿈치 전부 없다 보니 몸을 움직여야 하잖아요.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정적이기보다는 생동감 있는 표현이 나오게 되는 거죠. 저는 정적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하고 그리는데도 살아있는 것처럼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손과 함께 30년, 손 없이 30년..

저는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어요. 어렸을 때는 그림 같은 건 관심도 없었어요. 공고, 공전, 공대를 다니면서 계속 전기 공부를 했었고요. 고등학교 때는 낮에 공부하고 밤에 일하는 생활이었고, 대학 다닐 때는 낮에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그랬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일과 공부를 병행했었죠. 정말 부지런하게 살았던 거 같아요. 자격증도 5개 정도 따고 했는데 사실 일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워낙 먹고 살기 힘드니까 일을 해야만 했었던 거죠. 신앙을 갖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션스쿨을 다니면서부터예요. 신앙적인 궁금증 보다는 우연한 계기로 다니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해서 딸 낳고, 아들 낳은 지 한 달 반 만에 감전 사고를 당했어요. 1984년 2만 볼트가 넘는 전류에 감전되면서 … 1년 반 동안 병원에 입원해 12차례 대수술을 받았어요. 결국 양팔과 발가락 일부를 잃었죠. 다치고 나서부터 뭔가 와 닿는 게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어요. 돌아보니 손과 함께 30년 살고, 손 없이 30년 살고 있네요.

하나님의 프로그램으로 살아온 30년

막내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제가 사고를 당했어요. 아들이 네 살이 되던 어느 날 저에게 그림을 그려달라 더군요. 그때 한나절 땀을 흘리며 노트에 그려준 그림이 ‘참새’ 였어요. 그 그림을 본 처가식구들도 감탄하면서 그림을 그려볼 것을 권했죠. 바로 화실로 가서 가르침을 구했으나 아무데서도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두 팔이 없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겠냐는 거죠. 그러던 중 딱 한 곳 받아들여 준 곳이 서예 분야였어요. 여태명 원광대 교수님의 화실로 찾아가 제가 포기할 때까지만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받아주셨어요. 그 후로는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 가르침을 줄 사람들을 만나도록 해주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 ‘하나님의 프로그램’ 안에 있는 것 같아요.

한국적인 소재를 찾아서



그림을 공부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찾고 싶었어요. 근데 한국적인 게 뭔지 생각보다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서예 공부를 하면서 제 작품을 통해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싶어 책을 뒤졌었는데 한신대학교 김상일 교수님의 <한철학과 퍼지논리>라는 논문을 보게 됐어요. 논문을 보니 고려로 내려오는 철학, 불교, 유교로부터 와서 다시 한국화된 철학, 서양에서 와서 한국화된 철학 등 한철학을 분류를 해놓으신 내용이 있었어요. 책을 보면서 과연 나에게 맞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일까 찾기 시작했어요. 이 한철학을 내가 하는 작업에 어떻게 접목할까 찾던 중, 어느 날 성경 구절을 한글로 쓰다가 어쩌면 한글이 가장 한국적이지 않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문자 추상을 한글로 했었어요. 서예를 하면서 누드 크로키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자세히 보니 누드 자체가 삼라만상을 다 표현하고 있더라고요.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움직이면 동물, 나무형상, 산수도 되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바깥 형상만 다 그리고 있는데, 나는 서예를 했으니까 붓을 일필로 해서 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한 5년 동안은 연필과 목탄 같은 걸로 그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붓으로 그리게 된 거죠. 그랬더니 생각했던 게 바로 나오더라고요. 사실 팔을 다치면서 낙심을 많이 하곤 했는데 이것도 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계획인 것 같아요. 30살에 팔을 가져가시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신 거죠.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동참하세요

저는 외로움과 고독 같은 건 없었어요. 그 자체가 즐겁고 매일 감사한 생활이었어요.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원천을 찾자면 하나님이죠. 사실 전 지금도 제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하나님께서 저를 선택해주신 것 같아요. 사람도 보면 ‘이 사람 참 괜찮다’ 싶으면 관심을 두고 끝까지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하나님도 저한테 그런 관심을 쏟고 계신 것 같아요. 처음부터 그런 관심으로 저를 지켜보고 계셨는데 제가 자꾸 딴짓을 하니까 팔을 가져가시고, 곁에서 계속 후원을 해주시는 거죠. 사실 팔이 있었던 30년은 완전 바닥이었어요.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전부 다요. 근데 사고 이후 그림을 접하면서부터 아주 더디지만, 서서히 올라오도록 해주신 듯해요. 그래서 전 사람들한테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동참 해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네가 아무리 많은 좋은 계획을 세우더라도 사람의 계획은 한계가 있다. 단지 네가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동참하기 시작하면 네가 신경을 쓸 게 없다.’라고 말이죠. 저 같은 경우도 모델을 뭘 그릴까 고민할 수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요. 지금 주는 모델을 그리고 나면 그 다음 모델이 나타나요. 그 모델을 그리고 나면 또 나타나고. 다른 사람들은 뭘 그리고, 어떻게 하고 계획을 세우는 데 전 그런 게 없거든요. 초기에는 일반적인, 소위 세속적인 계획을 세웠죠. 예를들면, 서예를 시작할 때 다른 사람들이 2-3시간 하길래 저는 5배 정도 해서 5년 안에 일반 사람들의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3년 정도 되니까 일반 공모전에 입선하기 시작하면서 비슷하게 됐어요. 내가 머리 아프게 신경 쓰면서 계획 세우는 것보다, 하나님 하라고 하시는 데로 자연스럽게 순종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버리니까 매달릴 필요도 없고, 편해요. 그림을 그릴 때도 고민이 없어야 해요. 피사체를 보면 그걸 그대로 표현하는 거죠. 내 생각이 없어요. 그냥 보이는 걸 직관적으로 딱 표현해내는 거죠. 생각이 많게 되면, 그림에도 많은 생각이 묻어나요.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때를 따라 돕는 손길

돌아보면 지금이 제가 있기까지 정말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어요. 초창기 때부터 시작하자면 처형이에요. 사고가 난 후 1년 정도 휴양 차 전주에 내려가 있을 때 처형이 제 그림을 보고 제대로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시작하게 됐거든요.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할 때도 혼자 다닐 때가 많았는데 처형이 수발을 다 해줬어요. 여태명 선생님께 배우는 몇 년 동안 모든걸 다 해주었어요. 여태명 선생님은 원광대학교 서예학과 교수님이세요. 그분의 가르침은 남달랐던 거 같아요. 일반 사람들은 오직 자기 것만 하라고 하는데, 여태명 선생님은 좋은 게 있으면 배우라고 권하시는 분이셨어요. 크로키를 하게 된 것도 서울에서 현대미술관 이론 강의가 있는데 배우러 다니던 중에 작업하는 분과 만나게 되었거든요. 일반 사람들 같은 경우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여태명 선생님은 개방적이면서 자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주신 분이셨어요. 그런 분께 배우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지더라고요. 제가 생각한대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니 다양한 가능성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죠.

현대미술관 특강을 듣던 중에 누드크로키 화가인 김영자 선생님을 만나 크로키를 배우게 됐어요. 처음에 서예 하는 분들과 같이 갔었는데 전부 여자 화가만 계시더라고요. 같이 갔던 두 분은 누드를 보니 얼굴이 붉어지면서 못하겠다고 떠나셨고요. 전 하고 싶긴 했으나 혼자서 생리적인 현상을 다 처리할 수 없는 게 문제가 되었어요. 이러한 고충을 김영자 선생님께 말씀 드렸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이 다 해주시겠다고 하시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인 창작의 세계로 들어가게 됐어요. 그리고 김태정 선생님이라고 현대미술관에서 강의하신 분인데, 그분이 이론적인 부분들을 가르쳐주겠다고 하시면서 약 3년 정도 본인 집으로 초대해주셔서 토요일 마다 배우곤 했어요. 사실 가장 큰 만남의 축복은 집사람이죠. 처음에서부터 저를 편안하게 해주면서 돈 버는 건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지금 하는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었어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항상 힘을 그쪽으로 다 빼고 하다 보면 정작 예술은 못 하거든요. 그런 부분을 배려해준 게 집사람이니 어떻게 보면 가장 큰 공헌자이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돕는 손길들을 다 보내주시는 것 같아요. 10여 년 전인데 어떤 분이 자기가 저의 팬을 하고 싶다고 하길래 그럼 1번 팬 하시라고 했어요. 그래서 ‘1번 팬‘이라고 카페에 글을 올리니 어떤 사람이 저게 뭐냐고 물어요. 그래서 팬 한다고 해서 1번 줬다고 했더니, 그럼 자기는 2번을 하겠대요. (웃음) 그 뒤로 3번, 4번 이어졌고 팬 분들과는 가끔 비공식적으로 뵙기도 했었어요. 근데 제 기억이 단순하다 보니 몇 사람 이상부터는 기억을 하나도 못하는 거예요. 뒤이어서 쭉 번호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 어디 가셨는지 궁금하네요. (웃음) 그 후로도 수많은 자원봉사자 분을 통해 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기도제목

9월에 열리는 개인전을 위해서 기도 부탁 드립니다. 저는 나날이 즐겁고 감사한 삶이에요. 다른 소외된 사람들 특히, 요즘에는 일반 정상인이라도 자기가 소외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좀 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도록 기도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 진행&정리 : 이일권 작가
- 사진 : 김도태 작가
- 인터뷰 장소 : 대방동 작업실
- 기획.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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