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쇼트트랙선수 김동성의 서재는 “ 사람”이다.

전 쇼트트랙 선수, 김동성의 서재는 “사람”이다.

저는 책 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런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인생을 배워요. 경찰서, 공무원, 영업사원, 의사, 대기업 임원 같은 분들에게 강연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강연장에서 이런 분들을 만나서 질문을 받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제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보고 배우게 되죠. 그분들이 일하시는 모습과 그분들의 질문과 대답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정말 다 다르다’란 생각을 하게 돼요. 한 번은 강릉에서 강연이 끝나고 한 분이 저에게 오셔서 책을 선물로 주셨어요.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란 책을 쓰신 윤정희 사모님이셨지요. 어느 광고에서 뵌 적이 있었는데 저는 그냥 아이를 많이 낳아서 키우시는 분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10남매를 입양해서 키우고 계시더라고요. 그중 남자아이가 스케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내 자식이 아닌데도 어떻게 저렇게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사랑의 위대함이 느껴지면서 존경스러웠어요. 제가 가진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세계 대회 우승을 위한 조건

10대 그러니까 열여덟, 고3 때 올림픽 금메달을 땄어요. 어릴 적부터 쇼트트랙을 하면서 제가 느낀 매력은 스피드도 있지만 경기 내에서 상대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묘미도 있어요. 월등히 실력이 좋은 선수가 경기를 리드하지요. 얼음판에서 한 두 바퀴 정도만 같이 돌면서 테크닉이나 코너 돌아가는 것만 봐도 딱 나와요. 우리가 운전할 때 초보운전이라고 안 붙여도 초보운전인지 아닌지 보이듯이. 그런 것처럼 얼음판에서도 이 선수의 실력이 어느 정도라는 게 느껴져요. 얼음판 위에서 놀림을 당하는 쪽이 되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가 되었죠.
세계 상위권 선수들은 테크닉이 다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거기서 1, 2등을 가르는 것은 체력이거든요.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체력으로는 절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할 수 없어요. 한계를 뛰어넘는 훈련이 있어야 외국 선수들과 상대했을 때 그 벽을 넘을 수 있거든요. 대한민국 선수들이 체격이나 체력적으로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니에요. 그것을 넘기 위해서는 외국 선수들이 열 번 훈련할 때 한국 선수들은 백 번, 천 번 훈련해야 만들어지는 근육이 필요해요. 그만한 노력을 하고 고통을 이겨내야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고 생각해요.



1등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고통

사람들은 지난번에도 1등 했으니 또 1등 하겠지 하지만 늘 부상이 따르는 게 스포츠 거든요. 저도 부상이 많았어요. 98년 무릎 연골 수술, 99년 두 번째 연골 수술, 2000년도에는 팔을 다쳤고 2002년도에 세 번째 연골 수술로 지금은 연골의 85퍼센트가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한계를 넘기 위해 체력적인 훈련을 많이 했어요. 4월 중순에 무릎 수술을 하고는 5월 초에 선수촌에 들어간 적도 있었어요. 다음10월 중순에 있을 국제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죠. 5개월 동안 재활이 아닌 트레이닝을 하면서 국제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해야 했어요. 무릎도 안 구부러지는 상황에서 운동을 해야 했죠. 많은 분들이1등을 기대하는 상황이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어요. 1등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고통스럽기도 했죠. 그렇지만 운동하면서 이왕 할 거면 남들이 하지 못한 성적이라던가, 남들이 하지 못한 획을 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반적인 최고가 아니라, 사람들이 “쟤는 괴물이야” 할 정도의 기량으로 월등히 이기고 싶었죠.

슬럼프는 금메달을 낳기 위한 진통

저는 운동하면서 슬럼프가 없었어요. 보통 운동선수가 부상이 있을 때를 슬럼프라고 하죠. 그렇다면 저는 매년 슬럼프였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슬럼프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한 단계 올라가기 위한 고통이라고 생각했죠. 아이를 낳기 위해 산모가 진통을 겪어야 아기를 낳잖아요. 제가 금메달을 따고 나서 그런 고통, 진통이 없었으면 계속 발전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슬럼프가 왔을 때 ‘아, 힘들어’하고 내려놓는 게 아니라 힘든 게 왔으니 내가 더 열심히 해서 넘어서야지 하고 넘어서는 순간, 내가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죠. 힘든 걸 넘어서면 저는 이전에 있던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죠. 좀 더 성장된 사람이 되는 거죠. 슬럼프를 두려워하고 평온한 삶을 원한다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더 위대한 길

1998년도 시합 당일인데 무릎이 많이 부어있었어요. 연골판이 찢어진 상태였으니까요. 그때 처음으로 기도를 해봤어요. 메달, 아무거나 주시면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그때 금메달을 받았어요. 그리고는 기도를 새까맣게 잊고 지냈죠.
2002년 동계올림픽에서 체력이 월등히 좋았어요. 어머니가 늘 기도해주시니까 “엄마, 나 기도해줘.” 이렇게 기도만 부탁했었죠. 그런데 그때 오너 사건으로 1등을 했음에도 메달을 빼앗겼어요.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보니 이제는 하나님께서 왜 메달을 가지고 가셨는지도 알겠고, 정말 힘든 상황에서 드렸던 기도를 들어주신 이유도 알겠더라고요.
하나님께서 더 위대한 길을 예비해 주시기 위해 메달을 넘겨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2002년도에 메달을 땄다면 저는 단지 금메달리스트 김동성이라고만 기억됐을 거예요. 하지만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를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편파 판정으로 많은 분들이 기억해 주세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기업에서, 중고등학교, 대학생들에게도 강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간증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어요. 은퇴 후에 제가 다른 길을 갈 수 있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런 간증의 자리,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음판에서 소통을 위한 팀워크

쇼트트랙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는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얼음판 내에서 선수들 간의 소통, 감독 선생님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팀워크는 그 순간 깨진다고 생각해요. 얼음판에 들어가기 전, 후배들에게 부담감보다는 긴장감을 풀어주는 얘기를 많이 했죠. 형만 믿고 타라는 얘기를 했어요. 긴장하면 시야가 넓어지지 않거든요. 계주 선수는 시야가 좁아지면 안 돼요. 작전을 계속 봐야 하고, 누가 실수하면 가서 터치를 해줘야 하는데 얼음판에서 내 발 밑만 보면 다른 사람이 내게 무슨 손짓을 하는지 못 보고 소통이 딱 끊기는 거예요. 시야를 넓게 봐야 전체가 잘 갈 수 있어요. 팀워크가 좋으면 금메달, 은메달, 성적으로 나오죠.
사회, 가정 그리고 교회에서도 팀워크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팀워크가 좋으면 그 시간 자체가 금메달, 은메달보다 더 소중한 행복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 말이 법이고 나만 따라와 하면서 강압적으로 끌로 가는 게 아니라 리더도 후배들의 말을 듣고 반영해 줄 수 있는 게 리더십이고, 팀워크란 생각이 들어요. 무조건 나만 따라와 라고 하면 함께 하는 사람도 소속감을 가질 수 없죠.

은퇴 후, 내게 힘이 되어준 사람

은퇴 후, 24살에 22살의 아내와 결혼했어요. 티격태격하면서도 함께 신앙생활하고 가야 할 길을 상의하고 의지했던 사람이 아내였어요. 아내가 저를 위해서 기도도 많이 해줬죠. 선수로 정상에 있다가 내려오면 허탈할 수도 있는데 아내가 있어서 힘이 됐어요. 결혼하고 어학연수로 미국에서 가서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살면서 좋은 시간도 보냈죠.
운동하면서 해보지 못한 것들,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할 수 있었거든요. 어릴 적부터 운동선수를 하다 보니 많은 부분이 멈춰졌어요.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대화하는 면에서도 그랬죠. 미국에서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좋은 문화를 많이 배웠어요. 그 때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금메달리스트에서 크리스천 김동성으로

2011년도쯤 미국에서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치고 있었어요. 그런데 워싱턴포트스지에 제가 아이들을 때렸다는 기사가 났어요. 아이가 3년 전에 맞았다는 거예요. 미국 스케이트장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 다 보여요. 아이를 때리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죠.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특히나 엄격해요. 그런 일이 있었으면 아이가 진단서를 떼었거나, 경찰에서 출동했다는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결과적으로는 무혐의를 받았지만 이런저런 말들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 때 교회에서 훈련을 받고 성경을 묵상하고,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제 자신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죠. 그때는 하나님만 아시지 않느냐는 기도만 계속했었어요. 예수님은 더한 것도 버티셨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게 내려지게 되더군요. 훈련을 받던 시간이 점점 더 쌓이면서 금메달리스트 김동성이 아닌 크리스천 김동성으로 내려놓게 되었어요.

운동선수 그 이후의 삶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스케이트나 운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운동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이 공부를 하고, 대학원에 가서 석사, 박사를 받는 것처럼 저희 선수들은 쇼트트랙으로, 수영으로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운동이 끝나고 그 이후의 삶이 있잖아요.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운동하던 후배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부분을 신앙적으로 잘 풀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운동하면서 부상당하지 않게 해달라고도 기도해야겠지만 운동 후에 어느 길을 가야 할지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30대까지 운동하면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거든요. 그 후의 인생을 운동했을 때보다 더 생동감 있게 살기 위해서는, 후배들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는 과정이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비전 및 기도제목

선수로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봤기 때문에 “앞으로 목표가 뭐예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머뭇거리게 돼요. 올림픽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그보다 더 큰 목표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그보다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좋은 조건으로 제안이 왔을 때 수락했겠죠. 그랬다면 경제적으로도, 지위도 더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저는 지금 생활이 평안하고 감사해요.
행복한 가족이 있고, 어머니가 평안하게 사시는 게 제 바람이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이 잘 커갈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늦둥이였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일찍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어요. 아이들에게 엄마와 함께 운동해줄 수 있는 젊은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늘 생각했거든요. 중학교만 돼도 아이들이 아빠, 엄마와 거리가 멀어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방에 강연 갈 때도 아이들하고 같이 가기도 해요.
이전에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금메달을 땄었죠. 이제는 영적인 금메달을 따기 위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영적인 금메달리스트로서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 인터뷰 진행&정리 : 이음 작가
- 사진 : 이요셉 작가
- 인터뷰 장소 : 보스토니안 커피 성복점
- 기획.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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