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한성수 작가의 서재는 ‘작업실’이다

조각가 한성수 작가의 서재는 ‘작업실’이다.

젊은 시절부터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진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작품의 재료가 될 수 있지요. 그 중 제일 좋아하는 건 주물입니다. 돌이나 나무는 깎아서 형태를 만들어 가지만 주물은 흙(점토)을 붙여가면서 형상을 만들고 석고를 떠서 주물로 바꾸는 과정을 거치지요.
저는 작업실에서 흙을 만지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흙이 너무 질으면 손으로 주물러 줘야해요. 진흙은 손으로 주무르면 손의 열이 습기를 날려 보내서 최적화된 상태가 됩니다. 흙은 너무 딱딱해도 안 되고, 너무 질어도 안 되고, 적절하게 수분이 섞여서 다져졌을 때 작품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상태가 되지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그렇게 너무 딱딱하지도 질지도 않게 훈련되었을 때 하나님이 무엇이든 만드실 수 있는 좋은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몸과 흙이 일체가 되어서 흙이 적절하게 반죽되면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어요. 아주 강한 뼈는 뼈답게, 살은 살답게 표현 할 수 있는 게 흙이지요. 흙은 질감을 다양하게 표현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흙을 최적의 상태가 되게 하려면 작가의 정과 성이 들어가야 해요.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말씀이 있듯이 사람도 숙달이 되면 흙으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데 하나님은 얼마나 자유자재로 사람을 만드실 수 있었을까요. 작업실에서 작품을 하며 말씀과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작품에 대한 고민

작품을 만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 이란 작품명을 자주 사용합니다. 개인전 때 사용했던 작품의 이름 중 하나가 ‘우상의 침묵’ 시리즈였어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우상의 개념이 다른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우상의 침묵 가운데 동일하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담아 만든 작품이었지요.



대구지하철 역에 조형물을 만들었을 때는 공공미술이니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보기에는 마치 사람 셋이 모인 형체 가운데 물방울 모양이 담긴 작품이지요. 저는 작품을 만들며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고 그 안의 보혈을 떠올렸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저 사람 셋이 모였다고 볼 수 있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볼 수도 있지요. 하지만 동일하게 그 안에는 주님의 보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을 만들다 보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형상을 만들 있을 만큼 내가 영성이 있나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작업을 할 때가 많아요. 제가 가진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는 능력과 하나님을 어떻게 결합해서 어떻게 영성이 스며든 작품을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이 일이 쉽지는 않지만 작품 안에는 주님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최고의 작품, 가정

최근에 「남편과 아버지」란 책을 읽었어요. 하나님을 믿는 가정의 남편과 아버지와 그렇지 않은 집안의 남편과 아버지와는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또 다른 부분이 있잖아요. 하나님을 믿는 가정의 남편과 아버지는 “왕 같은 제사장”인데 아버지가 제사장 역할을 못하면 가정에서 물질만 주는 아버지로 끝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남편이라면 아내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하는지, 자녀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에요.
제가 우리 또래에 비해 가정을 조금 늦게 가졌어요. 작품 활동과 가정을 양립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결혼할 생각을 안 했지요. 그러다 서른 살에 아내를 만나 이듬 해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유지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그만 둔 후 대입 미술학원을 맨손으로 시작했지요. 생활의 기반이 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다 정리하고 평생 작품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일을 하다 작품 생각이 나면 만약 가정을 안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어요. 그런 생각이 들면 아내나 자녀 앞에서 죄스러워졌지요. 경제적인 부분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사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결심했던 대로 93년도에 예술의 전당에서 첫 개인 전시를 했지요. 그 후로 감사하게도 기회가 닿아서 대학 교수도 하고 97년도부터 공공건물에 세우는 조형물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98년도 개인전 서문에 이렇게 쓴 내용이 있어요. “나의 가장 훌륭한 작품은 가정이다.” 그만큼 가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아들 둘이 잘 자라주었습니다.

순종이란 무엇인가를 정리해 준 책

얼마 전 아들이 선물해 준 「완전한 순종」을 다시 읽었습니다. 순종한다고 해도 우리 안에 우상이 있기에 완전하게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척 한 게 많았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네요. 순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정리해 볼 수 있게 도와준 책입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게 순종인 듯합니다.
제 인생의 순종을 떠올려 보자면 예전에 주일학교 교사를 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조형물 제작 주문이 여러 개가 들어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다 성사되었다고 생각하고 이제 2~3년 동안 경제적인 걱정 없이 지내도 되겠구나 안도했는데 계약이 다 꺾였어요. 이렇게 하나도 안 되게 막으시나 하는 마음에 너무 좌절이 되고 힘이 안 나는 거예요. 주일학교 선생도 못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함께 하시던 선생님이 그래도 같이 하자고 권유 하시더군요. ‘에이 모르겠다. 하나님께 맡기고 그냥 섬겨야겠다.’ 하면서 계속 교사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다음 해에 제가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지난해에 성사되지 못했던 스케일만큼의 일을 하나님께서 하게 해주시더군요. 신기했어요. 내가 굉장히 애썼고, 다 된 듯했는데 안 되었고, 내가 애쓰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도 하나님이 되게 해 주셨지요. 그게 순종의 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연이은 죽음

초등학교부터 다른 건 몰라도 미술을 하면서는 밤을 새웠어요. 그러다 재수를 하면서 폐병(결핵)에 걸렸지요. 당시에는 폐병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어요. 아직 젊은 나이인데 얼마 못 살겠구나 하는 생각에 크게 좌절했지요. 짧은 인생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럼 내가 좋아하는 걸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화실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반대를 하니 약값을 줄여서 화실비를 내며 비밀로 다녔지요. 서너달 공부해 미대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 몇 달 후 입대를 위한 신검 통지서를 받고, 신체검사를 했는데 결핵이 거의 다 나았답니다. 폐병도 이겨내고 군에 입대해서 몸도 근육으로 다져졌으니 사회에 나와서 자신이 충만했지요. 교만해지기 시작하면서 하나님도 잊고, 교회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이 교회 장로님이셨어요. 아버님께서 청년부 수련회에서 섬기시고 주무시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7남매 중에서 저만 교회를 안 다녔는데 아버님께서 생전에 “성수만 교회다니면 된다”고 하시면서 때론 강압적으로, 때론 새벽 1시에 작정 기도를 하시는 등 너무 애를 쓰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제 고집을 못 겪으셨지요. 부모님 다니시는 교회에서 한시간 남짓 예배드리는 척 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거짓 신앙으로 부모님을 속이는게 안되더군요.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마디를 남기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하니 “성수가 예수님 믿어야 한다”고 하셨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버님이 93년도에 소천하시고 94년도에 아내와 함께 사랑의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다 시집 온 아내는 이미 저보다 믿음이 깊어졌고 제가 교회에 정착하는데 많은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가까운 이들이 6개월 사이에 연달아 죽었어요. 아버님에 이어 존경하는 선생님, 가장 친한 친구와 후배, 이렇게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한두 달 간격으로 줄줄이 겪으면서 제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그 때는 병명도 생소한 공황장애와 허혈성 심장질환, 부정맥으로 젊은 나이인 마흔에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지요.




두려움에서 건져 치료하신 하나님

심장도 불규칙하게 뛰고, 예배 시간에 어지러워 찬송가도 제대로 못했어요.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어지럽고 숨이 막혔습니다. 집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어서 집사람이 저를 데리러 오기도 했어요.
어느 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심장이 심하게 계속 불규칙하게 뛰어 곧 멈춰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오더군요. 그때 하나님께 정말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제가 잠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잠들면 영원히 눈을 감을 것 같습니다. 제가 내일 아침에 눈을 뜨게 해주세요.” 아들 둘이 초등학생이었던 때라 아빠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니 눈물이 흐르더군요. 하나님이 저를 찾아오시는 방법이 병을 통해서 라는 걸 나중에는 알았어요. 당시에는 그저 고통스럽기만 했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축복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20년 동안 저를 진료 하셨던 의사선생님이 올 봄에 저에게 축하한다고 하시더군요. 병이 진전이 안됐다고 해요. 공황장애는 제자훈련을 하며 이미 오래 전에 나았는데 진료했던 심장병마저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처음 진료를 갔을 때 곧 심장 시술을 할 수도 얘기를 들었는데요. 스무살에 걸린 폐결핵을 현대의학과 내 의지로 이겼다고 생각해서 교만 했지만 이번에는 현대의학과 제 의지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걸 느낍니다.

비전과 기도제목

저는 작가라고 특별하게 세상의 보통 사람들과 분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마음에 있는 것을 감성과 학습을 통해 나름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기술과 능력을 갖게 된 사람이지요. 어떤 분은 창의적인 생각을 사업장에서 표현하기도 하고, 무대에서 표현하기도 하고, 소리로, 글로 표현하기도 하지요.
작가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작품을 하지 사회와 별개로 살며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사회에 모범이 되어야 하고 사회를 이끌 수 있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이란 그런 작가의 정신이 담겨있고, 그런 정신을 작품으로 잘 표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내년 3월에 스위스 갤러리에서 초대해 개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좋은 작품을 만들면서 교회와 나라와 가정과 사회에 헌신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제 기도제목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주님 안에서 순종하며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몸도 건강해야겠지요.
가정적으로는 큰아들이 곧 결혼을 합니다. 마지막까지 큰 어려움 없이 아버지로서 자녀 둘에게 책임을 다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무엇보다도 아들 둘에게 믿음을 전수해 줄 수 있는 그런 아버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인터뷰 진행&정리 : 이음 작가
- 사진 : 이요셉 작가
- 인터뷰 장소 : 서초 라브리 카페
- 기획.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공감 캠페인

내 마음의 서재는 "희망을
밝히는 따뜻한 북스토리 입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