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디자이너의 서재는 ‘소통’이다

디자이너 김범준의 서재는 ‘소통’이다

시각디자인을 영어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Visual Communication)이라고 해요. 디자인도 소통을 위한 수단인 거죠. 단지 디자인이 예쁜가 안 예쁜가를 따지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디자인은 소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아서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방법으로 표현하는 게 필요하죠. 저는 어떤 메시지를 담을 것인가를 더 많이 연구하게 돼요.
소통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배려심이 있어야 해요. 내공 있는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죠. 배려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연민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까,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감성적 집중과 상상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소설과 영화 또는 공연이나 음악과 같은 문화생활을 통해 감성적 집중력과 상상력을 훈련하고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교회 로고로 iF Design Award 수상

iF Design Award에서 수상한 성만교회 로고에는 믿음, 용기, 순종, 결단력, 섬김, 순수 여섯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어요. 크리스천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이 떠오를 때마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둔 내용이죠. 책상에 앉아서 뽑아낸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이미 제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표현했을 뿐이에요.
디자이너라면 iF Design Award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이번에 상을 받게 된 성만교회 로고는 10년 전에 이미 만들었어요. 작년 4~5월 즘에 담임목사님과 얘기하다가 성만교회의 전반적인 디자인을 리뉴얼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어요. 로고를 서포트해 주는 그래픽 모티브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결정했던 게, 예수님을 그래픽 모티브로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예수님의 캐릭터가 교회 봉투든, 교회 버스든 이곳 저곳에 표현되어서 예수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을 공감하게 하자는 목표를 세워 작업했어요. 그동안 많은 작업을 했지만 어떤 것보다 각별했던 작업이었고 교회의 브랜드가 수상하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가운데 일단 출품하게 됐죠.
제가 대표로 있는 디자인 회사 ‘와이더웨이크(wide awake)’란 이름으로 수상했어요. ‘와이더웨이크’란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페이스북도 만들어 기독교 관련 디자인을 하면서 얻은 기획이나 깨달음, 시행착오, 노하우 등을 공유하고 있어요. 교회 디자인을 하면서 저 혼자 할 것이 아니라 제가 누리는 행복을 함께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사실은 혼자 작업하는 게 가장 편하긴 해요. 하지만 혼자 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iF Design Award에서 수상을 하면서 이란 잡지에 기사가 났는데 같이 작업한 교회 청년들의 이름도 함께 넣었죠. 기사에 자신의 이름이 나오니 좋아하더라고요. 더 열심히 함께 작업하는 원동력이 되었어요(웃음), 혼자 작업하는 게 편한 것도 사실이지만 협업하는 노하우가 쌓이면 그 가운데 분명히 더 큰 열매가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개척교회를 섬기는 디자인

중학교 때부터 로고에 관심이 많았어요. 성만교회 중등부 시절에도 아이들이랑 찬양단을 꾸려서 이름을 만들고 로고를 만들었어요. ‘작은 소리’라는 이름의 초성을 딴 로고를 스케치해서 금은방에 찾아가서 은으로 배지를 만들어 달라고 했죠. 그걸 다 같이 차고 다녔어요.
뉴질랜드에서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뉴질랜드의 봅슬레이 내셔널 팀에 대한 디자인 공모가 와서 제가 로고를 디자인해서 출품했어요. 당선이 됐죠. 어떤 과제가 떨어지면 항상 로고, 브랜드에 대한 작업을 해서 제출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간판(Sign) 쪽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로고와 관련된 간판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3년 정도 그쪽 회사를 다니다 브랜딩 컨설팅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7년 정도 일하게 됐어요. 야근도 많고, 점점 세월이 흐르면서 대리, 팀장, 실장 직함을 달면서 책임감에 대한 압박이 커지더군요. 프로젝트를 해결해야 하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 했어요. 그만한 능력이 안 되는데 그걸 해결해야 할 때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죠. 때로는 혼자 울기도 하며 힘들었어요. 하지만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게 하나님의 축복이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감사의 표시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그러다 개척교회, 지인들과 섬기는 교회를 위해서 무료로 힘닿는 데까지 디자인으로 봉사하며 살겠다고 하나님과 약속을 했죠. 10년 전, 한창 디자인 일을 할 때였죠. 그러고 나서 회사 일에, 교회 디자인까지 굉장히 스트레스도 많고 갈등도 많았어요. 뜻은 좋았지만 저의 한계도 있었죠. 그때마다 어떻게든 이겨냈고, 그렇게 디자인으로 섬길 수 있었던 일은 결과가 너무나 좋았어요. 일을 부탁했던 분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결과물도 너무 아름답고, 모든 일이 만족감과 행복감으로 마무리가 됐어요. 그런 게 경험으로 쌓여가니까 바쁠 때 디자인으로 섬겨야 하는 일이 생기면 스케줄을 보면서 어떻게 하지 하며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니야 이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야’ 하면서 이제는 스트레스받지 않고 해나갈 수 있을 만큼 훈련이 된 것 같아요. 그렇게 디자인한 게 대략 100개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갈등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

중학교 때 찬양예배를 드리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구나 가슴 깊이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울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 창피한 거예요. 그런 이중적인 마음이 제 안에 있었어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대학교를 다녔는데 한인교회에서 2년 정도를 섬겼어요. 그곳에서 크리스천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구나를 배웠죠.
대학교 다니면서는 과제와 교회 일의 갈등이 있었고, 한국에서는 직장 일과 교회 일의 갈등이 있었어요. 갈등이라는 게, 교회도 조직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서로 상처 주는 일이 있을 수 있거든요. 저 또한 교회 일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요. 어떤 디자인을 할 때 너무 쉽게 무산이 된다든지, 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은 디자인이 쉽게 나온다고 생각하시기도 하고요.
제 사정을 몰라준다는 생각이 들 때 상처를 받았어요. 그럴 때마다 사람을 보고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하자. 그런 마음으로 버티고 버텼죠.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디자인은 저에게 너무 즐거운 일이었거든요. 디자인이 카탈로그나, 현수막으로 걸렸을 때의 뿌듯함이 저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리더로 섬기는 찬양팀 자매의 아버님이 사업을 하시다가 목회를 하시게 되셨어요. 자매가 저에게 어렵게 아버님 교회의 로고, 간판을 부탁했죠. 흔쾌히 승낙하고 담임목사님을 만나러 카페에 갔는데 분위기가 싸늘한 거예요. 알고 보니 딸의 부탁으로 목사님께서 그 자리에 오신 거예요.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도 부담이 있으셨고, ‘디자인 이걸 꼭 해야 해?’ 하는 마음이 있으셨던 거죠. 자매가 저에게 아버님에게 디자인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달라는 거예요. 며칠 후 제가 디자인해서 제안을 하니 목사님께서 감동을 받으셨어요. 나중에 말씀하시길 로고를 딱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오셨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그 말을 듣고 너무 감사했어요. 하나님께서 이런 과정을 통해 개척교회에 도움이 되고, 저에게도 이런 행복감을 주셨구나. 또 이런 좋은 관계가 생기니 이런 일들이 너무 감사했어요.



교회를 섬기면서 쌓인 실력

디자인을 제안했는데 클라이언트가 거절하면 다시 제안을 해야 해요. 그런 어려움을 겪고 난 후 돌아보면 내가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디자인을 잘하는 스킬도 중요하지만 상대와 잘 소통해서 디자인을 잘 팔 수 있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거든요. 브랜드나 로고는 그 회사의 대표를 만나요. 로고는 그 회사의 얼굴이기 때문에 대부분 대표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요. 산전수전을 겪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 내공이 장난이 아니에요. 그분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그분의 내공 이상이 되지 않고서는 쉽지가 않아요. 일을 하며 낙심도 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많았죠.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정도가 없다고 생각해요. 많이 만나봐야 하고, 많이 디자인을 하면 디자인 실력이 늘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지 노하우가 생기거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만교회에 감사하는 것은 교회를 섬기면서 제 의지와 상관없이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교회의 여러 일을 하면서 다양한 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디자인을 했던 것이 저의 능력으로 쌓이고 그러면서 지금의 제 실력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창작의 시작, 언어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나의 언어로 작성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말씀을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시 나의 언어로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어떻게 묵상한 것을 적용할 것인가를 적는 것이죠. 저는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얻을 때 보다 일상에서 글을 쓰면서 더 많은 걸 얻게 돼요. 생활을 하다 문득 깨달음이 있으면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둬요. 그렇게 내가 적어놓았을 때 내 잠재의식 속 어딘가에 그 내용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죠. 작업을 할 때 잠재의식에 있던 내용들이 융합이 되어서 또 다른 새로운 단어가 떠오르거나,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디자이너면 더욱더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도, 말씀 결국 언어거든요. 저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데요. 그 말은 언어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런 성품과 능력을 인간이 받아서 창조되었다고 생각해요. 언어는 소통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 에너지가 있어.”하는 경우처럼 언어에도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언어에 대한 능력을 알고, 언어를 디자인에 어떻게 하면 잘 녹아 들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언어학자이신 이어령 선생님을 참 좋아해요. 언어학자의 입장에서 얘기하시는 걸 보면 감동을 받아요. 언어라는 것에 대해 공부하면 성경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해요. 이어령 선생님의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책에는 이런 설명이 적혀있어요. 성경에 빵이라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그런 것을 얘기하면서 왜 이런 단어를 쓰게 되었는지 쉽게 설명해주는 책인데 재미있게 읽었어요. 성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준 책이었죠.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작가가 어떤 영화를 봤을 때, 누군가와 대화했을 때 느꼈던 소소한 것을 자기만의 언어로 적은 에세이 책이에요. 디자인하면서 관찰력이 중요하거든요. 이 책에 “자세히 보면 다른 게 보여”라는 부분이 있는데 평소에 관찰력이 높은 사람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또 다른 시각으로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신앙에 있어서도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라면 어떤 것을 기뻐하실까

10년 넘게 디자인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4년 전쯤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게 됐어요. 디자인과 관계없는 건축자재 회사 일이었죠. 저는 디자인이란 달란트가 있기 때문에 그걸로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었어요. 디자인 회사를 나와서 아버지 회사에서 아버지 일을 한다는 것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죠. 그래서 계속 아버지의 콜을 거절했어요. 제 꿈을 이루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남들의 시선도 싫었죠. 그런데 하나님이라면 어떤 것을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요한 결정이나 판단을 할 때는 무엇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일까를 생각하고 깨닫게 되면 그렇게 해야 해요. 그런데 그곳에 가서 아버지를 도와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결정하고 나니 제 마음이 평안했어요. 외부에서 저를 바라보는 시선, 디자인을 포기한다는 것에 대한 시선도 두렵지 않았어요. 좋아서 하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마 그럼 안 하느니만 못해.” 그 말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 가운데서도 이걸 이겨내야 하나님이 수고했다 칭찬해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이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아버지 회사 일을 돕고, 성만교회 디자인 일을 하면서 iF Design Award에서 상을 받게 됐죠. 덕분에 아버지도 디자인 일도 계속하라고 동의해주셨어요.



비전과 기도 제목

얼마 전 찬양예배 가운데 제 안에 뜨거움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엄청 크다는 걸 깨닫게 하셨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제 삶의 패턴 안에서 움직이는 그런 삶이었거든요. 이겨내야지 그러면서 살았는데 찬양예배 속에서 뜨거움이 생기는 거예요. 그 뜨거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뜨거움이 있기 때문에 누리는 평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거든요.
아버님 회사에서도 직원들과 어떻게 하면 잘 소통해서 이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지 기도하고 있어요. 크리스천인 내가 어떻게 그들과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주시는 것 같아요. 크리스천의 삶이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이들을 어떻게 배려할 것 인가에 대해서 노력하고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와이더웨이크도 큰 디자인 회사로 키워서 내 직원들과 함께 멋진 디자인을 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하지만 아버님 회사와 와이더웨이크 두 개를 이끌고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어요. 지금은 제가 혼자 하고 있지만 한 명의 직원이라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죠. 고민 끝에 와이더웨이크의 수익금을 헌금하거나 저를 위해 쓰지 않겠습니다 하고 하나님과 약속했어요. 그렇게 운영하고 있어요. 이 회사는 하나님이 일감을 주셔야 하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하세요 하고 맡기게 되더라고요.
아버님께서 아직 교회를 안다니시고 예수님을 모르세요. 아버님이 구원을 받으시는 게 제 기도제목이에요. 아버지께서 와이더웨이크에 대해서도 이해해주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제가 초심을 잃지 않고, 와이더웨이크가 디자인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용될 수 있는 그런 디자인 회사로 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인터뷰 진행&정리 : 이음 작가
- 사진 : 이요셉 작가
- 인터뷰 장소 : 카페 본
- 기획.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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